어제는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 빨리 집을 나섰다. 선배는 나보다 삼십 분 먼저 와있었다.
2년 만인가?
우리는 함께 영상인류학을 공부하려 했었다. 하와이의 작은 섬 이야기와 염소를 선물로 건네는 것이 현대에 적용되는 그런 것들. 선배는 내가 하는 말을 A4용지를 꺼내 모조리 적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을 선배의 얼굴에 둬야 할지, 선배가 쓰고 있는 종이에 둬야 할지 고민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두려니 자꾸 벽에 붙은 노란 포스터만 보게 됐다. 그 노란 우주에는 'Hold me tight'란 붉은 글자가 떠다녔다.
선배 :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나 : 저는 계획은 안 세우게 되더라고요. 계획대로 되질 않으니깐.
선배 : 너 나이가 몇이지? 어떻게 그걸 벌써 안거야?
선배는 나를 잊은 듯했다. 우리 만남에 있어 언제나 내가 즉흥성을 펼쳤었는데.
선배 : 요즘 좀 우울하더라. 곁에 누가 없으니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게 다 지나갈 거란, 성장을 위해 필요한 거란 생각을 해.
나 : 통과의례 같은 거요?
선배 : 그렇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지나고 나면 성장이 되어있는.
나는 선배를 기억했다. 기억해냈다. 선배는 자신에게 소홀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만 열의를 다하지 않는 사람. 매주 목요일 모임이 끝나고 가끔 뒤풀이를 할 때면 선배는 우리보다 많은 술값을 냈다. 그리곤 술을 깨야한다며 40분 동안 집까지 부지런히 걸어갔다. 나는 그다음 날 선배와 같은 1교시 수업을 들었으므로 선배가 조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선배는 매번 나이도 많은 자신이 돈을 더 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에두른 말을 건네볼까 했다.
제가 누구를 걱정할 만큼은 못되지만 그래도 선배는 선배를 좀 챙기고 살아요. 자신에게 그렇게 무례하지 좀 말라고요. 약속시간보다 빨리 나오지도 말고요, 제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도 말아요. 2년 만난 애인에게 차이고도 사랑의 유통기한이 2년이어서 어쩔 수 없다느니 그런 게 당연하다느니 하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슬픔이 지나가고 무언가 좋은 게 남을 거란 기대를 하지 말란 말이에요.
에둘러지지 않아 금세 그만두었다.
선배는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집까지 걸어갈 거냐고 선배에게 묻지 않았다. 그저 선배가 내일 오전에는 바쁘지 않기를 바랐다. 창밖으로 아득히 멀어지는 선배를 보는데 가까이서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땅 위에서 여전히 상냥하고 슬퍼 보였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슬픔을 통과의례라 여기며 스스로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 유해한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운명론자들. 그들 곁에는 자신을 잊지 말라고 슬픔에 몸을 내어주지 말라고 다독여주는 사람이 꼭 자리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늦은 밤을 더 이상 하얗게 보내지 않아야 한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슬픔을 그대로 감내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