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사랑에 감격하는 순간
4월 3일에 까만 강아지가 죽고, 4월 4일이 생일인 애인이 생겼다. 애인은 여러모로 나에게 특별하다. 누구에게나 애인은 특별한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여태껏 나에게 그 자리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가치였다. 애인의 생일을 처음 들었을 때 어김없이 나의 까만 강아지가 떠올랐고 김포의 화장터와 시끌벅적 파티하는 애인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슬프거나 기쁜 날들이었다. 애인은 자신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맞이하는 4월 3일, 까만 강아지를 위한 노란 꽃과 애인을 위한 파란 꽃을 사 집 식탁에 나란히 꽂아두었다. 마트에서는 강아지가 좋아하는 알이 큰 블루베리와 애인이 좋아하는 동그라미 크림치즈를 샀다. 누구를 위한 꽃이에요? 꽃집 사장님이 물어보았을 때 나는 "그냥 꽂아두려고요" 답했다. 슬프고 기쁜 날이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내가 눈물을 보여도 그럴 법한 날이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강아지가 없는 것을 실감했을 뿐이었다.
그 뒤로 까만 강아지가 보고 싶은 날이면 애인의 커다랗고 순수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강아지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동그랗게 나를 보았는데 애인도 그랬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안 보일 줄 알았는데 그들은 오히려 곁에 뽀짝뽀짝 다가왔다. 강아지는 사랑을 주고 나는 강아지를 챙겼고, 애인도 내게 사랑을 주고 나는 애인을 챙겼다. 나는 누구를 챙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제 조금은 그럴 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강아지에게 화를 내고 강아지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스스로 마음을 스물세네 조각으로 찢어놓고 우연히 발견한 척 연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사랑인 것을 스물다섯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고 까칠한 이 사랑이란 것을 까만 강아지 외에는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남은 이십 대를 다 보낼 즈음 애인이 나타났다. 애인을 처음 본 날 애인은 나를 붙잡고 계속 말을 했다. 사랑은커녕 내가 한마디 하면 "그게 뭐예요?" 되돌아올 것 같은 앳된 이 사람에게 난 고개만 끄덕였다.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일은 행복하다. 나도 강아지도 애인도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강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격하는 순간을 경험하지만 실은 우리는 그전부터, 그들을 처음 본 순간 사랑을 시작했다. 순서가 그렇다. 까만 강아지가 죽고 나서 오랜 기간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요즘은 강아지의 사진을 보며 눈물짓다가 애인에게 달려가 강아지 사진을 보여준다. 내가 강아지에 대해 현재형으로 말해도 애인은 알지 못한다.
나는 애인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알람소리를 먼저 듣고 애인을 깨우면 애인은 꾸역꾸역 일어나 동그랗게 나를 본다. 애인은 내가 챙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애인에게 나도 그렇다. 까만 강아지가 죽고 나에게 다시 이런 미션이 주어졌을 때 살아내고 있는 기분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뭐든 잊지 않으려고 눈을 바라본다. 더 잘 살아내고 싶은, 벅차서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받아들여본다. 엊그제 애인에게 했던 나쁜 말을 기억해 낸다. 이런 생각 후 만날 때면 영검하게도 애인은 나에게 사랑 고백 같은 걸 한다. 분명 그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