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갑을 위하여
사과장수가 처음으로 사과를 팔러 시장에 나갔다.
시장 한쪽에 자리 잡고 사과를 펼쳐놓았는데
사과값으로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몰랐다.
한 여인이 다가와 사과 하나를 집어 들고 물었다.
"얼마예요?"
사과장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저 옆 가게에서는 한 푼에 팔던데요."
"그럼 한 푼에 가져가세요."
여인은 한 푼을 내고 사과 하나를 가져갔다.
한 남자가 와서 사과 하나를 집었다.
"이건 얼마죠?"
사과장수는 자신 없게 대답했다.
"앞의 손님은 한 푼을 냈어요."
남자도 한 푼을 내고 사과 하나를 가져갔다.
그 뒤에 온 손님들도 모두 한 푼을 내고 사과를 사 갔다.
사과 장수는 점점 불만이 쌓여갔다.
'사과가 어째서 이렇게 헐값에 팔리는 거지?
사과를 팔아서 큰돈 벌긴 어렵겠어.'
사과장수는 어쨌든 스무 개의 사과를 다 팔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시장에서 자신처럼 사과를
파는 노파를 발견했다.
한 여인이 그 노파의 사과를 집어 들고 서 푼을
놓고 갔다.
사과장수는 노파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도 방금 전까지 사과를 팔았는데 사람들이
한 푼 밖에는 쳐 주질 않더군요.
이 사과는 평범해 보이는데 어째서 사람들이
서 푼에 사 가는 겁니까?"
노파는 사과 하나를 남자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젊은이, 이 사과를 자세히 봐요. 탐스럽게 잘 익어서 색깔은 붉고 향기롭고 껍질도 매끈하지요. 나는 이 사과의 가치를 서 푼이라고 정했어요. 그러니 내 사과를 먹고 싶으면 서 푼을 내야 하는 거라오."
사과장수는 노파의 사과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노파의 말대로 과연 서 푼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는 이미 다 팔아버린 자신의 한 푼짜리 사과를
떠 올렸다.
하지만 사과가 무슨 색이었는지 어떤 향기가 났는지
껍질은 매끄러웠는지 거칠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가격을 받으려면 일단 제대로 된 청구서를
내밀어야 하는 법이라오. 그러려면 자기 사과의
가치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지요."
사과장수는 부끄러움에 벌게진 얼굴을 감추려
노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인생을 대하는 방식이 혹시 이 사과장수 같지는
않은가요?
남이 정해주는 가격이 내 가치와 같다고 쉽게
믿어버리거나 남이 알아서 내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리라 기대하진 않나요?
우리는 어릴때부터 겸손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자랍니다.
부모님,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고 배우지요.
이런 문화에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꾹 참고,
자신의 권리와 관계되는 일에서도 침묵을 지켜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요.
자부심을 숨기고 자기 색이라고는 없는 무채색의
온순한 존재가 되어야 무탈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치가 발달하고 남이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자신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이 나의 편의를 봐주지 않으면 섭섭하다
여깁니다.
남에게, 이 세상에 섭섭한 게 많은 사람으로
사는 게 좋으신가요?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면 나에 대한 제대로 된
청구서부터 작성해 봅시다.
당당하게 청구서를 내밀 때에 세상은 합당한 가격을
지불할 겁니다.
**자타공인 멘갑인 필자가 전국의 유리 멘탈, 개복치들의
멘탈 강화를 위해 '멘갑을 위하여'를 연재합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드릴 수는 없겠지만 필자 나름의
노하우로 작은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멘탈이 털리신 분들, 그 고민을 저와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사연을 댓글로 달거나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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