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다.
베프가 세상을 떠난 지 5개월 만에 또다시 장례식장.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친정엄마보다 어머님을 더 좋아했다.
결혼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나를 "새아가"라 부르며 많이 아껴주셨다.
아이들을 낳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별거 아닌 일에도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릴 때 받지 못했던 사랑 가득한 말들,
그 표현들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줬다.
가끔은 말도 안 되는 말씀으로 내 속을 긁으시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어머님을 미워할 수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어머님이 보여주셨던 사랑이
마치 복리처럼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을까?
어머님께서는 내가 신랑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유방암을 겪으셨고, 첫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궁경부암으로 또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돌 지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던 날들이 떠오른다. 다행히 이후에는 건강을 회복하셨지만,
세월이 지나 소장 쪽으로 암이 전이되면서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어머님과 베프의 암 투병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암에는 완치라는 게 없다는 것.
완치라고 말해도 사실 암세포는 조용히 몸속에 숨어 있다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면역 저하로
다시금 폭발적으로 분열한다는 점을.
그래서 무엇보다도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베프 역시 완치 판정을 받은 뒤 3년이 지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후 암이 재발했다.
어머님은 생전에 내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젊은 나이에 결혼하고 참으면서 살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병이 된 것 같아.
너는 그렇게 속 끓이며 살지 마라. 다 병이 된다.”
어머님의 병세가 나빠진 이후
남편과 나는 주말마다 어머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4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살아생전에 자주 찾아뵙고 싶었다.
어느 주말, 뵈러 갈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왠지 이번 주에 꼭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남편에게 말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가자.”
그 예감은 맞았다.
그날이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뵌 날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끌림이었을까.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터로 향했다.
결국,
죽으면 남는 건 한 줌의 재
어머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늘 다니시던 절에서 49재를 지내달라고 말씀하셨다.
그 뜻을 따라 어머님을 절에 모셨다.
초재를 올리는 동안,
스님이 읽어주시던 글귀 중 특히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었다.
"빈손으로 오셨다가 빈손으로 가시거늘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슬퍼하랴.
그 무엇에 집착하여 훌훌 털지 못하시며,
그 무엇에 얽매여 극락왕생을 이루지 못하시나."
초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을 떠올렸다.
빈손으로 와서(태어나) 빈손으로 간다(죽는다)는 뜻으로, 삶의 덧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아무리 재물을 탐하고 권력을 좇아도 결국 모두 부질없으니, 너무 아등바등 욕심부리며 살 필요는 없다는 가르침을 준다.
어머님을 떠나보내며 이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공수래공수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오늘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감사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아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Happiness is everywhere
Happiness is a choice
결국 죽으면 한 줌의 재..
너무 가지려 애쓰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비우며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