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셜리즘 2부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있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 웃고 떠들며 지내고 있다. 나는 현재 '글또'라고 하는 글쓰기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데 커뮤니티 멤버들과 1주일에 2~3회 정도 만나 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독서모임이나 보드게임, 방탈출, 스케이트 타기, 때로는 그림을 그리거나 심지어 마니또 모임까지!? 이렇게 재미나게 보내고 있다. 이번 글또 10기를 시작한 24년 10월부터 25년 2월 3일인 오늘까지 45회 이상 모임에 참여했다. 글또 커뮤니티 참여자 평균 만남 횟수가 2.5회 인걸 감안하면 압도적으로 열심히 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놀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책 에센셜리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에센셜리스트들은 유희를 창의력과 탐구력의 중요한 동인으로 본다.
에센셜리스트는 '가장 중요한 일들을 선별적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중요한 일만 하는 에센셜리스트에게 필수적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놀이'다. 이 말은 언뜻 모순되어 보인다. 하지만 '놀이'의 효과를 아는 사람에게는 매우 당연한 말이다.
놀이는 그 자체로 본질적인 행위다. 놀이는 건강, 인간관계, 교육, 혁신 역량 등 그야말로 우리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두뇌의 유연성, 적응력, 창의력을 높이는 매우 가성비 좋은 훈련인 것이다.
놀이를 할 때 우리 두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기존의 방식은 지루하지 않은가)을 터득한다. 이를 위해 더 많이 물어보고, 배우고, 적응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책 에센셜리즘에서는 놀이에 대한 구체적인 장점으로 다음 세 가지를 말한다.
1. 놀이는 시야를 넓혀준다. 새로운 가능성과 관계를 넓혀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두뇌를 더욱 개방적으로 만들고 시야를 넓혀준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힘이 생긴다.
2. 놀이는 스트레스를 낮춘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지를 담당하는 두뇌 부위의 활동이 줄어든다. 즉 제대로 된 결정은 물론 생각의 퀄리티 자체가 낮아진다. 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낮추기 어렵고 결국 일을 엉망으로 하게 된다.
3. 놀이는 경영능력을 높여준다. 경영능력이라고 하면 기획, 판단, 결정, 계획수립, 예측, 업무배분, 분석 같은 것들이다. 놀이는 이러한 역량들을 자극하고 높이는데 기여한다.
요약하자면 높은 성과를 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꼭 '놀아야 한다.'
나는 1인 개발자다. 평일 낮에는 주로 앱을 개발하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사람들을 만나 어울린다. 앱을 개발할 때 작업 현황은 주로 칸반을 사용하고 작업한 코드는 잘게 커밋하여 깃헙에 올린다.
내가 사용하는 jira 칸반이다. 나는 칸반을 일종의 퀘스트 현황판으로 여긴다. 퀘스트를 수행하고, 옮기고, 달성하는 진행과정을 눈으로 확인한다. 내가 일을 게임처럼 즐기게 도와주는 '놀이 도구'다.
내 깃헙의 contributions 현황이다. 흔히 개발자들이 '잔디'라고 부르는 커밋 현황이라 할 수 있다. 일부러 잔디를 채우기 위해 개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작업한 내용들이 채워지고 선명한 푸른빛이 띄는 것을 보면 뿌듯하고 재미있다. 일종의 '잔디심기 놀이'라고나 할까?
이런 도구들 뿐만 아니라 개발하는 과정 자체도 무척 재밌다. 최근 Cursor와 같은 AI Code Editor 가 나오면서 작업 속도가 더 빨라졌다. 여기서 빠르다는 것은 결과에서 피드백, 그리고 다시 결과로 이어지는 순환 사이클의 속도를 뜻한다.
이러한 작업 사이클은 불과 몇 분 사이에 이루어지니 일이 지루할 수가 없다. 속도감 덕분에 자연스레 일에 몰입하게 되고 개발이 재미있어진다. 내가 생각한 대로 블럭을 쌓아올려 멋있는 작품을 만든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재밌고 보람찬 놀이인가! 심지어 그러한 결과물을 하루에 여러 개도 만들 수 있다.
이러니 일을 일처럼 느낄 수가 없다.
일은 나에게 놀이다.
그렇다면 나는 놀이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더라.
첫 번째는 지속가능성이다. 앞서 내가 일하는 방식을 설명했듯, 일이 곧 놀이이기에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한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일하는 게 즐겁고 기대가 된다.
꾸준함은 의지나 노력에서 오지 않는다. 대상을 놀이처럼 즐길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싶다면 놀이처럼 해보라!
두 번째는 아이디어다. 앱 개발을 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어떤 앱을 만들까?', '어떤 앱이 사용자들에게 즐거움과 가치를 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내가 적어둔 아이디어 노트를 확인한다. 노트에 적힌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사람들과 놀면서 얻은 것들이다.
나는 지난 1월에 5개 앱을 개발했다. 그중 '사자운세', '떡국피하기', '다섯자일기'의 아이디어는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서 나왔다. 나머지 '반응속도 대결'은 쇼츠를 보면서, 'Facepop'은 사람들과 놀고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모두 놀다가 아이디어를 얻은 셈이다.
세 번째는 좋은 관계다. 나에게 있어 좋은 관계란 '함께하는 순간을 의미 있고 기분 좋게 보내는 관계'를 뜻한다. 놀이를 위해 만난 관계는 특히 좋은 관계를 맺을 확률이 높다. 무언가 이득을 얻기 위해 온 것이 아닌, 함께 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다양한 모임을 통해 좋은 분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죽이 잘 맞아 다음 모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다른 모임에서 우연히 또 만나 친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놀다 보니 좋은 사람을 알게 되고, 나아가 함께 성장하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놀이를 통해 얻은 것들을 세세하게 말해보자면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놀이는 내 삶에 중요하다. 놀이는 나를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내가 나답게 살도록 도와준다. (만약 놀지 않는다면 남들과 똑같은 행동과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나'가 맞는가?)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놀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더 재밌게 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