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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운찬 Jul 31. 2019

'의식적 포기'로 '의식적 연습'하기

 안데르스 에릭슨, 로버트 풀의 [1만 시간의 재발견]을 읽고

1.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


대학교 4학년 때 다짐한 내 20대의 좌우명이다. 내 주변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들이 쓴 책을 읽고 어떻게 삶을 개척했는지 살펴보았다. 내가 찾은 답은 '하고 싶은 일을 해라'였다.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일이 어차피 힘들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힘든 게 그나마 낫지 않은가? 난 스스로 매우 합리적인 답을 찾았다 생각하고 맹신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만 찾으면 그것을 끝까지 할 수 있을 거란 근거없는 믿음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 배울 때는 너무 재미있다. 나는 대체로 어떤 분야든지 처음 배우는 순간에는 큰 흥미와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초급의 수준에서 벗어나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왠지 모를 커다란 벽을 마주하곤 했다. 더 이상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되나?'

'왜 이렇게 재미없지?'

'계속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그럴 때마다 나의 자랑스러운 좌우명이 발동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 대체로 저런 벽을 마주치면 다른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다행히 끝맺음은 잘 해왔다) 다른 일에 빠져든다. 그렇게 학원부터 알바, 취미까지, 짧게는 3개월부터 길게는 1년 정도를 하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았다. 직장은 가장 오래 다닌 곳이 2년, 짧은 곳은 2개월이었다. 


[오리지널스] p145, '불만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네 가지 행동'


하고 싶은 일만 쫓으며 쉽게 포기하고 탈출하는 나에게 당연히 어떠한 실력도 쌓이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고 나를 되돌아보니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실력도, 나 자신의 정체성도...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꾸준히 할 수 있는 재능이 없는 것 아닐까?', '쉽게 포기하는 재능을 타고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모르겠다. 의식적 연습을 통해 무언가를 꾸준히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해봐야 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분야가 무엇이든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두 동일한 일반 원칙을 따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분야에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방법을 '의식적인 연습'이라고 명명했다.
[1만 시간의 재발견] p26


내가 원하는 것, 특히 '실력'은 꾸준한 의식적 연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의식적 연습은 컴포트 존을 벗어나 집중, 피드백, 수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고된 과정을 뜻한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정반대로 행동해왔다.


그렇다면 현재 나의 '포기하는 습관'을 고칠 것인가? 아니면 강화할 것인가?

여러분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난 포기하는 습관을 더욱 강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잘하는 포기를 '의식적 포기'로 끌어올려 역이용하는 것이다.



2. 60만 분의 바이올린


나는 6월 초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에도 피아노를 5개월 배우고 그만둔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오래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 가지 기준을 정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어디서 들어본 말에 힌트를 얻어(당시에는 아직 [1만 시간의 재발견]을 읽지 않았었다) 뭐가 되든 최소 60만 분 동안 바이올린을 연습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첫날부터 연습시간을 기록했고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총 1400분을 연습했다.


가끔 영상을 찍어 유튜브를 활용해 기록한다 (비공개) 


지난주부터는 왼손 2번 손가락을 이동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손가락 움직임이 익숙지 않아 연습하다가도 짜증이 나서 활을 허공에 휘두르곤 한다. 하지만 내가 바이올린을 포기하려면 59만 8600분을 더 채워야 하기 때문에 포기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내가 원하는 것이 포기라면 그 포기를 위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뭔지 모를 아이러니한 순환? 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루한 포기 과정을 달래줄 도구로 저자가 말하는 '의식적 연습'을 활용하기로 했다.



3. '의식적 포기'로 '의식적 연습'하기


개인적으로 의식적 연습이 힘든 이유는 크게 2가지라고 생각한다. 

1. 어느 수준까지 가야 하는지, 혹은 갈 수 있는지 잘 모르는 데서 오는 막연함과 불확실성

2. 더 나아 보이는 다른 수많은 선택지들의 유혹


이 2가지를 보완하기 위해 나는 '의식적 포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의식적 포기는 전통적 포기와는 다르게 그 순간의 충동이 아닌 자신이 미리 정한 기준에 의해 의식적이고 완전하게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아직 만든 지 하루밖에 안된 개념이라 그 내용이 부실하지만 나름의 의식적 포기 '3가지 원칙'을 제시해보겠다.

1 원칙 _ 포기하는 대상과 상응하는 다른 대안이 준비되었을 때 포기한다.

2 원칙 _ 미리 정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포기한다.

3 원칙 _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포기를 미루거나 포기 목표를 재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적 포기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의식적 연습을 더욱 몰아붙이는 효과가 있다. 다음은 의식적 포기와 의식적 연습의 작동원리이다.

주의사항이 있다. '의식적 포기'는 지극히 내 개개인성에 맞춘 맞춤형 전략이다. 아직 그 효과가 증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고 정도로만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꽤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지금 이 순간도 취미든 일이든 힘든 일을 포기할 생각 하니 기쁘기? 그지없다. 자신의 꿈을 떠올리고 그 꿈을 이루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기쁘지 않은가?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을 완전하게 그만둔다고 상상해보라. 그 또한 기쁘지 않은가?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포기하기 위해 오늘도 의식적 연습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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