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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운찬 Sep 26. 2019

열정적 이기주의자의 고백

'꼭 기부를 해야 하나요?' 


모임에서 걷은 돈을 기부하자는 말에 내가 물었다. 나는 그 돈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느니, 모임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낯선 사람을 돕는데 인색하다. 마음을 다해 기부를 해본 적이 없다. 그들의 슬픈 사정에 눈물을 흘릴지언정 도움의 손길을 내밀진 않는다. 나는 내 사람들만 챙기는 이기주의자이다.


'너는 아빠처럼 살지 말아라.' 가정에는 소홀하고 남들에겐 한없이 베푸는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가 하신 말이다. 아버지가 가족을 챙겼다면 남을 돕느라 보증도 서지 않았을 테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내 경험상 이타심이 행복을 가져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기심을 따랐다. 내가 먼저 행복해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난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손에 잡힐 것 같던 행복은 연기처럼 사라지곤 했다. 마치 원래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낀 나는 관련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기심과 이타심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이 둘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기심'과 '이타심'에 대한 나의 심적 표상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저자 윌리엄 맥어스킬은 이런 이타심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 '효율적 이타주의'를 통해 알려준다. 다음은 '효율적 이타주의의 핵심 질문 5가지'이다.


1.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2.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3.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4.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5.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만약 우리가 선행을 베풀 때 이러한 5가지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재해구호에 기부하면 안 되는 이유, 투표가 수십만 원의 가치를 가진 이유, 공정무역 제품보다는 차라리 노동착취 공장 제품을 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우리는 남을 도우려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곤 한다. 숫자와 이성을 들이대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p24

또한 윌리엄 맥어스킬은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되기 위한 직업 선택 방법도 알려준다. 그 핵심은 바로 '열정을 따르지 마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 저자는 다음 세 가지 요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1. 적성

: 적성은 직무 만족도를 뜻한다. 이는 직무 자체의 성격으로 개인의 열정과 관련된 사항들이 아니다. 일 자체에 만족도가 높으면 열정은 뒤따라 온다.

2. 현재의 영향력

: 노동력, 기부금, 타인에 대한 영향력,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보면 현재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3. 미래의 영향력

: 지금 하는 일을 발판 삼아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는 방법들, 예를 들어 경력 자본(조직운영 역량이나 인맥 같은)을 쌓거나 이직이나 진로 변경 같은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좋아하는 일들을 열정적으로 찾아다녔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을 해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일을 시작해도 막상 내 추측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 의사결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냉정한 이타주의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영향력'이었다. '나와 타인을 위한 직업'이 아닌 '나만을 위한 직업'을 찾아다녔기에 '영향력'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나의 가치를 타인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나는 현재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분야는 분업이 뚜렷한데 그로 인해 생기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 번째, 분업으로 작품의 극히 일부만 맡기 때문에 작업자가 작품과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적다. 두 번째, 답이 정해져 있다.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지시사항이 내려온다.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내가 관여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세 번째, 특정 영역에 국한된 기술이기 때문에 개인적 역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 해당 영역을 벗어나면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기 위해서는 피아노 조율이나 선박산업에 대한 전문지식처럼 특정 영역에 제한된 기술이 아니라 판매 및 마케팅, 리더십, 프로젝트 관리, 비즈니스 지식, 대인관계 기술, 주도력, 직업의식 등 어느 영역에서나 발휘될 수 있는 역량을 연마해야 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p219


이 세 가지 특성은 내가 가진 '영향력'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윌리엄 맥어스킬이 강조하는 것처럼 '효율'이 필요해 보였다.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어떻게 기부하는지를 잘 살펴보면 그 안에도 영향력이 담겨있다. 결국 나의 가치를 타인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가 효율적 이타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기부'와 '진로', 함께 있기엔 어색해 보이는 두 단어가 '영향력'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영향력 안에는 이기심과 이타심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나는 '좋아 보이는 직업'을 갖고 싶은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을 많이 준다는 회사, 일이 편하다는 회사, 재미있어 보이는 회사, 등 실제로는 내 개개인성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이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불만이 생기고 고통이 따른다. 나는 열정만 믿고 바보같이 이런 직업들을 쫒아다닌 것이다.


만약 내게 꼭 맞는 직업을 갖고 싶다면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직접 도구와 재료를 모아서 자신만의 커리어로 쌓아 올려야 한다. 그 과정은 분명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심과 이타심이 이끄는 방향으로 꾸준히 쌓아 올린다면 어느새 내가 원하던 삶을 얻고 높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이번에 최소한의 포기 목표를 달성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 내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더 효율적인 경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나만의 직업을, 더 나아가 나만의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역량과 자격을 쌓기로 했다. 최근 3개월간 12권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깨닫고 반성했다. 나는 나의 '개개인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독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나만의 '심적 표상'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순간'이 어떤 힘을 가지며 '정체성'이 나를 어떻게 이끄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법'도 배웠고 '연결'과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3개월 전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을 돌아보니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독서와 글쓰기, 질문과 실천, 연결과 기회들이 있다. 내가 무엇을 꾸준히 해야 하는지 알게 된 순간이다.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이기심과 이타심, 가치를 키우며 가치를 나누는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고자 한다. 혼자가 아닌 함께이기에 용기를 내어 그 첫발을 떼었다. 자, 이제 시작이다!







#체인지그라운드 #씽큐베이션 #냉정한이타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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