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거대한 존재

by 기운찬

심리검사, 적성검사, 성격검사 등 여러 검사들을 통해,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하나의 틀로 규정하기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골치 아픈 '나'를 알아서 설명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유형은 그런 점에서 아주 매력적인 도구다. 예를 들어 MBTI의 16가지 성격유형을 보면 '와 이거 정말 나다' 싶을 정도로 나를 잘 설명한다.


여기엔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유형을 '나'라고 믿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형을 기준으로 그나마 달랐던 일부 생각이나 행동마저 수정한다. 만약 자신이 겸손한 유형이라고 나왔다면 더 겸손한 행동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말을 타인에게 할 수도 있다. '제가 겸손해서요. 그래서 자랑하는 걸 싫어해요' 이 사람은 정말 겸손한 걸까? 아니면 겸손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는 걸까? 어떻게 보면 유형은 사주와 비슷한 점이 있다. '난 그런 사람이야', '난 그럴 운명이야' 라며 삶을 가두어버린다. 스스로를 작은 상자 안에 기괴한 모습으로 가두어버린다.


사실 유형은 결코 '나'라고 할 수 없다. 유형은 그 순간의 나를 '일부' 설명하는 것일 뿐,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나'도 아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상황, 맥락, 시차 등에 따라 유형이 시시때때로 바뀐다.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다. 유형으로 가두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그런 존재다.

1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