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는 결코 진실을 볼 수 없다. '나'라는 존재는 '거짓이 없는 사실'을 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사실을 가리킨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가공하지 않고서는 대상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대상을 어떻게 가공하는가?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져지는 것 등으로 판단하고 종합하여 대상을 인지한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만져지지 않는 것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상의 일부만으로 대상을 인지한다. 생략된 대상은 결코 진실이라 할 수 없다.
흥미로운 건 우리는 이것들을 진실이라 믿고 또다시 가공한다. 말, 글, 그림, 음악, 몸짓, 표정, 등으로. 이런 가공의 과정을 거치면 어느새 거짓은 또 다른 거짓으로 바뀌어 있다. 그들이 의도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말이다. 세기의 과학적 발견은 기존의 거짓을 밝혀낸다. 그리고 그 발견 또한 또다시 거짓으로 밝혀질 것이다. 과거 중요시 여겼던 가치가 현대에는 거짓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지금의 가치 또한 미래에는 거짓으로 밝혀질 것이다. 더 가까운 예가 필요하다면 뉴스만 봐도 된다. 뉴스는 온통 거짓이다. 가공하지 않은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 어떤 거짓들은 며칠 혹은 몇 년 후에 '알고 보니..' 라며 또 다른 거짓으로 뉴스를 장식할 뿐이다.
우리는 거짓된 세상을 살고 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게 거짓에 대한 믿음이 판치니 고통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거짓을 무조건 거부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거짓이 거짓임을, 거짓 또한 진실의 일부임을 알아차려보자는 것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거짓에 의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진실'을 향해, '알지 못함'을 향해 끝없이 낙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