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운찬 Aug 13. 2019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의연할 수 있어요?

칩 히스, 댄 히스의 [순간의 힘]을 읽고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의연할 수 있어요?"


나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대학 동기였던 그녀에게 그 말을 들은 것은 내가 과제 발표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온 직후였다. 당시 강사는 발표 중 내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내 배를 '헉'소리가 나오도록 끌어안으며 날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나는 인생 최악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녀가 했던 말은 내게 뜻밖의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렇다. [순간의 힘]의 저자 칩 히스, 댄 히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각본'을 깨트렸다.




책 [순간의 힘]에서는 결정적 순간을 창조하는 4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고양 _ 고양의 순간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감정이 고조되는 경험을 할 때 발생한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시간들, 즐겁고, 기쁘고, 소중하고, 의욕에 넘치는 순간들, 즉 절정의 순간이다.
통찰 _ 통찰의 순간은 깨달음을 안겨주고 변화를 촉구한다. 어떤 깨달음은 작고 소소하지만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긍지 _ 긍지의 순간은 우리가 지닌 최선의 모습을 드러낸다. 용기를 무릅쓰고, 남들에게서 인정받고, 도전을 극복하는 것처럼. 또한 긍지의 순간이 탄생하는 것은 대개 '다른 사람이 우리의 역량을 알아봤을 때'이다.
교감 _ 교감의 순간은 인간관계를 강화한다. 어떤 사람을 알게 된 지 하루도 안 돼 당신의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는다. 힘든 경험을 함께 헤쳐온 사람들과 긴밀하고 돈독한 유대감을 쌓는다.


저자는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하여 잠재되어 있는 결정적 순간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순간 중심적 사고'를 강조한다.

삶이라는 산문에 구두점이 필요한 곳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순간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순간의 힘] p32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삶에 전환점을 표시하고, 이정표를 기념하고, 구덩이(부정적인 순간)를 채우는 것이 순간 중심적인 사고의 핵심이다.




'의연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굳세어서 끄떡없다는 뜻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그전까지 의연하다는 말을 사용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의연하다니? 심지어 가장 최악의 순간에... 그때 나는 두 가지 '순간의 요소'를 경험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고양의 요소 중 하나인 '각본 깨트리기', 그녀의 말은 내 예상(놀리거나 위로하거나)을 완전히 빗나갔다. 두 번째는 통찰이다. 그녀는 내게서 의연한 모습을 보았다. 나 자신도 보지 못한 것을 말이다.


'어쩌면 나한테도 의연함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 그녀가 봤다고 말하잖아!'


그녀가 내게 해 준 말은 구덩이에 빠진 순간을 절정의 순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것도 단 3초 만에!


나는 그 순간을 결정적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난 의연하다는 말을 듣고서부터 나에 대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는 정말로 의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의연한 사람이 되기 위해 벌벌 떨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대본 없이 발표해 보기, 학교 임원으로 활동하기, 심지어 출석 부를 때 큰소리로 대답하기 등 작지만 사소한 것들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전공수업 발표 정도는 대본 없이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발표하기 전에 항상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긴장을 풀었다. '나는 의연하다'


나는 '의연함'이 적절한 상황 대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두 글자로 줄인 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씽큐베이션 2기 '실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일에서의 실력뿐 아니라, 삶에서도 실력자가 되고 싶다. 이 세상을 의연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니 매주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순간, 내가 점점 더 의연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를 행동으로 증명하기 위해 책 [순간의 힘]의 조언대로 새로운 순간을 창조하고자 한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그녀와는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닐뿐더러 다른 동기들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연락처도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내가 너무 과한 거 아냐? 그녀는 기억도 못할 텐데', '혹시나 부담스럽진 않을까?' 같은 '적당히의 함정'이 내 행동을 더 소극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적당히'를 멀리하기로 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사함을 그녀에게 전달하고 싶다. 이는 내게 새로운 도전이다. 어쩌면 이것이 나를 자기 통찰의 순간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진정성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자기 확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정말 운 좋게도 내 감사편지를 읽은 그녀 또한 고양, 통찰, 긍지, 교감이라는 절정의 순간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내게 절정의 순간을 주었던 것처럼.




에필로그


나중에 나는 어느부분이 의연했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강사가 그렇게 하는데도 끝까지 발표하는 모습이 의연해 보였어'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