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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운찬 Aug 22. 2019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바라트 아난드의 [콘텐츠의 미래]를 읽고

2D 애니메이션 제작 공정은 크게 기획, 원화, 동화, 배경, 촬영 등으로 분업화되어있다. 내가 하는 일은 그중에 배경을 그리는 일이다. '배경'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데, 아래의 영상처럼 컴퓨터로 배경을 그려 납품하는 것을 말한다.


애니메이션 배경 작업 과정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비교적 분업이 뚜렷하다 보니 한 회사에서 모두 맡아 제작하기보다는 각각 작은 회사들로 분리되어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배경을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외주 또는 하청업체인 셈이다. 우리 회사는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을 주로 하고 있는데, 나름 인기 있는 작품을 맡았고 세 번째 시리즈까지 제작 중에 있다.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나도 어떻게 보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콘텐츠 제작자 중 일부인 셈이다.


흔히 국산 애니메이션은 성공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참여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시리즈로 꾸준히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바라트 아난드의 [콘텐츠의 미래]를 읽고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콘텐츠의 미래]의 저자 바라트 아난드는 기업의 성운은 대체로 그 제품의 보완재를 얼마나 훌륭하게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보완재란 케첩과 핫도그처럼 한 제품의 가치 또는 효용이 다른 제품의 가치와 효용에 영향을 받는 제품을 뜻한다. 쉽게 말해서 보완재 중 한 제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나머지 제품의 수요가 증가한다는 말이다. 보통 우리는 가수의 음원을 불법 다운로드하면 해당 가수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불법 다운로드가 앨범 판매는 감소시키지만 콘서트 입장권 같은 연결된 제품의 가격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음악 산업은 완전히 달라졌다. 저작권 침해가 횡행하는 가운데서도 예술가들, 특히 일류 예술가의 수입은 실제로 증가했다.
[콘텐츠의 미래] p230


이처럼 가치의 이동과 재분배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리는 보이는 것만 쫒는 콘텐츠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 다시 애니메이션 얘기로 돌아와 보자. 나는 가끔 유튜브에 내가 참여한 애니메이션을 검색해보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전편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공식 채널을 통해서 말이다. 애써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무료로 보여주다니, 그렇다면 수익은 도대체 어디서 얻는단 말인가?


의문은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쉽게 풀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제작사는 애니메이션 방영과 함께 캐릭터 인형과 완구를 판매하고 있었고 해당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도 제작하여 부가수입까지 챙기고 있었다. 제작사는 애니메이션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많은 아이들이 제품과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즉, 애니메이션 콘텐츠가 보완재로서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극장판과 웹드라마까지 제작하여 보완재와 제품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자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으로 수익을 얻기 위해서 위와 같은 방법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이 좋을까? 저자 바라트 아난드는 그래선 안된다고 말한다.

기능적 선택 간의 연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모방한다면 복잡하게 연결된 생태계는 실패를 맞이할 확률이 높다.
[콘텐츠의 미래] p398


저자는 성공에 한 가지 모범 답안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콘텐츠의 함정에 빠트린다고 말한다. 전 세계인들에게 유명한 디즈니를 한 번 살펴보자. 디즈니도 캐릭터 상품과 테마파크 같은 소비재로 많은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디즈니가 유튜브에 자사의 콘텐츠를 무료로 배포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도 '익히 잘 알려진' 디즈니에게 이런 연결방식은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디즈니에겐 어떤 연결이 효과적일까?


디즈니는 저작권법에 굉장히 깐깐한 회사로 '무인도에서 미키 마우스를 그리면 디즈니 직원이 찾아온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디즈니는 콘텐츠의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차별화된 전략을 사용한다. 그중에 하나가 '기존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이다. 올해 상반기 흥행했던 알라딘과 최근에 개봉한 라이온 킹은 물론, 앞으로도 뮬란과 인어공주 등을 실사화하여 콘텐츠로 제작될 예정이다. 왜 디즈니는 기존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걸까? 기존 콘텐츠의 인지도를 이용해 안정된 흥행을 보장받기 위함일까? 아마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에버그린 전략' 때문이다. 에버그린 전략이란 '신약의 원천특허가 끝나기 전에 약의 형태, 성분, 구조 등을 일부 변경하여 후속특허를 등록함으로써 특허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지식재산권에 대입해보면 '기존 애니메이션 실사화'는 기존의 콘텐츠를 변형 가공함으로써 지식재산권을 연장시키고 앞으로도 꾸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훌륭한 '선택'인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디즈니는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픽사, 마블, 루커스 필름, 폭스까지 인수하여 콘텐츠의 양과 질은 물론 유통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장 및 통합해나가고 있다. 올 하반기에 출시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 ‘디즈니+’는 이러한 통합과 지식재산권에 힘입어 넷플릭스와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디즈니'가 콘텐츠를 어떻게 연결하여 수익을 얻는지 가볍게 비교해 보았다. 이 둘은 구조나 규모가 다르지만 전략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기가 활동하는 상황 또는 맥락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콘텐츠를 보완재로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장벽을 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용자 연결, 제품 연결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을 것이다. 반대로 디즈니가 기존의 콘텐츠를 무료로 배포하고 새로운 콘텐츠 제작에만 신경 썼다면? 지식재산권이라는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은 채 골리앗처럼 거대해진 넷플릭스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을 차별화하는 것, 즉 자신의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중에 자신 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적 연결을 모르고서 단순히 그들을 모방하려 한다면 결코 성공에 이를 수 없다.



#체인지그라운드, #씽큐베이션, #콘텐츠의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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