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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진 '영감'통 채우기

by 기운찬

책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그토록 즐기던 드라마, 애니메이션, 예능, 심지어 하루 종일 하던 게임마저 재미가 없어졌다. 책이 더 재미있으니 굳이 이것들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즐기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영화'다. 영화가 왜 아직도 재미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드라마처럼 질질 끌지 않고 내가 정해진 시간 동안 온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면 다음 편... 다음 편!!!, 마치 중독이 된 것처럼 빠져드는 '나'자신을 발견하고서 드라마는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딱 정해져 있다. 한 번으로 끝난다. 물론 속편이 있는 영화도 있지만 어쨌든 적당한 결말로 마무리는 지어준다. 대체적으로 깔끔하다.


두 번째는 영화를 통해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 두어 달 정도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요즘 들어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이디어가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예술의 샘 채우기'를 언급하는데, 저자는 우리 내면에 있는 '예술에 샘'을 지속적으로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샘을 채울 때는 마법을 생각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생각해야 한다. 의무는 절대 생각해선 안 된다. 억지로 읽어야 하는 지루한 비평서는 멀리 치우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흥미 있는 것을 한다. 그리고 미스터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티스트 웨이] p63


내게 있어 가장 효과적인 '예술의 샘 채우기'는 아무래도 '영화보기'인 듯하다.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관점으로 사건을 해석해 본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 본성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분석해 본다. 각 이야기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의도를 파악해본다. 난 이런 과정이 즐겁고 흥미롭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다. 이렇게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내 삶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삶을 더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된다. 비워진 '영감'통이 다시 채워진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나는 영화를 책만큼이나 좋아한다. 혼자서도 꾸준히 표를 예매한다. 말이 나온 김에 내일 '영감'통 채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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