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술, 이제 안 마실래!

by 기운찬

올해 초에 공공기관에서 기간제로 일할 때였다. 첫 회식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주량껏 자유롭게 마시라는 말에 마음 편히 회식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말과 행동은 전혀 달랐다. 술을 안 마신다고 하니 표정이 바뀌면서 비꼬기 시작했다. 게다가 자신이 마시던 잔에 술을 따라 주니 도저히 안 마실 수가 없었다.(빨리 마시고 돌려달라는 뜻이다) 정말 찝찝한 회식이었다. 다음 날 나는 보기 좋게 술병에 걸렸다. 오전 동안 셀 수 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속을 게워냈다. 결국 나는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 기절하듯 쓰러졌다. 이러려고 취업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술을 마시면 취기가 올라오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마약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알딸딸한 느낌이 들면서 생각이 단순해지고 통제력이 느슨해진다. 이 상태에서는 평소 하지 못했던 말도 용기 있게 꺼낼 수 있고, 행동도 과감해진다. 이 때문에 술을 찾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술이 좋은 게 아니라 술 마시는 분위기가 좋은 것이라 한다. 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한 소통 과정이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술이 싫다. 술 때문에 나 자신이 흐물텅해지는게 싫다. 술의 힘을 빌려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구나 술을 진탕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음날이 되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술은 몸에도 좋지 않다. 나는 술을 마시면 장에 큰 부담을 느낀다. 다음날이 되면 위장과 대장이 모두 힘들다고 안에서 난리 브루스를 춘다. 장이 좋지 않으니 기운이 없고 그날 해야 할 일은 모두 무너져 내린다. 몇 잔의 술로 시간, 건강, 돈 삶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모두 날려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조금만 마시는 건 나쁘지 않겠거니 스스로 타협하며 한 잔 두 잔씩은 마셨는데, 이젠 그마저도 그만두련다. 내게 즐거움도 주지 못하고, 건강도 해치는 술을 더 이상 입에 댈 이유가 없다.(심지어 맛도 없다...) 이젠 정말 술을 그만 마시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드러내기' 말고 '관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