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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를 위한 직장은 없다

그러니 내가 만들어야 한다

by 기운찬

'아르바이트 10가지 이상 해보기'가 한때 목표였던 적이 있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카페, 편의점, 패스트푸드 같은 흔히 아는 일들은 물론 영화관 청소, 우편물 관리, 웨딩홀, 디자인, 등 다양한 일들을 해봤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건 초밥 뷔페에서 일하면서 살아있는 광어를 잡아 회를 뜬 것이다.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당시에 내가 했던 일들은 당연하게도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들이다. 내 자아실현이라던지,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라 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일했던 적도 있었고, 너무나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가르는 기준은 다름 아닌 환경이었다. 어떤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어떤 힘든 일들도 즐겁고 재미있었다. 반대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꿈과 열정을 믿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이런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는 허황된 믿음 말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 모두가 꿈꾸는 꿈의 직장도, 내 온 열정을 불사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직업도 결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직장이나 직업도 날 100% 만족시키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날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도 난 이것들에게 내 온 삶을 바치려 하고 있었다. 얼마나 바보 같은가? 그래서 일에 대한, 직업이나 진로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내가 만족하는 일을 하려면 내가 직접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일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만든 일은 나를 위한 일이니 만족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만든 일은 나 외에는 아무도 봐주지 않으니까.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최소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일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결국 원점 아니냐고? 아니지 이제는 관점이 전혀 달라졌으니까! 이제는 남들이 입이 닿도록 칭찬하는 직장, 그리고 그런 직장의 정규직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내 일의 준비가 끝나면 언제든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직장을 원한다. 내 일에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는 파트타임을 원한다. 내 일을 만드는데 방해되지 않는 그런 일들을 원한다.


최근에 어느 작가님의 강연을 다녀왔다. 작가님은 책을 출간하고 나서 오히려 직장을 새로 얻었다고 한다. 작가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든 것도 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님은 다양한 삶을 살라고 말한다. 직장도 그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딱 10%만 직장에 신경 쓰라고 말한다. 나머지 90%는 나의 다른 삶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 투자의 대상이 내 '일'이라면 우리는 더 빨리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직 나만을 위한 맞춤형 직업과 직장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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