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좀비 영화에 휴머니즘을 담다
영화 <부산행>
누적 관객수 950만명을 훌쩍 넘어 천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영화 《부산행》.
이미 많은 분들이 보시고 다양한 관점의 훌륭한 리뷰들이 많아 이 영화만큼은 근질거리는 손을 멈추고 마음 비우고 보려고 했건만
결국 글로 남기고자 하는 욕구를 잠재우지 못했다.
영화 보는 동안 스크린에 집중해 있는 눈만큼
내 손은 기록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눈으로만 보고 나오려 했기에 제대로 된 필기구를 준비해가지 못했는데 다행히 갖고 들어간 <마이 리틀 자이언트> 팜플렛과 볼펜이 있어 영화 보는 동안 그때그때 괴발개발 적어내려갈 수 있었다)
사실 이번이 나에게는 두번째 《부산행》티켓이다.
티비에서 예고편을 흥미롭게 본 아이가 7월 20일 개봉첫날 꼭 보러가자 해서 그 약속을 지켰었다.
하지만 예고편의 흥미로움과 예고편에 보여진 좀비 장면은 극히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아이도 나도 예상치 못한 게 실수였다.
30분쯤 경과했을까. 괴물 좀비의 무참한 습격 장면에 아이는 속이 울렁거린다고 나갈 것을 종용하는 바람에 한창 몰두해있는 찰나 급기야는 상영관을 나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오늘 다시 부산행을 찾았다. 쏟아져 나오는 스포일러와 인물들의 정해진 결말에 노출된 채..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에 이입되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의 첫시작은 진양 지역 방역중인 모습.
바이오 단지에서 찔끔 뭐가 샜다
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일이 어마어마한 좀비떼를 불러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늘 사회적인 문제는 초기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데서 야기되듯이..)
잊을 수 없는 명장면과 인물들
- 열차에 탄 최초의 감염자 심은경
개봉 첫날 봤을 때는 얼굴이 머리로 잔뜩 가려져서 그녀인지 몰랐다. 역시 신들린 좀비 연기!
+ 또하나의 희소식
<부산행> 좀비 탄생의 시작을 확인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서울역>
류승룡, 심은경, 이준 주연.
<부산행>연상호 감독님의 프리퀄 작품 <서울역>이 8월 18일 개봉 예정이다.
* 프리퀄 - 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
- 배우 마동석이 맡은 역할과 연기
그냥 보고만 있어도, 대사 한 마디에도 웃음을 주는 이미지였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역할을 맡아 보여주는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죽을 걸 알고 봤지만 속으로 계속 '제발 죽지 말기를..' 을 외치게 한,
가장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좀비와의 혈투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섰지만 끝내 자신은 좀비한테 당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구한다. 아이 이름을 못지어줬다고 구박했던 아내를 향한 마지막 외침에 끝내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자기야, 우리 아기 이름은 서연이야..서연이!"..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두 할머니 자매님들
아비규환 속에서 헤어지게 된 두 할머니.
열차 칸을 사이에 두고 인간과 좀비로 다시 대면하게 되는데 좀비가 된 언니를 허망하게 바라보며,
"자기 살 궁리는 안하고 퍼주기만 하고.. 이렇게 갈거면서..왜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어.."
이내 자기네만 살겠다고 열차 칸을 두고 싸우는 이기적인 인간들을 향해 한마디 날린다.
놀고있네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인간과 좀비의 경계를 무너뜨려 이기적인 인간들과 함께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 최악의 인간 군상과 국민을 버리는 정부
끝까지 이기적인 모습이 극에 달하는 전형적인 인물 용석(배우 김의성)
결국 최후를 맞지만,
보는 내내 그 행태에 욕이 수십번 튀어나오게 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누구나에게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 이기적인 인간으로 인해 희생된 10대 연인 안소희(진희 역)와 최우식(영국 역)
저놈들이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인지 모를 것들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지금은 흔들리지 말고 정부를 믿고.."
어쩌구저쩌구 방송에서 떠들어 대나 정작 열차에 탄 사람들은 정부 손에 단 한 명도 구조받지 못한다.
스스로 헤쳐나갈 뿐..
- 이기적인 모습에서 희생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인물 '공유'(석우 역)
초반 바쁜 업무에 지칠대로 지친 전형적인 직장인이자 고단한 가장의 모습.
그리고 이기적인 그의 대사들.
"김대리, 너 개미 입장까지 생각하면서 일하냐?"
"수인아, 신경 쓰지마. 이럴 땐 각자 알아서 하는거야."
"수인아, 이럴 때는 양보 안 해도 돼. "
"지금 같은 때는 자기 자신이 제일 우선이야."
열차 안에서 좀비의 무차별 습격에
자기만 살겠다고 사람이 뛰어오는데 코 앞에서 문을 닫아버려 마동석의 분노를 샀던 그는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의 딸을 구해준 마동석의 모습에 차차 희생적이고 부성애 강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그의 처절한 결말에 눈물이 또 줄줄..
- 보호받아야 할 약자 임산부 그리고 아이
끝까지 아이 곁을 지켜준 정유미.
만삭의 몸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준다.
어른들의 이기심에 경각심을 주는 아이 수안이(배우 김수안).
끝까지 살아남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들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노숙자(배우 최귀화), 그리고 열차의 기장님(배우 정석용).
노숙자 분은 열차에 탄 인물들이 꺼려하는 대상이었지만 여자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열차의 기장 역시 끝까지 생존자들을 구하고자 하나 최악의 인간으로 인해 희생양이 된다. 소외된 인물들의 희생을 보여주는 거 같아 씁쓸한 장면이었다.(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의견이다)
'육안으로 확인 안되면 사살하라'는 군의 명령을 무력화시키는 아이의 눈물 담은 노래 '알로하오에'를 끝으로 영화는 막이 내린다.
영화 <부산행>은,
눈 앞에 펼쳐진 절박한 상황에서
이기적인 인간 군상들의 유형과 그 변화
를 극명하게 보여준 영화이자,
좀비 영화에 휴머니즘을 담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최근까지 잇달아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에 우리나라 것이 없다는 게 아쉬웠는데 일반 영화 부분에는 좋은 한국 영화가 많아 즐겁다.
다음은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다.
한국 영화는 여전히 건재하다.
많은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찾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의 좋은 영화들이 계속 나와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