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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Aug 22. 2016

'쓰는' 일이 곧 '사는' 일 -  《모든요일의 기록》

ㅡ 일상의 모든 기록은 쓸모가 있다

《모든요일의 기록》 김민철 지음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읽을 책은 어떻게든 읽게 된다.


몇 번을 도서관에서 빌려다놓고 겉날개조차도 못 펴보고 반납하던 책들도 나와 궁합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운명처럼 펼쳐보게 된다.


매주 도서관 서너군데를 들락날락하며 빌려다 놓는 30~40여권의 책들.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책만 읽으며 살고 싶은 바람이지만 현실은 하루 한 권  실천하기도 벅차다.


그래서 늘 일주일동안 선택받은 몇 권의 책들을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반납되기 일쑤다.

읽으면 읽을수록 몆 배로 늘어나는 책(책에 인용된 책들을 찾아읽거나 한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거나 하는 식으로 이어지므로)의 양에 비해 읽는 속도가 쫓아가질 못하기 때문이다.


읽을 때가 된 것일까.


쌓아놓은 책들 중에 드디어 손이 갔다.


새하얀 표지에 그 어떤 배경그림 없이 오로지 검은 글씨로만 쓰인 모든 요일의 기


왜 그동안 이 유명한 책을 펼쳐볼 엄두가 안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제목이 주는 딱딱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겉표지의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이라는 문구에서 카피라이터분이 써내려가는 일상은 나와는 다른 세상일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저자의 팀장님이신 광고인 박웅현작가님의 책 《책은 도끼다》의 영향이 너무 커서일 수도 있다.


날밤 새며 흥분하며 읽었던 《책은 도끼다 》는 제목처럼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무지를 일깨워주는 책 중 하나이다.

박웅현 작가님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상깊은 작품들의 감상을 마치 강연을 듣는 것처럼 빠져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은 지 한참 됐지만 책의 내용을 아직 다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책은 도끼다》 도  펼치지 못하고 있고, 박웅현 작가님과 함께 일하시는 저자분의 이 책도 쉽게 손이 안갔던 거라고 나 스스로 핑계를 대본다.


그런데,

막상 읽고보니 이런 생각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요일의 기록》은 박웅현작가님의 책과는 성향이 다른 술술 읽히는 에세이책이다.


《책은 도끼다》가 책 속에 인용된 책들을 다시 제대로 읽어보고 싶게 만들고,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어지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라면,


이 책은 저자의 읽고, 듣고,찍고, 쓰는 일상의 모든 풍부한 기록들을 통해 감히 내 얘기도 풀어놓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저자의 깊이와 내공은 따라갈 수 없지만)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즐겨듣는 음악, 찍고 싶은 사진, 배우고 싶은 것, 수집하는 것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꺼내어보고 싶어진다.


책의 첫날개를 펼쳤을 때 깜짝 놀랐다.

저자 소개 첫문구에 '남자 이름이지만 엄연히 여자'라고 적혀있는 게 아닌가.

내가 저자분의 정보에 무지해서인지 몰라도 정말 한 치의 의심없이 남자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분이시라니!

어머 정말? 하고 저자의 성함을 검색해보았다. 동명이인의 다른 남성분들의 프로필 사진들은 있는데 저자의 사진은 없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사진.

정일영ᆞ김민철 부부 (출처 - 리빙센스)

여성분 맞다.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 사진을 보니 남편분 모습도 궁금해진다.

(남편분은 저자의 완벽한 책 친구일 뿐 아니라

록부터 클래식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는 분이시다.)


같은 여성일 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력 때문에 꼼꼼하게 기록을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에서 괜한 친근감이 느껴진다.


무척 공감하며 읽었던 에세이 《보통의 존재》의 이석원 작가님처럼 이 책의 저자 김민철 작가님도 자신이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하지만 글의 내공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보통의 존재》를 읽고 난 느낌을 적은 지난 글을 보니 '차원이 다른 보통의 존재, 아니면 보통을 가장한 재주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진짜 보통의 존재인 나는 다시 또 씁쓸하고 쓸쓸해진다'라고 적어놨었다.

분명 이 분들은 평범함 속에 자신만의 '특별함'을 드러낼 줄 아는 분들이다.


이 책은 읽다, 듣다, 찍다, 배우다, 쓰다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다'로 시작해서 '쓰다'로 귀결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1장 '읽다' : 인생의 기록


첫 장은 내가 공감하고 부러워할 얘기들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책이야기로 시작하여 귀를 솔깃하게 하고 눈을 반짝이게 한다.


집의 거실 한 면이 모두 책장이고 사시사철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환경이라든가,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아내에게 읽어주고 괜찮은 책이 나오면 꼭 선물로 사서 주는 남편을

책 친구로 두고 있고,

박웅현 작가님과 읽고 좋았던 부분을 정리해서 교환하고,

좋은 책이 있으면 선물해주는 선배,

책 이야기로 술자리를 꽉 채울 수 있는 친구 등 물리적으로나 인간관계적으로

단연코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저자의 현실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부럽지만 그래도 현실에 만족한다.

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이지만 내가 읽고 쓰는 동안 방해 안하고 아이랑 놀아주기만 해도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기에.


이 책들 때문에 알지 못하던 세계로 연결되었다.
이 책들 때문에 인생의 계획을 바꾸기도 했다.


맞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고 책의 영향으로 삶의 희망을 다시 찾게 된다.

나에게는 《그리스인 조르바》와 《1q84》가 그랬고, 헬렌 니어링과 소로 그리고 장석주 작가님의 책이 그랬다.


저자는 자신에게 충격을 주고 가르침을 주는 책으로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과 카뮈의 《결혼, 여름》을 꼽는다. 이어 카뮈의 《안과 겉》, 《이방인》, 《시지프 신화》까지 읽어내려가면서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서의 행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이곳이 지중해였다.
내가, 지금, 여기를 이보다 더 오롯이 살 수 없는데, 지구 반대편에 지중해가 무슨 상관인건가.
여기가 지중해인데.지금, 여기가, 나의 지중해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이곳이 지중해가 될 수 있다.


그 때의 내가 궁금해서 다시 그 책을 읽는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책을 발견한다. 새로운 감정으로 줄을 긋는다.


저자처럼 나도 좋아하는 책을 만나면 줄을 긋고 생각을 메모하고 책을 못살게 굴고 싶어진다.

또한 책장에도 내가 새롭게 발견해주길 기다리는 책들이 가득하다.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이책만큼은 생각날 때마다 새롭게 들춰보는 책이다.


2장 '듣다' : 감정의 기록


음악과 나 사이에 생긴 결정적 순간은 평생 그 음악에 달라붙는다.
더 강렬한 경험이 와도 처음의 그 경험은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런 음악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옛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노래, 듣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음악, 듣고 있으면 시공간을 바꿔버리는 노래, 나만을 위해 불러주고 들려주던 그 노래.

처음 들었던 그 순간이 너무 강렬하여 평생 그 기억이 음악에 달라붙어 지워지지 않는..


나에게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그랬고, 평온을 주는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혼자일 때 무한재생하는 샘 스미스의 <I'm not the only one>, 즐거울 때 듣는  Maroon 5의 <Sugar>가 그렇다.


저자에게 그런 음악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님의  <사랑의 인사>였고, <샤콘느>였다.

그리고, 감상적인 글을 써야할 때는 팻 매스니의 <You>를, 해가 짧아지는 저녁이 되면 듀크 조단의 앨범을, 위로가 필요할 때는 <fix you>를 듣는다.


일을 하게 하고, 집중을 하게 하고, 여행을 하게 하고, 술맛을 돋우고, 기분을 바꿔놓고, 마음을 간지럽히고, 흐린 날에 햇살을 드리우고, 햇살이 가득한 날엔 비가 오게 하고, 해를 더 반짝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맞다. 이 글을 쓰게 했다. 음악이.


어느새 그녀에게 영향을 줬던 책들을 메모하고,

그녀가 즐겨듣는 음악을 찾아서 듣고 있다.


특히 영화 'young at heart'의 삽입곡

<fix you>(원곡자 - 콜드플레이) 는,

같이 노래를 부르기로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버리고 난 후, 휠체어에 앉아 할아버지 혼자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로

삶의 회환과 연륜이 느껴지는 깊은 울림과 뭉클함이 전해진다.


3장 찍다 : 눈의 기록


그 벽이 내게 말을 걸었다. 멈춰 섰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그 모든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품이었다.


저자는 스스로를 벽 중독자라 칭할 만큼 수많은 나라 수많은 도시들의 수많은 벽의 기억을 사진으로 찍는다.


마음이 움직여서 마음의 움직임에 몸의 움직임을 맡겼을 뿐이라는 그녀의 말이 좋다.

그래서 저자는 낡을수록 더 예뻐보이는 벽사진을 찍기위해 더 깊숙한 골목을 찾아들어간다.


그녀가 찍은 벽사진을 보고있으니 사진 속엔 분명 사람이 없는데도 사람냄새가 난다.


그리고 또하나,  그녀가 10여년 동안 찍어온

'늙음, 노인 혹은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추려내어 전시회도 한다.


여리고 미숙하거나
닳고 바래거나
모든 나이에는
그 나름의 색깔이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색깔이 있다.

ㅡ저자의 사진 전시회에 써놓은 글 <시간의 색깔> 中


4장 배우다 : 몸의 기록
그래서 오늘도 나는 뭔가를 한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저자는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기본기를 키우기 위해 뭔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고, 그렇게 비옥하게 가꿔진 토양이 있어야 회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고, 새로운 뭔가도 시도할 수 있고,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거저 만들어지는 토양은 없다.

햇빛도 쬐어주고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계속 다져주어야 좋은 토양이 될 수 있다.

서둘러서도 안 된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토양에서 튼튼하고 건강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나'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자.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말자.

남들보다 느리더라도 조급해하지 말자.



5장 쓰다 : 언어의 기록


쓴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 하나이다.


나는 읽고서 쓰고, 듣고서 쓰고
보고서 쓰고,경험하고서 쓴다.

읽고, 듣고, 보고, 경험하고, 지금까지 말한 그 모든 행위가 마지막에 '쓰다'에 도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점일지도 모른다.


모든 감각은 결국  쓰기와 연결되어 있다.

현재 나의 감각도 쓰기에 집중하고 있듯이.


뚜어난 문장가도 아니면서, 그럴듯한 시나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쓴다. 아무도 못 보는 곳에도 쓰고, 모두가 보는 곳에도 쓴다. 쓰고서야 이해한다. 방금 흘린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방금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왜 분노했는지, 왜 힘들었는지, 왜 그때 그 사람은 그랬는지, 왜 그때 나는 그랬는지. 쓰고 나서야 희뿌연 사태는 또렷해진다. 그래서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비루한 글솜씨지만 나는 쓴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읽든 무엇을 하든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쓰는' 일이 곧 '사는' 일이다.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쓰다'와 '살다'는 내게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나는 이 문장 속에서도 언제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쓸 수 있어 진실로 다행이다.


나도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고,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고.



책 속 삶의 위안이 되는 노래 <fix you>

https://youtu.be/G-e8LGMPTtE



When you try your best but you don't succeed

최선을 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때


When you get what you want but not what you need

원하는 걸 얻었지만 필요한 게 아니었을 때


When you feel so tired but you can't sleep

몹시 피곤하지만 잠들지 못할 때


Stuck in reverse

일상에 갇혀 버리고


And the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

눈물이 당신의 얼굴에 흘러내리고


When you lose something you can't replace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When you love someone but it goes to waste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헛수고가 되었을 때


Could it be worse?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을 때


Lights will guide you home

빛이 당신을 집으로 안내할 거에요.


And ignite your bones.

그리고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 거에요.


And I will try to fix you.

그리고 제가 당신을 치유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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