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사이 Sep 20. 2016

풍도를 아시나요

ㅡ 야생화의 보물섬 풍도를 다시 기약하며..

풍도에서의 마지막날 찍은 하늘과 바다

시댁의 부름에 추석 연휴를 처음으로 오롯이 시댁 식구들과 외딴 섬 풍도에서 보냈다. 잠수 타듯 세상과 단절된 채 3박4일을 지내고 무사히 다시 뭍으로 돌아왔다.


오래 전에 인천 쪽 여러 섬들 중 석모도나 대부도, 무의도, 덕적도, 자월도 등은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풍도는 생소했다.

풍도에 대한 정보라고는 2년 전 봄에 찍은 '1박2일' 촬영지였다는 게 전부였으니.

풍도에서 '1박2일' 촬영 당시 모습
풍도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 딸린 작은 섬이다.
섬의 명칭은 옛부터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
(楓島)라고 불렀으나, 청일전쟁 때 이 곳 앞바다에서 청나라 함대를 기습하여 승리한 일본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풍도(豊島)로 표기한 뒤로 우리 문헌에도 이대로 표기되어 굳어지게 되었다.
서해바다의 외딴 섬 풍도는 봄기운을 전하는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는 아름다운 섬이다. 이른 봄 풍도에는 야생화가 많이 자라나는데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등이 양지바른 언덕에 많이 자란다.
6·25 때는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한 때는 선창에 돛대가 빼곡했고, 1000여명이 살았다. 주민들은 굴딴 돈으로 자식들을 인천으로 유학보냈다.
지금은 후망산 자락 해안가에 사는 80여 가구 110명 남짓의 주민들이 전부다.
풍도의 위치

시댁에서 섬에 들어가는 배편부터 민박, 먹거리, 낚시 장비까지 준비해 놓으신 덕에 아무 계획없이 옷가지와 생활용품(민박이었기에 칫솔, 수건, 휴지, 드라이기 등 웬만한 기본적인 것들은 다 챙겨 넣었다), 책 두 권을 챙겨 아침 일찍 나섰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두고

아침 9시 반에 출발하는 정기여객선 서해누리호에 몸을 싣고(1일 1회 운항) 약 2시간 30분쯤 후 풍도에 도착했다.

* 중간에 들르는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에서는 1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풍도 선착장에는 우리가 3박4일의 일정동안 머물기로 한 민박집에서 주인 아저씨가 하얀 트럭을 몰고  마중 나와주셨다.

짐을 한가득 싣고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트럭 뒤를 아들과 손 잡고 몇 분 따라가다 보니 언덕 위 발전소 옆 민박집에 이르렀다.


시골 향기 바다 향기 가득한 민박집의 널찍한 대청 마루, 등목 하기 좋은 수돗가, 꼬리 흔들며 반기는 누렁개, 주인집 아들 내외의 귀여운 2살 꼬마 아들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온다.


방 세 개를 배정받고 왼쪽 편은 우리 가족, 오른 편 두 개는 시댁 식구가 쓰기로 했다.

작은 방에 뒤통수 불룩한 구식 TV, 소형 냉장고, 작은 이불장이 전부다. 그리고 한 켠에 비좁은 화장실이 딸려 있다. 청결 상태는 심히 좋지 못하나 바깥에 있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긴다.


바로 눈 앞에 하늘과 맞닿은 확 트인 바다 전경이 펼쳐져 있는 걸로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이걸로 족하다.


너무나도 한적한 이 곳에서는 시간 관념이 사라진다.

제 때 챙겨야 할 식사와 설거지와 격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그저 세상과 잠시 등진 채 해안을 따라 걷고 바다를 바라보고 풍경에 나를 맡긴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풍경
선착장에 물이 빠지고 파래가 가득 드러나 있는 모습
방파제 모양의 가드레일을 따라 걷다


방파제 모양의 가드레일을 따라 걷다 보면 돌 하나 하나에 풍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중간중간 그림과 함께.


돌에 쓰인 문구들을 지나 마주친 해변
풍도의 자갈밭 해안가
둘의 모습이 쌍둥이 같다
작은 바위 위 새 한 마리

풍도는 특히 봄에 야생화를 찍기 위해 찾는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많은 섬이기도 하지만

낚시하는 분들이나 백패킹하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한 낚시 경험이라고는 제주에서 단 한 번의 배낚시 뿐이었지만 그때 낚시대의 미세한 떨림과 환희의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는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광경만 봐도 반갑고 정겹다.

첫째날 루어 낚시로 잡은 빛나는 광어 한 마리
둘째날  밤에 잡은 장어 한 마리

셋째날은 배낚시에 나가 광어 한 마리, 우럭 한 마리를 잡아왔다.

시댁 분들이 잡은 물고기는 그게 전부였지만 낚시의 수고로움과 재미를 조금은 더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깜깜한 바다. 먼 곳의 불빛. 추석 밤 보름달 하나

낮에는 파리가, 밤에는 모기 들끓어 사정없이 손을 휘휘 젓게 만들지만 이 정도 괴로움은 감수할 수 있다.


다만 추석 명절 내내 친정 엄마를 홀로 두고 온 편치 않은 마음에 괜한 전화기만 부여잡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또한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았던 여행이었기에 돌아와보니 섬을 두루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내년 봄엔 내가 주체가 되어 친정 엄마 모시고 500년 된 은행나무와 붉은 바위,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러 다시 한 번 그 섬에 찾아가고 싶다.


마지막 날 새벽 비온 뒤 맑게 갠 풍도의 하늘과 바다 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꽃밭에 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