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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Sep 28. 2016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ㅡ 그림을 보고 시를 읽는 맛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신현림


아름다운 것을 항상 곁에 두고 보면서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고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창의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행복한 순간을 포착해 누릴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다.


눈이 반짝 뜨이는 책을 만났다.

출간일 2016년 1월 15일(총 288 페이지)

건조한 일상을 촉촉하고 말랑말랑하게 해 

그림 한 점, 시 한 수.


그림에 문외한이지,


'시와 그림을 어렵게 볼 필요가 없다. 만만하게 보자. 모두 우리 인생을 얘기한 것 아닌가.'


라는 저자의 말에 용기를 내어 책을 펼쳤다.


책장을 휘리릭 넘기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그림과 글(P.74~P. 77)


주세페 아르침볼도 <채소 기르는 사람>


나는 생각하기를 위대해지려면

우선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결심했다

정신의 큰 줄기로 젊은 힘은 높이 용솟음쳤다

하지만 소녀는 내게 말없이 가르치기를

하나님이 주는 최대의 것은

유명해지거나 위대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ㅡ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

                                                   <나는 생각하기를>中


못생긴 얼굴 속에 아름다운 내면이 감춰져있듯
엉뚱한 외모 속에 심오한 진실이 있다.


아르침볼도는 그 누구도 생각 못한 기발한 상상력으로 꽃, 채소, 생선, 책, 나뭇가지 등과 같은 사물들을 조합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게 하는 독특한 초상화를 그렸다.
당시에는 그의 그림이 저평가되어 무시를 받았다가 최근에서야 그림의 놀라운 상상력이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유머'는 미덕이다.
"못생긴 얼굴 속에 아름다운 내면이 감춰져 있듯 엉뚱한 외모 속에 심오한 진실이 있다"는 말은 그의 그림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설명일 것이다.


'인생의 심오한 진실을 찾아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비에른손의  <나는 생각하기를> 속 화자.

그가 얻은 진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명해지는 것도 위대해지는 것도 아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인이자 사진작가이신 신현림 작가님의 에세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한 권만으로도 공감가는 구절이 많아 참 좋았는데 이 책 《미술관에서 읽은 시》도 낯익은 작품부터 생소한 작품까지 어렵지 않고 친근하게 아우르는 저자의 글이 와닿는다.


다시 책날개부터 추천의 글, 작가의 서문을 찬찬히 읽어본다.


1. 삶에 관하여 - '누구나 자기 몫의 인생이 있다',

2. 절망에 관하여 - '울자, 때로는 너와 나를 위해',

3. 사랑에 관하여 -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고',

4. 고독에 관하여 - '고독이라는 아름다운 재료',

5. 위로에 관하여 - '위로는 쉽지 않다'


라는 5개의 커다란 목차 속에 저자가 선별한 그림과 시가 한 편씩 소제목 별로 묶여 있다.


예를 들어,


'바람처럼 갔으니 바람처럼 다시 올 것'

- 오윤 <칼의 노래> + 정희성 <판화가 오윤을 생각하며>


'가장 외롭고 누추한 날에 깨닫는 것들'

- 김정희 <세한도> + 신경림 <다시 느티나무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문태준 <한 호흡>


'늙어 간다는 건 계속 새로운 문턱을 넘는 일'

- 그랜트 우드 <식물을 든 여인> + 임경섭 <와시코브스카의 일흔여섯 번째 생일>


'비가 내린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 우타가와 히로시게 <오하시 다리 위에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 폴 베를렌 <내 가슴에 눈물 흐르네>


'밤은 완전하지 않으므로'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 폴 엘뤼아르 <그리고 미소를>


등 60여편의 그림과 시, 이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함께 한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처럼  '작은 박물관 하나를 통째로 선물받은 느낌'이다.



김정희 <세한도>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신경림 <다시 느티나무가> 中


지금 겪는 결핍을 통해 나는 성장하고 있노라고,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온전해질 수는 있다고.


낮고 소외된 자들에게 한결같이 귀 기울인 신경림 시인. 시인은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웠다는, 역설적이어서 더 숙연해지는 시를 세상에 놓아 주었다. 시 한 편에 80년 인생을 한 장면처럼 펼쳐 내는 내공.
그 단단함을 마주할 때면 조선 시대 대학자이자 정치가이며 화가이자 문장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떠오른다.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치려다 누명을 쓴 채 머나 먼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가 그린 세한도는 그림에 담긴 의미와 구도, 형태가 고루 조화를 이뤄 단연 걸작으로 손꼽힌다.
덩그러니 홀로 떨어진 집, 메마른 듯 보이는 고목 몇 그루...
쓰디쓴 시간을 다만 버티고 선 자신의 궁색한 모습이 추위에 바짝 말라 가는 고목 같다 느꼈을까?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집 한 채는 당시 그의 마음을 닮았다. 그러나 그가 보낸 유배의 시간들은 '다만 버티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유배 시기 그가 피워 낸 그림과 문장들은 오래도록 찬사를 받았으며 그의 예술혼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누구나 인생의 '세한도'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저 버틸 수밖에 없는 날들, 춥고 곤궁한 날들이 말이다. 그럴 때 나직이 자신에게 읊조려 보자. 지금 겪는 결핍을 통해 나는 성장하고 있노라고,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온전해질 수는 있다고.
(P. 26~27)



그랜트 우드 <식물을 든 여인>


늙어 간다는 건 계속 새로운 문턱을 넘는 일이었다

이미 여름은 가고 10월이 다가와 있었다

임경섭 <와시코브스카의 일흔여섯 번째 생일> 中 한 구절


'늙어가는 일은 계속 새로운 문턱을 넘는 일'이라는 잠언 같은 시 한 구절이 가슴 안에 뿌리를 내린다. 늘 새로운 변화를 꿈꾸면서도 그 변화가 힘에 부쳐 끙끙대고, 그러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현실에 적응하는 게 사람살이라...

나의 뿌리를 귀히 여기고 가꿀 줄 아는 마음.
그 마음의 주소만 확실하다면 시간은 오히려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나를 단련시킬 것이다.
(P. 36~ 37 中 발췌)



조르주 피에르 쇠라 <서커스>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 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 주지 않지 어느 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 주지 않지

                                         

                                            ㅡ 김사인 <화양연화> 中


지금을 잘 살펴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기를..


화려하고 역동적인 서커스. 찬란한 조명이 켜지면 갈고 닦은 몸 사위로 아름답고 아찔한 곡예가 펼쳐지고 관객의 호응은 절정에 이른다.
누구에게나 화양연화의 시간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그 순간들을 지나 보낸 후 비로소 깨닫는다. 생은 정말 속절없음을.
김사인 시인의 시 역시 우리에게 일러준다. 시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섬광처럼 흘러 우리도 앞선 사람들처럼 눈멀고 귀 먹는 때 오니, 지금을 잘 살펴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라고.
푸른 잎사귀 같은 시간들이 바람에 흔들려 내는 싱그런 소리를 마음 가득 담아 본다. 시간의 색이 짙어질수록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기를.
(P.  80~81)



누군가에게 '등불'처럼
친밀한 사람이 되어 주기를..


피테르 브뢰헬 <거지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요

우린 문둥이가 아니에요

거지들, 그래 거지들이라고 불러주세요

썩어 없어진 다리를 나무 받침목으로 대신하고

짧은 목발로 몽당한 몸을 지탱하지만

양지 바른 날의 외출길이에요


아무 일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에 가득한 경계심 혹은 음습한 두려움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당신이 일을 마치고 귀가하듯이

저녁을 먹고 산보를 하듯이

화창한 오후 한때 시장에라도 둘러볼 요량으로

우리도 사육제에 가는 길이에요


                                       ㅡ곽효환 <거지들> 中 발췌


피테르 브뢰헬은 고단한 민중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민중들의 삶을 묵묵히 응원했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들의 불안한 걸음걸이에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은 곽효환 시인의 시는 '장애'라는, 나와 다른 모습을 한 타인에게 우리가 보내야 할 따뜻한, 그리고 세심한 시선을 가만가만 일러 준다.
(P. 147)


빈센트 반 고흐 <자고새가 있는 밀밭>
이토록 쓸쓸한 그림이 다 있을까.
황량한 빈 터, 밀밭 위로 한 마리 새가 날아드는 풍경.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는 빠르게 붓질하는 고흐의 손이 떠올랐다.
마음속에선 고독과의 엄청난 싸움이 벌어졌으리라.

영원히 어디론가 떠나왔고 떠도는 삶이 자고새의 것이라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로움이 사무치는 순간이 와도 나만 알고 가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따스하게 손 잡아주는 사람으로 살다 가야 한다. 고흐도 그런 삶을 살려고 몸부림쳤듯이.
(P. 228~229 발췌)


그대가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괴로움과 고통으로 마음 아파할 때 위로가 되어 주며

가난으로 어려워할 때 힘이 되어 주며

나그네를 맞이하고

병자를 정성껏 돌보아 주며

외로운 이 버림받은 이를 찾아가 친구가 되어 준다면

그것은 곧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

그대 곁을 스쳐 가는 이 모두에게

조그만 부드러운 바람 같은 친절은 베푼다면

그것은 곧 내게 베푼 것이며

그대는 그들 안에서

나의 얼굴을 본 것입니다


                          ㅡ J. 갈로 <그것은 곧 내게 베푼 것>



그림 한 점, 시 한 편에 어지러운 마음이 잔잔해짐을 느낀다.

저자의 따스한 말 한 마디에 마음의 온기가 채워진다.


나또한 저자처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


는 괴테의 말을 되새겨본다.




당신과 더 나누고 싶은 그림과 시, 그리고 글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실천하고 싶습니다.


함께 해 주시겠어요..?


♡지성 작가님이 만들어주신 캘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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