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다
아이와 읽어도 좋을 책 《총을 거꾸로 쏜 사자 라프카디오》.
어린 사자가 총으로 '파리의 귀에 붙은 먼지까지' 날려보냈다는 부분에서,
'빵, 탕, 피웅, 땅 ' 총 쏘는 소리에서,
마시멜로를 좋아하는 어린 사자가 온통 마시멜로로 만든 양복을 입는 장면에서.
아이는 재밌다고 깔깔깔 웃는다.
재미있게 읽히지만 읽다 보면 어린 사자를 통해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쉘 실버스타인 이다.
각 페이지에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가 있고,
중간중간 상상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친근한 말투가 흥미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린 사자이다.
처음에는 여느 사자들처럼 정글에 살면서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갑자기 '빠앙!'하는 총소리에 사자들은 정신없이 도망치는데 어린 사자는 사냥꾼에게 흥미를 느끼며 접근한다.
사자는 사냥꾼의 차림새가 마음에 들어 접근했을 뿐인데 사냥꾼은 응당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일 거라는 생각에 총을 겨눈다.
어린 사자는 하는 수 없이 사냥꾼을 잡아먹는다.
어린 사자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막대기(총)와 총알도 먹어치우려다 호기심이 생겨
총 쏘는 방법을 밤낮으로 연구한 끝에 세계에서 제일 가는 명사수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사자는 사자들을 공격하는 사냥꾼들을 향해 맞사격으로 사냥꾼을 소탕한다.
한참동안 정글은 아주 평화롭고 고요했다.
어느 날 서커스단장이 어린 사자를 찾아오고 총을 쏘는 묘기로 돈을 벌고 명성도 얻자고 유혹한다.
어린 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마시멜로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서커스 단장을 따라 정글을 떠난다.
어린 사자 라프카디오는 자신의 '으르렁' 한 마디면 못 할 게 없었고 좋아하는 마시멜로도 마음껏 먹고 사람들의 환호성도 받는다.
라프카디오는 유명해지고 날이 갈수록 점점 사람처럼 변해갔다. 골프도 배우고 수영과 다이빙도 즐기고 멋진 몸매를 위해 운동도 하고 노래와 기타도 배웠다.
자서전을 집필하고 문학을 즐기는 사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라프카디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엘리베이터를 1,423번이나 타고
자신이 좋아하는 마시멜로를 23,241,560개를 먹었지만 모든 것이 다 진절머리가 난다고.
돈도 양복도 지긋지긋하고 모든 일이 다 짜증스럽기만 하다고. 뭔가 색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서커스 단장은 울고 있는 라프카디오에게 아프리카로 사냥꾼들과 사냥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뒤 사냥꾼은 사자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그러던 중 나이 많은 사자 한 마리가 라프카디오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니, 자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총을 쏠 수 있나?"
"그야, 당신은 사자이고, 난 사냥꾼이니까요.
"자넨 사냥꾼이 아니야. 자네는 사자라네. 옷 뒤로 삐죽이 나온 꼬리도 보이는데."
라프카디오는 그 소리에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사자였다는 사실을.
나이 든 사자는 사냥꾼들을 처리하고 정글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토끼를 날로 잡아먹으며 신나게 살자는 사자의 말에 라프카디오는 끔찍해한다. 어느새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길들여졌기에.
라프카디오는 혼란스러워한다.
더이상 사자라고 할 수도 없고, 100%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냥꾼이 되고 싶지도, 사자가 되고 싶지도 않은 라프카디오.
"이것 봐요, 전 사자에게 총을 쏘고 싶지도 않고, 분명 말하지만 사냥꾼들을 잡아먹고 싶지도 않아요. 전 정글에 살면서 토끼를 날로 먹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도시로 돌아가 버터밀크나 마시면서 살고 싶지도 않아요. 꼬리잡기 놀이도 하고 싶지도 않고, 카드놀이도 하고 싶지도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냥꾼들이 사는 세상에 속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자들의 세계에 속한 것 같지도 않아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호기심에 시작한 일, 뜻밖의 재능, 타인의 유혹, 막연한 상태에서의 도전과 성공, 그러나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의미한 성공,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라프카디오.
그에게 공감과 연민이 간다.
나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순진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참 많이도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받고 그랬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같은 존재인 라프카디오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다.
인간 관계도 서툴고,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움을 느끼는..
책 표지의 얼떨떨한 표정과 두려움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
라프카디오는 총을 내려놓고, 모자를 집어들고는 코를 몇 번 훌쩍이다가, 언덕 너머로 길을 떠났다. 사냥꾼들과 사자들로부터 멀리 떠나갔다. 라프카디오는 걷고 또 걸었다. 얼마 되지 않아, 멀리서 사냥꾼들이 사자에게 총을 쏘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사자들이 사냥꾼을 잡아먹는 소리도 들렸다. 라프카디오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가다 보면 어디라도 이르게 되겠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태양이 언덕 너머로 막 저물어가고 있었다. 정글은 조금 쌀쌀해지기 시작하더니 따뜻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라프카디오는 홀로 외로이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나' 자신을 찾아 길을 떠나는 라프카디오.
나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이후의 그 사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도 갈 곳을 못 찾고 방황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서전도 집필하고 문학을 즐기던 경험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됐을까.
아니면 강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을 다니는 여행자가 되었을까.
제목의 '총을 거꾸로 쏜' 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른 이를 겨누는 총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하게 된, 또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 사자를 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의적인 해석을 해 본다.
이 모든 것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홀로 외로이 길을 떠난 사자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우리의 앞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