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토끼의 재능보다는 거북이의 끈기를
한 우물을 파는 동안에는 '과연 나에게 재능이 있을까'라는 의혹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밀고 나갔었다.
하지만 나의 열정만으로 밀고 나가서는
안되는 일이었기에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 채
뒤늦게 다른 길을 찾아 나서기도 했었다.
무엇을 하든
'나는 왜 이렇게 특별한 재능이 없을까'
라는 고민은 늘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배웠던 피아노, 미술, 수영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 배웠던 외국어, 악기, 운동 등..
배워놓은 건 다수이나,
지금까지 뭐 하나 똑 부러지게 할 줄 아는 게 없다.
초등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체조 선수 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길로 갔으면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었을까.
성인이 되어 차를 몰고 다니면서 스피드를 즐겨 잠시 카레이서에 도전하고픈 맹랑한 꿈을 꾼 적도 있었는데,
실천으로 옮겼다면 용인 스피드웨이를 달리고 있었을까.
문제는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꿈만 꾸다가 또는 배우다가
중도에 포기했다는 데 있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후천적인 노력과 피나는 훈련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김연아, 손연재, 박인비 선수 등 지금의 그녀들을 볼 수 있었을까.
신영복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필재(筆才), 즉 글을 쓰는 재주를 두고 하는 말씀이 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은 대체로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도리어 함정이 되어 기교를 벗어나기 어려운데 비하여
재능이 없는 사람은 혼신의 힘과 정성을 다해 단련의 미가 쟁쟁히 빛나게 된다'고.
'만약 필재가 뛰어난 사람이 혼신의 노력으로 꾸준히 쓴다면 흡사 여의봉 휘두르는 손오공처럼 더할나위 없겠지만, 재능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재주에 쉽게 탐닉하기 마련'이라고.
그러니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끝까지 도전해보지도 않고 쉽게 좌절하지 말자.
숨겨진 재능은 발견되고 발현될 수 있다.
'특별한 재능'은 없더라도 부딪혀보고 정성을 다해 노력한다면 '소소한 재능'은 있었음을 깨닫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공간이 아닌 다수가 보는 공간에서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정여울 작가님이 《미디어 아라크네》라는 책에서 하신 말씀처럼,
'문학을 사랑했지만 감히 작가의 꿈을 꿔보지 못한 이유도 내게는 재능이 없다는 절망' 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구절들은 나같은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희망이 된다.
지금은 감히 말할 수 있다. 재능은 광에서 곶감 꺼내 먹듯 정해진 분량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고.
재능은 뜻밖의 타인과의 부딪힘을 통해, 알수없는 세계와의 충돌을 통해, 감당할 수 없는 사건과의 조우를 통해 매일매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제련되고 폭발하고 잉태되는 것이라고. 재능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무구한 집중에서, 낯설고 어이없는 타인을 만나 그를 미치게 사랑하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나 아닌 나'를 향해 질주하는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는 재능을 발견하지 않으려는 아집과 태만에 있는 것이지 재능의 유무 자체가 아니라고. 누구도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는 재능을 가질 순 없는 것이 아닐까.
ㅡ 정여울, 《미디어 아라크네》中
맞다. 지금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책을 통해 만나게 된 인연 때문이었고,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고 성찰해나가기 위함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과의 조우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을 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미친듯이 읽어내려간 책 덕분이었고, 다친 마음을 다독이며 써내려간 글쓰기 덕분이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흔들렸던 마음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조금씩 떠오르고 단단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여행을 가든, 소소한 일을 겪은 경험이든 나의 모든 것이 글로 귀결되고 있다.
손에 책을 쥐고 있지 않으면, 종이와 펜을 들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뒤늦게 빠진 책읽기와 글쓰기의 즐거움은 그 어느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이제 더는 글재주 없음을 탓하지 말자.
토끼의 재능보다는 거북이의 끈기와 꾸준함을 무기로, 글쓰기만큼은 겸허한 자세로
오래도록 지속해나가도록 하자.
그리고 한가지 더,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내 곁에 응원해주는 이가 있어 더 힘이 나는 그런 여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