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정성을 다해 살 만한 인생이기를..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감독 : 가와세 나오미
출연 : 키키 키린, 나가세 마사토시, 우치다 카라
앙~
제목 참 귀엽다.
"벚꽃잎이 손을 흔들고 있어."
지는 벚꽃과 해맑게 인사하고,
팥들에게
"힘내서 잘해 봐!"
라고 외치는 영화 속 할머니도 귀여우시다.
'앙'은 일본어로 '단팥소'를 뜻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단팥소를 넣어만든 빵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다.
별 것 아닌 얘기에도 까르르 웃는 여고생 손님들과 대조적으로 가게 주인인 '센타로'는 시종일관 심드렁한 표정으로 도라야키를 만들고 있다.
어느 날, 센타로의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며 '도쿠에'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가 찾아온다. 고령에다 손도 불편해보이는 할머니 모습이 탐탁치 않은 센타로는 안 되겠다고 말한다.
도쿠에 할머니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팥소가 든 하얀 비닐봉지를 건네고 돌아선다.
전화만 하면 바로 갖다주는 업소용 팥을 써왔던 센타로는 생각지 못한 팥소의 맛에 깜짝 놀란다.
'이런 맛은 처음이야..'
"괜찮으시다면 함께 일해주시겠어요?"
센타로의 말에 아이처럼 기뻐하는 할머니.
이렇게 센타로와 도쿠에는 '단팥'으로 인연을 맺는다.
"단팥은 마음으로 만드는 거야."
50년 동안 손수 단팥을 만들어온 할머니와 생전 처음 자기 손으로 단팥을 만들어 보는 센타로.
둘은 아침 일찍 가게에 나와 함께 단팥소를 만든다.
붉은 빛이 탐스러운 단팥을 끓이고, 깨끗이 물에 헹구고, 한동안 뜸을 들인다.
"극진히 모셔야 해. 힘들게 왔으니까. 밭에서 여기까지."
팥을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는 순수하고 진지하다.
익은 팥들은 으깨지기 쉬우니 조심조심. 떫은 물을 흘려 보내고, 팥과 설탕을 섞는 과정에서 또 한번 기다려야 한다.
"갑자기 끓이는 건 실례야. 맞선 같은 거지.
뒷일은 젊은 남녀에게 부탁하는 거야."
라며, 팥과 설탕을 연인에 빗대어 수줍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렇듯 기다림과 정성을 다해 만든 단팥소를 넣은 도라야키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다.
그 덕분에 여고생들의 재잘거림도 즐겁게 받아들이게 된 센타로. 도라야키를 만드는 손놀림이 경쾌하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이들이 행복을 느낄 만하니 어김없이 불행 또한 찾아온다.
할머니의 비밀이 소문으로 퍼지면서 줄 서서 기다렸던 손님들의 발길은 뚝 끊기고, 센타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압박에 그만 할머니를 떠나 보내고 만다.
저마다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
편견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처럼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후 이어지는 가슴 아픈 만남과 먹먹한 이별은 영화를 직접 보신 분들은 알리라.
센타로는 할머니의 바람처럼 자신만의 특별한 도라야키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영화의 끝에 다시 환하게 만발한 벚꽃 아래 서 있는 센타로.
영화의 처음은 도쿠에 할머니가 하얗게 하얗게 핀 벚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영화의 마지막 도쿠에 할머니의 말을 기억하며..
다시 정성을 다해 살아갈 용기를 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