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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Oct 11. 2016

<비포 미드나잇>

ㅡ 지금을 사랑하고 그때를 그리워하며..

<비포 미드나잇> 

<비포 미드나잇> (2013)

이 영화 참 수다스럽다. 여자주인공도 남자주인공도.(영화 속에서 둘은 부부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다로 다투고 수다로 푼다.

지금 우리 부부의 모습과는 다르지만(연애 때와 결혼 초엔 나도 무척 수다스러웠는데..)수다 속 담긴 이야기들은 우리가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피부가 달라도 사는 나라가 달라도 쓰는 언어가 달라도 사는 모습은 다르지 않다는 걸 수다에 고스란히 담아 보여준다.


영화 속 주인공의 41세라는 나이가 내게도 어느덧 바로 코앞이어서일까.


"언제 41살이 됐는지..믿어지지 않아."


라는 영화 속 대사가 낯설지 않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그들의 아저씨 같고 아줌마스러운(그들에게 이런 호칭을 쓰게 될 줄이야..)모습이 매우 몹시 친근하다.

무엇보다 비포 시리즈 세 편에 동일한 두 배우가 20대 30대를 거쳐 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니 그것만으로도 현실감이 넘친다.


제시(에단 호크) : 기차에서 만난 남자 기억하죠?


셀린느(줄리 델피) : 아뇨, 완전 삭았어요.


영화 속에서 농담 삼아 주고 받는 둘의 대화가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비포 선라이즈>(1995)에서의 첫만남이 무려 2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니 말이다.

그리고 <비포 선셋>(2004)으로 9년만에 재회한 두 사람.

<비포 미드나잇>(2013)에서는 쌍둥이딸을 둔 중년 부부로 다시 만난다.

(제시에게는 전 부인과 낳은 아들 '헨리'가 있다.)


세 편의 영화에서 해가 뜨고(비포 선라이즈) 해가 지고(비포 선셋) 한밤이 되기까지(비포 미드나잇) 살며 사랑하며 다투며 화해한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의 배경은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그리스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휴가를 보내는 제시와 셀린느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때론 차안에서 잠든 아이들을 뒤에 두고,


때론 두 커플과 나이 지긋하신 두 노인과 함께 식사하면서,


때론 오솔길을 지나 골목골목을 걸으면서.


식사 중 각기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성적인 얘기도 스스럼없이, 둘의 첫만남과 재회 그리고 한 방에 쌍둥이를 낳고 결혼하기까지 초고속으로 압축해서 이야기 해준다.

여기에서 젊은이들의 대화를 경청하던 두 노인의 연륜과 혜안을 보여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건 상대방의 사랑이 아니라 삶 전체의 사랑이야."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소중하지만 잠시 왔다 가는 거예요."


식사 후, 둘은 친구들이 아이들 없이 오붓한 밤을 보내라고 마련해준 호텔로 가는 길에서도 내내 걸으며 수다를 이어간다. 


"이렇게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샐린느가 이끄는 소소한 대화들이 공감가게 와닿는다.


셀린느 : 우린 진화하는 거 같지만 그다지 안 변하나 봐.


제시 : 해가 갈수록 더 소심해지고 주눅 들게 돼.

이해할 수 없는 게 더 많아져서.


셀린느 : 모르는 건 괜찮아. 중요한 건 보고 찾으려는 호기심이지.


제시 : 그 열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


셀린느 : 오늘 기차에서 처음 봤다면 내가 매력 있었을까?나한테 말 걸고 같이 내리자고 할 거야?


제시 : 다른 하고싶은 말을 돌려서 묻네.

'니 처지를 알고 있냐?', '그래도 바람 피울거냐?'


셀린느 : 맨틱한 말 기대했는데 초쳤어!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고 어느덧 해가 저문다.

둘은 비로소 대화를 멈추고 오롯이 지는 해를 바라본다.

석양을 바라보는 다정한 두 사람

호텔에 기분 좋게 들어선 두 사람.

호텔종업원은 작가인 제시를 알아보고 싸인을 부탁한다. 셀린느에게도 소설 속 주인공이니까 같이 싸인해달라는 여종업원의 권유에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싸인하는 그녀. 그의 소설 속 그녀의  모습은 그가 만들어낸 상상력일 뿐이기에.


호텔 들어갈 때까진 분위기 좋았는데..

호텔방에 들어서는 두 사람은 제일 먼저 청결상태를 확인한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연애 시절에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던거 같은데..지금의 내모습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만족스러움을 느낀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키스를 나누고 침대에 함께 누워 사랑을 속삭인다. 뜨겁게 불태울 밤의 흐름을 방해할 아이들도 없건만 두 사람이 마음놓고 사랑을 나누려는 순간 셀린느의 전화벨이 울린다.(현실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예기치 않게 어그러지는 경우가 허다하듯이)


그리스에서 함께 휴가를 보내고 먼저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 전 부인에게 돌려보냈던 제시의 아들 헨리는 제시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셀린느에게 미국 시카고로 이사가서 아들 가까이 살고싶은 마음을 내비치나, 셀린느는 그간 느꼈던 속내를 이야기하며 제시와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전 부인과의 문제, 양육의 문제, 셀린느의 직장 문제 등등..)

"가끔 당신은 너무 가더라"

호텔 방에서 그들은 쌓였던 감정들을 꺼내고,  비꼬고, 말꼬리를 잡고, 분노하고, 자책하고, 책망한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전화를 받고 남편과 말다툼을 하는 셀린느의 모습은 서로 감출 것 없는 중년 부부의 침실에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셀린느 : 우리가 딸애들 없었다면 이렇게 싸우면서 여태 함께  살았을까?내 생각에 당신은 시카고로 가야 해. 가서 헨리 챙기고 난 파리에서 애들하고 원하던 직장 다니고.


셀린느는 헨리만 생각하고 자신의 직장과 파리에서의 삶을 포기하라고 하는 남편이 서운하다.

둘의 언성은 점점 높아지고,


셀린느 : 내가 한 말이나 한 짓 다신 책에 써먹지 마! 애들 것도 그렇고!


제시 : 희생한 주부처럼 굴지마. 억압당하는 연기 아주 죽이는데. 당신 그 에너지의 8분의 1만 떼내서 욕하고 징징대고 걱정하는 대신 연주에 쏟으면 멋진 연주자가 될 거야.


셀린느는 말싸움 끝에 신발도 안 신은 채 결국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린다.

잠시 후 다시 들어오는 그녀.


셀린느 : 당신이 이긴 것 같아?활동적이고 열정적인 여자들이 애 키우는 거 보통 일 아니야. 백 번도 넘게 죽고 싶더라. 나 힘든 내내 당신은 북투어나 헨리 일로 집에 없는데 부담 주기 싫었어. 어쩔 줄 몰라 애들 붙들고 운 게 몇 번인 줄 알아?그럴 때 엄마가 느끼는 죄책감을 알아?


제시 : 그런 기분을 당신만 느낄까?


셀린느 : 당신은 이해 못 해. 애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실수만 연발했어..


제시는 안쓰러운 모습의 그녀를 다독이고

이내 둘은 화해하는 듯 하다가 또다른 화젯거리가 불씨가 되어 폭발한다.

그녀는 다시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영화 초반 "왜 여자들은 남자들을 바꿔보겠다고 시간을 허비하죠?"라는 물음이 나온다.

"난 하나 바꿀 수 있다면, 날 바꾸려는 걸 막고 싶어"

라는 제시의 대답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자는 감정적이고 남자는 이성적'이라는 제시의 발언에 발끈하고, 알면서도 재차 확인하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는 게 여자인 반면, 제시는

'다큐로 말해도 개그로 받아치'거나 복잡한 감정 싸움을 싫어하는 남자이다.


홀로 남겨져 텅빈 호텔방을 둘러보는 제시.

잠시 뒤, 그는 바닷가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는 셀린느에게 다가가 장난스럽게 말을 건다.


기차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리고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시간 여행자를 자청하며,


제시 :  당신 구해주러 왔어요. 하찮은 일로 눈이 멀게 될까 봐.

잊었나 본데, 기차에서 만난 다정하고 로맨틱한 남자 있죠? 그게 나예요.

그쪽은 당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워요.


그리고 가상의 편지를 읽으며 속마음을 슬며시 털어놓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속 썩여놓고 미안해하는 한심한 남자지만 당신이 유일한 희망이야.'


결혼 전 20대 시절에 봤다면 공감도가 지금만큼은 아니었을 거다. 그 시절의 난 무조건 내가 직접 겪어봐야 깨닫는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노년 모습도 무척 기대되고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을 거슬러올라가 봐야겠다.

지금을 사랑하고 때를 그리워하며..


"완벽하진 않지만 이게 실제야”


라는 제시의 말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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