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추악한 현실, 은폐된 진실을 고발하다
뉴스타파 최승호 PD님이 제작하신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2016. 10. 13 개봉)
영화를 보고 나니 김탁환 작가님의 소설 《거짓말이다》에서 내 뇌리에 박힌 한 구절이 떠오른다.
'뜨겁게 읽고 차갑게 분노하라'는.
이 영화 역시 뜨겁게 보고 차갑게 분노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는 2013년 3월 5일 유우성 사건 첫 재판(실제 녹음)으로 시작된다.
검사의 계속되는 질문에 여자는 '네', '네'..그저 힘없이 대답할 뿐이다.
그녀의 이름은 유가려.
2013년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던 유우성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오빠가 북한에 드나들며 국내 탈북자 200여 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게 맞다고 '자백'한다.
하지만 그 '자백'의 배후에는 국.정.원 이 있었다.
소위 간첩을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탈북자들을 조사하는 국정원 합심센터(중앙합동심문센터).
그녀는 근 6개월을 독방에 갇힌 채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로 인한 공포감에 허위 진술을 하게 되고 죄책감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1년 겨울에는 실제 탈북자 1명이 자살했다.
그의 이름은 한종수씨(본명 한준식)로 국정원 합심센터에서 사망했다. 국정원은 그의 죽음을 2주간이나 감추고 있었다.
무연고자 묻힌 곳에 묘비도 없이 돌무더기로 남은 사람.
국정원은 중앙합동심문센터에서 사망한 한준식씨 사건에 대해 '일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나쁜 사람들..
2015년 10월 19일 유우성은 다행히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동생이 협박과 강요에 의해 허위 자백을 했음을 밝히고 검찰이 중국과 북한을 오갔다는 증거로 제출한 문서(화룡시 공안국으로 발급된 서류 및 공증)가 모두 위조인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검사들과 국정원 직원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하지만 허위 자백케 만든 대한민국에 사과받아야 할 여동생은 추방당했다.
최승호 PD는 이 모든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에 조작된 사건이기에 그를 직접 찾아가 간첩 조작으로 피해 본 유우성에게 사과하라 권유하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끝끝내 외면한다.
현 정부의 최측근이자 국정농단의 주범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이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있던 박정희 시대 때부터 간첩사건을 조작해왔다. 이후 40년간 법을 주무르며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간 인물이다.
1975년 이철씨는 남산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 발가벗긴 채 성적 수치심을 당하고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최승호 PD는 김기춘도 직접 찾아간다.
'학원침투간첩사건' 얘기에 정색하는 김기춘에게 최승호PD는 끈질기면서도 정중하게 한마디 부탁한다.
'할 말 없다, 기억이 없다' 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일축해버리는 김기춘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난 30일 방송되었던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영화 <자백>을 인용하여 김기춘과 박대통령을 향해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여기서 가해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사람, 김기춘이다. 누군가는 그를 일컬어 현대사 질곡의 핵심'이라고 말했다지만, 정작 그는 그 일을 모른다고 말했다. 어두운 역사를 버텨온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든 '모른다'는
그 말은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마찬가지다"
최승호PD는 재일교포이자 간첩조작(74년 5월4일의 사건) 피해자 김승효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그 분 역시 40년 전 남산의 지하 중앙정보부에 잡혀갔다. 구타와 폭행으로 강제로 지장을 찍게 만들고, 고문 후 정신 이상으로 일본에 돌아온 후에도 수십 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그렇게 한 것이 박정희야.
지옥같은 세월을 잊어버리고 싶다.
가슴이 아파서 죽고 싶은 심경이다."
국가가 무참히 짓밟은 개인의 삶, 그로 인한 지울 수 없는 상처..그 분의 말이 잊히질 않는다.
영화의 끝에는 뉴스타파 회원분들, <자백>스토리 펀딩 후원자분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과 후원자분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감사합니다.
1958년 진보당 사건(조봉암 사형 집행)부터 2014년 홍강철 보위부 직파 간첩조작사건
(2016년 무죄)까지 대부분 40여년이 지나서야 무죄판결을 받은 수많은 사건들이 올라간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깊은 한숨이 나온다. 마음이 무겁다.
사람 목숨을 뭐같이 알고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음으로 몰아넣은
뻔뻔한 작자들은 버젓이 살아있으니 말이다.
추악한 현실, 은폐된 진실.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 할 명백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