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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Dec 20. 2016

호라티우스 《시학詩學》과 플라톤 《시론詩論》

  ㅡ 아리스토텔레스 《시학》과는 또다른 맛

호라티우스 《시학》과 플라톤 《시론》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옮김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뿐만 아니라 호라티우스의 《학》, 플라톤의 《시론, 롱기누의 '숭고에 관하여' 도 담겨 있다.

마지막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호라티우스의 '시학'과 플라톤의 '시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보다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


먼저 플라톤의 '시론'(p.211~p.254)은 《국가》 제 10권의 앞부분으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작은 형인 글라우콘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당시의 시 또는 예술에 대한 태도(시에 매력을 느끼면서 동시에 경계하는)가 상당히 흥미롭다.


"모방적 시인이 원하는 것이 분명히 대중으로부터의 명성이라면, 그는 본래부터 혼의 가장 훌륭한 부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의 지혜도 이 부분을 즐겁게 해주도록 돼 있는 것이 아니네. 오히려 그는 화를 잘 내며 변덕스런 성격을 위하여 만들어졌네. 왜냐하면 이런 성격은 모방하기가 쉽기 때문이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를 붙들어다가 화가의 한짝으로서 그와 나란히 세워도 좋을 것이네. 왜냐하면 그는 진리에 비해 열등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나 혼의 열등한 부분과 교제하고 가장 훌륭한 부분과 교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가를 닮았기 때문이네. 그는 혼의 열등한 부분을 일깨워서 가꾸어주고 강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이성적인 부분을 손상한다네. 개개인의 영혼 안에 나쁜 국가 제도를 만들어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네."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

"그런데 여보게, 글라우콘 자네도 역시 시의 매력을 느끼지 않나? 특히 호메로스를 통해서 시를 볼 때 말일세."


"네, 대단한 매력을 느낍니다."


-

"그리고 우리는 자신은 시인이 아니지만 시인의 친구들인 시의 애호가들에게도 시를 위하여 운율이 없는 보통말로 시는 쾌락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인간 생활에도 유익하다는 것을 입증할 기회를 주기로 하세. 그리고 우리는 호의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하세. 시가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익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이익이 될 테니까 말일세."


"어찌 이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

"그러나 시가 자신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는 한 우리는 두 번 다시 시와 유치한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시를 들을 때마다 우리 자신을 향하여 지금 이 이야기를 주문으로 외워야 할 것이네. 그리고 우리는 시를 듣는 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국가를 염려하여 시를 경계해야 하며, 시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네.

특히, 시에 자극되어 정의나 그 밖에 다른 덕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네."


"저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누구나 동의하리라고 믿습니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학'(p.165~p.207)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공감가는 내용(글을 쓸 때 신중을 기해야 할 것들, 작가로서 지녀야 할 자세 등)이라 단숨에 읽힌다.



'작가들이여, 그대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소재를 택하시라. 그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며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오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시라.


명쾌한 배열의 장점과 매력은 내가 알기로는 지금 이 순간 꼭 필요한 말만 하고 나머지는 모두 뒤로 미루어 지금은 말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시를 쓰겠다고 약속한 작가는 언어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여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재치있는 결합을 통하여 일상어에 새로운 맛을 준다면 매우 세련된 인상을 줄 것입니다.


현대적 감각에 맞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시인의 권리입니다.


시는 물론 감미로워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의 얼굴은 웃는 자와 더불어 웃고, 우는 자와 더불어 우는 법입니다. 그대가 나를 울리고자 한다면 먼저 그대 자신이 고통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대의 불행이 나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그대가 남이 시키는 말만 서투르게 늘어놓는다면 나는 하품과 웃음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용어로 시를 쓰겠습니다. 누구나 그 따위 것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겠지만 막상 시도하게 되면 아무리 땀 흘리며 애써도 헛수고가 되게끔 말입니다. 문제는 말을 묶고 엮는 능력이며 이러한 능력만이 일상어에 품위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대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꼼꼼히 손질하면서 잘 깎은 손톱으로 열번씩 음미해보지 않은 시일랑 물리치시라.


나는 스스로 베지 못할망정 쇠를 예리하게 해주는 숫돌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은 이렇다 할 만한 것을 쓸 능력이 없으므로 시인의 과업과 의무, 즉 작시의 원천은 무엇이며, 시인을 키워주고 형성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시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인가, 진정한 예술이 인도하는 곳은 어디이며 과오가 인도하는 곳은 어디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대의 교훈은 간결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투표권이 있는 나이 지긋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무익한 작품을 비난하고, 거만한 젊은 기사들은 도덕적으로 엄격한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익한 것에 달콤한 것을 가미하여 쾌감과 교훈을 동시에 주는 작가는 만인의 갈채를 받게 될 것입니다.


훌륭한 시를 만드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냐 아니면 숙련이냐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풍부한 광맥이 결여된 노력이나 가꾸지 않은 재능이 무슨 소용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양자는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서로 제휴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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