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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Dec 29. 2016

함께 산다는 것 <토일렛toilet>

ㅡ 공유와 소통이 가져오는 변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토일렛>

2010. 12월 개봉작

<요시노 이발관>, <카모메 식당>, <안경> 등 슬로무비를 대표하는 영화를 만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토일렛>.


이 영화를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오기가미 감독의 다른 영화들보다 별로다라는 평이 많아 마음을 비우고 봤는데 기대 이상이다. (나또한 결말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전작들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자립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는데 의도치 않게 '슬로 라이프 무비'

라는 수식어가 붙어 이를 벗어나고자 만든 작품이 <토일렛>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토일렛>에서는 이전 작품과는 다른 색다른 맛과 유쾌함이 느껴진다.


영화의 시작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모리(데이빗 렌달), 자기밖에 모르는 여동생 리사(타티아나 마슬라니), 고양이 '센세이', 그리고..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모타이 마사코)라고 말하는 레이(알렉스 하우스).


알렉스 하우스(레이 역)와 데이빗 렌달(모리 역)

'인생은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는 것의 연속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레이의 유일한 취미는 로봇 프라 모델 이다.


형에게 "냉정한 인간 같으니라구",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인간" 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는 매일 똑같은 7벌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연구실에 출근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살던 숙소에 화재가 발생하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형, 여동생 그리고 할머니 원치 않는 동거를 하게 된다.


영어로 얘기하는 서양인 세 남매(이 영화의 배경은 캐나다 토론토이다)와 일본인 할머니. 그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기에 대화가 거의 없다.


모타이 마사코(레이의 할머니 역)와 고양이 '센세이'

할머니(모타이 마사코)는 아침마다 화장실 나오면서 한숨을 푹푹 쉰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시원해야는데 영 시원찮은 표정이다.

레이는 이런 할머니의 모습을 의아해하는 한편,

'진짜 우리 할머니가 맞을까?'

의심스러워 하며 몰래 유전자 검사까지 하려고 한다.


제목이 <토일렛>이다 보니 이 영화에서는

말그대로 화장실이 주요한 소재 중 하나이자 화젯거리이고, 마지막도 화장실에서 끝이 난다.


오기가미 감독은 처음부터 가족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화장실'을 소재로 영화를 찍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모든 집에 기본적으로 있는 화장실을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며 생활한다는 데 착안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가 됐다고 한다.


인터넷 기사에서 보게 된 감독의 얘기 중에 흥미로웠던 점은 <카모메 식당> 촬영 당시 핀란드 스태프가 일본에 놀러 왔다가 일본 변기(비데)를 보고 놀라워하며 화장실을 갈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인도인인 레이의 친구가 레이에게 알려준 '지식' 과 연관이 있는 얘기다. 서양인인 주인공이 '일본 테크놀로지의 위대함'에 감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의 전개와 변화의 시작


공황장애로 인해 4년 동안 혼 외출을 못하고 있는 레이의 형 모리.

"난 쓸모없는 인간이야"라고 자책하며 지내던 그는 동생 레이가 지낼 방을 청소하다가 엄마가 쓰시던 낡은 재봉틀을 발견하게 된다.

재봉틀을 보고 뭔가 만들고 싶어졌고, 달라지고 싶어진다는 모리.

그는 재봉틀을 고쳐 준 할머니에게 옷감 살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말이 안통하기에 영어로 말은 하면서도 진심을 담은 표정과 동작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 할머니는 말없이 지갑을 여신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파이의 CM송이 생각나서 살짝 미소가 지어진 장면;)

오기가미 감독의 뮤즈로 불리는 배우 모타이 마사코(할머니 역). 대사 없이 표정으로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가 일품이다.


사건의 발생과 소통의 계기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지고 형의 호출을 받은 레이는 연구원 친구에게 급하게 차를 빌려 할머니를 찾으러 다닌다.

차만 망가뜨리고 집에 돌아와보니 할머니랑 형과 여동생은 태연하게 만두를 빚고 있다. (할머니는 고양이밥을 사러갔다가 잠시 길을 잃으셨던 거다)

이 모습을 보고 화가 난 레이는


"다 꺼져버려! 엄마 죽고나서 다 골칫덩어리야.

제발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줘!!"


라고 외치며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한밤중,  혼자 식탁에 앉아 맥주와 과자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레이.

화장실을 다녀오다 이 광경을 본 할머니는

'만두'를 구워 레이에게 내민다.


레이는 만두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할머니도 말없이 맥주 한병과 맥주잔을 가져와 건너편 자리에서 드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지 못한 할머니의 모습에 당황한 레이는 할머니가 내민 ㅇㅇ 함께 공유하고, 할머니가 만든 만두가 맛있다고 말한다.

못 알아듣는 할머니에게

"Cool~!" 이라고 한마디 날리며 엄지척 올리는 그를 따라 할머니도 슬며시 엄지를 올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D

할머니, 최고예요~!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
타티아나 마슬라니(여동생 리사 역)와 모타이 마사코


자기 위주였던 여동생은 할머니가 보는 의외의 TV프로인 맨손 기타 연주를 같이 보게 되면서 새로운 꿈이 생긴다.

(핀란드에 실제로 맨손으로 연주하는 '에어 기타 대회'가 있다고 한다;)

여동생은 결선 대회를 염두에 두고 핀란드에 갈 돈을 구하고자 큰오빠 모리에게 의논하게 되는데 는 할머니에게 부탁해보라고 한다.


 "못 알아듣잖아."


"진심으로 말하면 다 이해하셔."


큰오빠 모리의 조언대로 진심을 다해 자신의 꿈을 피력하는 여동생 리사.

열정을 불사르는 리사의 모습에 할머니는 또다시 지갑을 여신다. 여동생의 열정을 높이 사는 할머니 모습이 정말 엄지척!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반전 매력을 선보인 레이의 형 모리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그가 ㅇㅇㅇㅇㅇ일 줄이야!)


엄마의 재봉틀로 의외의 옷을 만들어 입고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은 모리. 그는 당황스러워하는 가족들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에 이유는 없어."


이어지는 "만두 먹고 싶다"는 한 마디에 네 가족은 함께 만두를 빚고 함께 정원 식탁에 앉아 웃고 얘기하며 즐겁게 만두를 먹는다.


"음식을 그리려고 한 게 아니라 사람을 그리려다 보니 밥 먹는 장면을 자연스레 넣게 됐어요. 인간은 밥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레이가 만두를 먹고, 온 가족이 만두를 빚는 장면은 반드시 필요했어요. 멀어진 가족 구성원 간의 거리를 좁히는데 음식을 함께 먹고, 함께 만드는 것만큼 좋은 소재도 없으니까요."

        

                       ㅡ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말 中


<카모메식당>의 시나몬 롤, <>의 도라야끼, <해피해피 브레드>의 빵 등 슬로무비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이야기는 그래서 자연스럽고 힐링과 치유의 매개체가 된다.

특히 수많은 음식 중에 이 영화의 푸드인 '만두'가족이 함께 만들어 먹을 수 있고, 각기 다른 재료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만두소처럼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가족 구성원들이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다.


결말의 의미

레이가 화장실의 머리빗에서 몰래 체취한 머리카락으로 한 유전자 검사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너무나도 황당해하는 레이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아"


라고 하는 형의 말처럼, 그리고


"모르고도 잘 살았잖아. 가족인 것처럼."


이라고 말하는 친구의 대사처럼, 피가 섞였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함께 공유하며 무언가를 나누고 소통해 나가는 관계, 그것이 가져오는 긍정의 변화가 소중할 뿐이다.


무대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 두려움에 떨고 있던  모리에게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외치는 한마디와 손동작.

그런 용기를 주는 존재도 곁에 있는 가족이고,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혼자이고 싶어했던 레이 역시 화재보상금으로 받은 3천불을 프라 모델 사는 데 쓰는 대신  

'할머니와 함께 하고 싶어서'   할머니를 위한 선택을 한다.


처음에 '인생은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는 것의 연속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다.'했던

그의 생각도


일상은 결코 지루하지 않고,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들어 가는 것.


이라고 바뀌않았을까.


진짜 가족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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