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사랑, 그 속에 감춰진 비밀과 진실
<빌리 엘리어트>, <디 아워스> 등 굵직한 연출력을 보여준 영국 감독 스티븐 달드리의
<더 리더>(2008).
(안소니 밍겔라, 시드니 폴락이 함께 제작에 참여했지만 공교롭게도 두 분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인 2008년 초에 사망했다.)
이 작품으로 케이트 윈슬렛은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같은 배역 제의를 받았던 '니콜 키드만'이 맡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케이트 윈슬렛과 열연을 보여준 데이빗 크로스(어린 '마이클' 역)는 영화 속 나이와 같은 15살에 캐스팅되었으나 미성년자로 베드신 촬영이 금지되어 3년을 기다려 촬영에 들어갔었다고 한다.
원작은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귄터 그라스(1927. 10.16~ 2015.4.13)의
《양철북》과 더불어 독일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이다.
'차분하지만 정열적인,
사색적이고도 파격적인 내공을 가진 영화'
라는 수식어답게 원작을 충실하게 압축한
영화 <더 리더> 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더불어 그 자체로도 훌륭했지만,
원작 《더 리더》 를 읽음으로 두 주인공에 대해,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더 많은 부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비밀과 과거사를 암시하는 행동도 아무래도 원작에서 더 많은 부분이 암시되어 있다)
또한 법대 교수이자 판사, 재판관인 저자의 약력답게 '나치 관련 재판 과정'도 원작소설에서 훨씬 밀도감 있게 다뤄진다.
(홀로코스트를 직ᆞ간접적으로 다룬 수많은 작품들, <쉰들러 리스트>, 《죽음의 수용소에서》, <피아니스트>, 《안네의 일기》, <인생은 아름다워> 《소피의 선택》, 《책도둑》, 《사라의 열쇠》, 《파자마를 입은 소년》 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군함도》를 쓰신 '한수산' 작가님께 했다던 말이 떠오른다.
"독일이 양심적이고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철저한 게 아니다. 유태인들이 그걸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끝없이 소설을 써내고 끝없이 영화를 만들고 끝없이 노래를 부르고 끝없이 그 비극을 되살린다, 독일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사죄할 수밖에. 한국도 이 사례를 조금은 거울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던..)
영화의 시작
1958년 독일. 비오는 날, 열병으로 힘들어 하며 골목에서 구토를 하던 15살 소년 '마이클'(데이빗 크로스, 소설에서의 이름은 '미하엘'). 그 장면을 보게 된 36살의 여인 '한나'(케이트 윈슬렛)는 그를 도와주고 그의 집까지 바래다 준다.
병이 나은 후 그는 감사의 표시로 꽃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우연한 만남이 인연이 되고 한 사람의 운명을 뒤바꿔놓는..
그의 폭풍같은 사랑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할 만큼 그녀에게 흠뻑 빠져버린 마이클.
그는 그녀와의 만남 이후 학교에 다시 나가고 수업이 파할 무렵 몰래 빠져 나와 그녀의 집앞 계단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그리고 근무(전차에서 개찰하는 일)가 끝나고 돌아온 그녀는 샤워부터 행동 하나하나 능숙하게 리드하며 그를 부끄러워 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점령하듯 그와 사랑을 나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그는 그 시절 그녀와 함께 보낸 충만하고 촘촘한 시간들로 인해 무한한 자신감을 얻는다.
'난 두렵지 않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고통이 커질수록 사랑은 깊어간다.
두려움은 사랑을 증폭시킬 뿐.
사회적 편견도 망각하게 한다.
당신의 천사가 되어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하리라.
인간을 완벽하게 만드는 건 바로 사랑이니라.'
그녀에게 책 읽어주기
둘이 대화를 시작하고, 마이클에게 책 읽어주기를 부탁하는 그녀.
"읽어봐요"(마이클)
"네가 읽어줘"(한나)
호머(호메로스)의 《오디세이》, 톨스토이의
《 전쟁과 평화》,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 그리고 안톤 체홉의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등..
그녀는 그가 책을 읽어주면 때론 진지하게 때론 분노하며 때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기ㅡ이것이 그들 만남에 하나의 의식(儀式)이 되었다.
때로는 나 스스로 어서 계속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고 싶어서 더 오랭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위에서 잠들고 마당의 톱질 소리도 잦아들면, 그리고 지빠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부엌에 있는 색색의 물건들도 음영 속에 잠길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ㅡ 소설 《더 리더》 中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사라진 그녀.
오랜 시간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던 마이클은 법대생이 되고 8년 후인 1966년, 우연히 그녀를 다시 법정에서 만나게 된다.
* 이어지는 다음 내용은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그녀의 과거, 그녀는 1944년까지 나치 강제수용소의 감시원이었다. 그녀의 결정적 죄목은 수감자들을 불타는 교회에 가두어 죽게 한 혐의였다.
그녀는 다른 피고인들이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때조차 그녀 자신이 치부라고 생각하는 비밀(그녀가 그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이유이기도 한..)을 감추기 위해 거짓 시인을 하고 결국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만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침묵으로 지켜보며 그녀에 대한 죄책감과 밝혀지는 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녀가 감춰왔던 비밀과 진실
나에게도 남이 보기엔 대수롭지 않을지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수치심으로 여겨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 그래서 비밀을 끝까지 감추기 위해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자존심을, 그녀의 선택을 깊이 헤아려보게 된다. '늘 약간은 위장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안타까운 진실이요 안타까운 정의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감추기 위해서 늘 싸우고 또 싸웠다.
ㅡ 소설 《더 리더》 中
사랑했던 이의 끔찍한 과거를 알았다고 해서 사랑했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님에도, 그 과거를 앎으로 인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일까?
- 소설 《더 리더》 中
그녀를 위한 일이었을까 나를 위한 일이었을까
나는 그녀를 멀리 두고 싶었다. 아주 멀리. 그리하여 그녀가 지난 몇 년동안 내 가슴 속에 만들어진 모습대로 단순한 추억으로 남게 되길 바랐다.
ㅡ 소설 《더 리더》 中
하지만 그녀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마이클은 '누구한테도 마음을 못 열고' 좀처럼 현실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육체적 그리움보다 더 참기 어려운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그는 결혼하여 딸까지 낳고는 결국 이혼하고 만다.
그리고 그녀가 수감된지 8년이 지나고부터 10년간 그녀를 위해 책을 읽어 녹음하고 그녀에게 부친다.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의 생애 커다란 변화에도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았다.
나역시 그에게 이것만은 묻고 싶다.
"당신은 왜 한번도 편지를 쓰지 않았나요?"
18년만에 다시 마주한 60대의 그녀를 그는 한 늙은 여자의 모습으로 마주한다. 그녀를 꺼려하고 언짢게 생각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상황에서 그녀의 마지막 결정은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결말 처리 방식
원작 소설에서는 한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으로 마무리짓지만, 영화에서는 자신의 딸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