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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Mar 04. 2017

잃었던 나의 길을 다시 찾는 여정 《와일드》

ㅡ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ᆞ우진하 옮김



1판 1쇄 2012년 10월 20일, 2판 5쇄 2016년 2월 29일


헉, 이렇게 두꺼운 책이었다니..


도서관에서 책을 처음 집어들었을 때 두께에 놀라고, 이 책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가 도전한 4,285 km라는 어마어마한 거리에 또 한 번 놀랐다.


죽을 때까지 내가겪어 볼 일이 있을까 싶은 경험도 책가능케 한다. 단지 550여 페이지만으로 그 여정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일단 읽어보기로 했다.


책 표지의 붉은색 신발끈이 달린 갈색 등산화

한 짝은 프롤로그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acific Crest Trail) 도보 여행 중에 벗어놓은 등산화 한 짝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남은 신발 한 짝마저 멀리 내던져버린 스물여섯의 그녀.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죽음, 뿔뿔이 흩어진 가족, 그리고 이혼 등 그녀의 삶 또한 등산화마냥 던져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남편과 떨어져 원룸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나는 이렇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채 나락으로 떨어져보긴 난생 처음이었다. 매일매일 깊은 우물 바닥에 처박혀 머리 위의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우물 속 신세에서 홀로 황야를 가로지르는 여행가로 변신할 터였다. 안 될 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었다. 다정한 아내에서 불륜녀도 되어봤고 사랑하는 딸로 지내다가 이제는 휴일마저 혼자 지내는 처지가 되었다. 야심만만하게 맡은 일을 척척 해내며 작가를 꿈꾸던 여자가 허드렛일을 전전하더니 마약에도 조금씩 손을 댔고, 이제는 아무 남자나 가리지 않고 잠자리도 함부로 가졌다.


그녀가 여행을 결심하기 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삶의 중심을 잃게 된 가장 큰 이유에는  '엄마의 죽음'이 있다.


그때 나는 스물두 살, 엄마가 나를 임신했던 나이였다. 그래서 마치 내가 엄마의 삶에 들어가려는 순간, 엄마가 이렇게 나를 떠나려 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 생각이 갑자기 머릿 속을 꽉 채우며 내가 퍼부어대던 저주의 기도를 잠시 몰아냈다.
이제 남은 인생을 엄마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의사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미 치료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암이 너무 늦게 발견되는 일은 흔하며, 특히나 폐암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각자 따로 변기 위에 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슬픔 때문에 외로움이 치밀어 올라서가 아니라 한 몸인 것 같은 그 느낌 때문이었다. 우리는 마치 둘이 아닌 하나의 몸 같았다.

이렇게 엄마가 실제로 죽어가고 있을 때까지, 죽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엄마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대한 존재였고 내 인생을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노년의 엄마가 여전히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내가 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고 조르고 조른 끝에 마치 내 자신의 추억처럼 되어버린 엄마의 유년 시절 추억들 중 하나처럼.


빠르게 찾아오는 엄마의 죽음 앞에 속수무책인 딸의 심정이 그녀가 내뱉는 과격한 말들과 울부짖는 모습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랑..." 엄마가 속삭였다. '나도 사랑한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약해진 엄마였다. 내가 병실을 나설 때 엄마는 다시 한 번 "사랑..."이라고 말했다.

나는 한 마리 짐승처럼 엄마의 몸에 내 얼굴을 부비며 울부짖고,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엄마의 사지는 차갑게 식었지만 몸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 온기 속에 얼굴을 파묻고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사망한 날부터 PCT 도보여행을 시작하기까지 4년여의 세월.

황무지 같던 그 기간동안 그녀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1995년 어느 여름 날,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오리건 주의 '신들의 다리'까지 수 천 키로에 달하는 장대한 PCT 여정을 혼자 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 시도를 한다고 해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으니까.'

PC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경로
손가락 끝으로 지도 위의 길을 따라가고 있자니 마음 속에서 뭔가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홀로 등에 배낭을 지고 9개의 산맥과 사막과 황무지, 인디언 부족의 땅으로 이루어진 그곳을 향해 길을 나선다.


너무나도 무모했고 벅찬 여정이었으며 준비 안 된 여행이었으나 이 여행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 하나로 낯선 세계의 문을 열고 그녀는 PCT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가 여행한 1995년만 해도 여자 혼자 PCT 도보여행 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으며 인터넷도 발달되지 않아 자료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때였다.  공식적으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모든 길이 확정된 것도 1993년이라고 한다.


그녀는 괴물 같은 배낭을 짊어지고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으며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고,

처참하게 망가졌던 지난 날들을 떠올린다.


엄마가 죽고나서야 당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가족의 중심에 위치한 마법의 힘. 우리 모두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엄마를 중심으로 그 궤도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죽고 난 뒤 내 스스로를 망쳐버린 이 더러운 시궁창이 싫어서, 어느 새 자신의 모습이 되어버린 이 바보같은 몰골이 싫어서 울었다. 나는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살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두려움에 휩싸이면 여행도 암울해진다는 생각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용기가 되는 말을 들려준다.


'괜찮아, 나는 안전해. 강하고 용감하지. 어떤 것도 날 무너뜨릴수는 없어.'


그녀의 장대한 도보여행에야 감히 비할 바가 못되지만, 나역시 위기의 끝자락에서 종잡을 수 없이 갈피를 못잡고 헤매던 시기에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나를 해체하고 조각조각 하나하나 다시 맞춰나간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영원히 난 부서진 채로 흩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지독한 고통의 나날들..

상실의 슬픔에 허우적대던 '가련한 표류자'이자 '옛 인생의 상처에 갇혀 발버둥치는 여인'이었다.

낯선 곳에서 나는 틈틈이 빈 노트를 일기장 삼아 마음을 적어내려갔다.

상처를 더 후벼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그녀처럼 '내 삶에서 나쁜 것들을 몰아내면 다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그녀는 몬스터라 부르는 괴물같은 배낭을 짊어지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작은 등산화에 엄지 발가락 퉁퉁 부어오르고 급기야 발톱들은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몬스터 배낭에 시달려 엉덩이와 어깨, 꼬리뼈 근처의 살들은 피를 흘리고 딱지가 앉더니 결국 단단하게 굳은 살이 생기고 발은 거칠게 혹사당해 물집이 잡혔다.


게다가 더운 날씨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날씨가 번갈아가며 그녀를 혹사시켰지만 그녀는 맞는 방향이라고 믿으며 걸어간다. 그 길은 마약을 투약했을 때 느낀 감각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지난 날 마약을 비롯하여 그녀가 잘 알지 못하는 남자들과의 잠자리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마치 이 모든 노력이 반드시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처럼.


그녀는 비로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도 보고 느낄 수 있게 됐다.


길가에 피어난 사막의 꽃 한 송이가 나를 간질이는가 하면, 저 산들 너머로는 희미해지는 태양과 함께 장대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지금 캘리포니아의 올드 스테이션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 혼자 앉아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자랑스러운 기분도 부끄러운 기분도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건 내 모든 잘못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여기까지 왔고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직접 내 발로 걸어 여행을 하는 건 이전에 해오던 여행과 완전히 달랐다. 길은 더 이상 그저 멍하니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자란 잡초와 흙더미, 바람에 휘어지는 풀과 꽃들, 쿵쿵거리며 새된 소리를 내지르는 나무들도 친구가 된다.


오리건 주 남서부에 위치한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 공원

크레이터 레이크. 이 호수는 너무 깊고 맑아서 파란색 빼고는 모든 가시광선을 다 흡수해버린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맑은 파란색만 보인다고 한다.


그녀는 PCT도보여행을 통해 점점 자신에게 길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된다.


 나는 어느 길을 만나든 그 앞에서 겸손해졌다. 기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 마음은 더욱 겸손해졌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야생에서 어떤 것을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런 특별한 이유없이 그저 나무들이 쌓여있는 모습, 풀밭, 산, 사막, 바위, 개천, 강, 잡초, 일출, 일몰을 보기 위해 몇 킬로미터고 계속해서 걷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모두 다 길을 잃어요"


때론 길을 잃고 헤매지만 다시 찾아나서는 여정, 그녀의 말처럼 그렇게 얻어지는 경험은 강력하다.


그녀는 도보여행을 하면서 지난 몇 년간의 스산했던 시간을 돌이켜보며 다시 소설을 쓰고 싶은 의지 또한 다진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일과 내가 살아온 모든 방식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험난한 여행 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었고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했으며 이 책 또한 쓸 수 있었으리라.


괴물같은 배낭을 짊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였던 수고로 그녀는 마침내 오리건과 워싱턴 주 경계선까지의  여정을 이루어낸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시애틀 산객' 님의 블로그

신들의 다약 560미터에 달하는 길이로 콜럼비아 강을 건너 워싱턴까지 이어주는 철제 다리이다.


나는 이곳에 도착했다. 이 여정을 해냈다. 그건 마치 엄청난 일인 동시에 아주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늘 스스로에게 속삭이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아직 알지도 못하는 그런 나만의 비밀 같았다.


그녀는 수도 없이 감사하다고 되내인다.

길이 준 가르침과 자신도 모를 미래에 대해..


이제는 더 이상 텅 빈 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저 수면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인생도 모두의 인생처럼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고 고귀한 존재이다.
진정으로 가깝고 진정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야성적이었던가.'


책 《와일드》와 영화 <와일드>의 마지막 문장은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르기도 하고,

하나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야 면서도

나의 의지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 또한 인생이기에.


책 《와일드》에서는 영화 <와일드>에서보다

길 위에서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더 많은 여행자들을 만난다.


PCT에서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녀 인생에 있어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었지만 책 끝에 한 명 한 명에게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인사도 잊지 않는다.


영화 <와일드>는 책과 같은 장면으로 시작하나 영화가 아무래도 더 실감나고 강렬하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와 가족 얘기, 여정에서의 감정, 만난 사람들 등은 당연히 소설에서 더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영화 <와일드>는 여러 인물과 사건을 뒤섞어 압축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PCT 도보여행한 여정을 써내려간 것인 만큼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과 함께 PCT도보 여행 중 찍은 그녀, 셰릴 스트레이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사진들을 보니 영화가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려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깨의 말문신, 옷차림, 헤어스타일, 그리고 몬스터같은 배낭까지.. 영화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그녀의 모습을 굉장히 현실감있게 재현해냈다.

또한 영화 <와일드>에서는 그녀가 도보여행길 중간중간 방명록에 남기는 명언들이 눈에 들어온다.


'몸이 그댈 거부하거든 몸을 초월하라'
ㅡ 에밀리 디킨슨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할 길이 있다.
ㅡ 로버트 프로스트

'예상한 일에도 완벽한 대비는 불가능하다.'
ㅡ 제임스 미치너


앞으로 닥칠 일을 알 방법은 없다.

무엇이 무엇으로 이어지는

무엇이 무엇을 파괴하는지,

혹은 번영의 원인이 되는지

혹은 죽음의 원인이 되는지,

혹은 다른 길을 선택하는지..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든 자책하지 말자.

분명 길은 또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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