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건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 뿐이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中
남편과의 다툼이 끊이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는 우울증이 극도로 달해있던 때라 사소한 일도 금새 말다툼으로 번지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딱히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악에 받쳐 싸웠는지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하루하루가 전쟁 같던 날들이었다.
생활은 빠듯한데 남편은 일에 치여 나와 아이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
하나가 미우니 열까지 모두 미웠다.
남편과 내가 매일 싸우다 보니 아이의 얼굴에도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편이 술 마시고 귀가하던 어느 날 새벽녘,
뜬눈으로 지샌 나는 남편에게 폭풍 같은 잔소리를 해댔고 꾹꾹 참아왔던 남편도 폭발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식탁 의자를 집어 들고 바닥에 내리쳐 의자의 두 다리는 무참히 부서졌다.
남편도 순간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지만
“우린 이걸로 끝이야, 끝!”
을 외치며 나는 그 길로 잠든 아이를 들쳐 업고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얼마간은 친정 집에 얹혀 지내다가 아이와 단 둘이 살 결심을 하고 단칸 방을 얻어 지내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한 내게 현실은 가혹하기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는 내 눈치만 슬슬 보며 아빠는 언제 보냐고 묻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집을 나왔던 다음 날부터 남편은 매일 미안하다고 그 날 일을 사과해 왔으며,
초췌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걷잡을 수 없이 커졌던 분노는 조금씩 사그라 들었다.
우리는 시들고 썩어버린 이파리들을 잘라내기로 했다. 지난 일은 서로 화해하고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마음가짐을 달리 먹으니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던 관계도 차츰 회복이 되고 새순이 돋기 시작했다.
어느 새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몇 달 만에 아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를 넣은 김밥을 싸고 남편은 아이가 좋아하는 초코 케이크를 준비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 온 조촐한 음식들을 펼쳤다.
아이가 김밥 한 알을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다.
이내 달달한 케이크도 한 입 크게 떼서 먹는다.
아이 입 주변이 금새 음식물로 범벅이 된다.
남편과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애정 가득 담긴 눈길로 바라본다.
그간 내 감정만 추스르느라 네게 너무 무심했구나..
초록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시린다.
내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조잘대던 아이는 살포시 눈을 감는다.
어느새 남편이 다가와 아이가 주워 온 강아지풀로 아이 코를 간질인다.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나도 남편도 따라 웃는다.
모처럼 우리 세 가족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아, 행복해.”
아이의 그 한마디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행복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걸.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다시 되찾은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 속 행복을 이젠 놓치지 말라고.
푸른 녹음 사이로 스며드는 아이의 환한 미소가 넌지시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