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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Jul 20. 2017

역사 속 진실을 되새기고 기억하다

ㅡ 군함도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징용되어 가혹한 노동과 피폭으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삶을 그린 소설 《군함도》 1,2권


소설 《군함도》는 경학, 삼식, 태복 세 인물이 탈출을 감행하는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죽더라도 내 땅에나 돌아가서 죽겠다, 죽어서 내 나라 흙에라도 파묻히겠다는 세 사람. 이들에 대한 걱정과 고민 끝에 남는 길을 택한 명식은 생각한다.


'살아서 여기를 빠져나갔다는 사람, 누가 있었냐. 바닷물에 팅팅 불어가지고 죽어 돌아온 조선 사람, 선착장에 내팽겨쳐놓고 이거 봐라 도망치는 놈들 다 이 꼴 된다 보여주다가, 저 건너 화장터 섬으로 끌어가 태워버리면 그 뿐,
그 뿐이다.' (1권 p. 8)


여기 남느냐 목숨을 걸고 도망을 치느냐, 아니면 팔을 자르든 다리를 부러뜨리든 자해를 해서 목숨만 부지한 채 섬을 떠나는 길을 택하느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짓눌리며 하루하루를 살았던 이들. 해저 탄광 하시마로 끌려온 조선인 징용공들은 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절대고립에 갇히게 된다.


소설 1권 책표지에 칠흙같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군함도, 그 위로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있으니 '갈매기 한 마리 울며 날아올라도 저게 다 조선사람 넋이지 싶었다. 나라 없는 놈들 헐벗은 넋이 제 땅에도 못 가고, 무슨 끈에 매인 듯 여길 못 떠나고 저렇게 날아오르는구나 싶었다'던 명식의 말이 떠올라 가슴이 묵직해진다.


이 소설의 저자 한수산 작가님 

'역사를 복원하고 문학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적 의무 속에서 무려 27년을 보내셨다고 한다.

원폭 피해자를 만나고 실제 군함도에 들어가 현장 취재한 끝에 2003년 200자 원고지 5,300매 분량의 《까마귀》 5권을 출판한 이후 2009년 제목도 바꾸고 분량 축약과 개작을 거쳐 일본어판 《군함도》를 출간, 2016년에 이르러 여러 사정으로 미뤄졌던 한국어판 《군함도》를 출간하게 된 것이다.


한수산 작가님이 군함도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랜 세월 취재와 고증, 창작과 개작을 거듭한 만큼 이 소설에는 지옥탄광 군함도 안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고통받은 조선인들,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하는 인물들의 운명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리고 그 인물 중 한 명인 지상과 그의 아내 서형의 애절한 이야기, 지상의 친구 우석과 유곽의 여인 금화와의 안타깝고 한스러운 이야기도 담겨 있다.

나가사키 원폭으로 인한 처참한 실상이 묘사되는 소설 2권 후반부 지상의 독백과 각성은 마지막까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결과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인간의 가치나 존엄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석이가 말했듯이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함으로써만 지켜지는 거다. (2권 p. 414)

한쪽 눈이 멀었던 거다. 그건 물 위에 떠올라 있는 눈에 보이는 얼음덩어리였어. 물 위에 떠 있는 것보다 더 큰 엄청난 덩어리가 물속에 잠겨 있다는 걸 몰랐던 거지. 물 위에 떠 있어서 내가 보았던 얼음이 흰 블라우스나 축음기판이었다면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일본이 군함도였고, 하시마 탄광이었고, 미쯔비시라는 조선소에서의 나날이었던 거야. 그리고 이 미친 전쟁, 저 광기와 악의 거대한 덩어리까지. (2권 p. 415)

산다는 것의 의미도, 믿음도, 가치도 다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그 마지막 그루터기, 그 사랑. 그것이 남아있기에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 나는 그 소중함을 안다.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을. (2권 p. 416)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과거의 진실'에 눈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를 향한 첫걸음이 되길, 또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각성과 성찰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한수산 작가님의 염원처럼 점점 더  많은 분들이 군함도에 묻힌 진실을 알아가고 있어 다행이다. 나역시 한수산 작가님의 군함도를 읽으면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영화 <군함도> 개봉 소식에 더욱 관을 갖게 되었으니까.


군함도.

군함도는 그 모습이 바다에 떠 있는 군함 같아서 부르는 이름으로 일본 나가사키의 '하시마 섬'을 말한다. 이 무인도에서 석탄이 채굴되면서 일본인들은 싼 임금에 고용할 수 있는 조선에서 광부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의 도발과 함께 자원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한 일본은 조선의 나이 어린 소년까지 닥치는 대로 탄광에 처넣는 무차별 강제 징용을 했다.


조선인들에게는 살아서 나갈 수 없었던 지옥섬이자 거대 감옥, 하시마섬이 일본 근대화에 공헌한 산업 유산이라는 명목으로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되었다.


'인류의 비극도 직시해야 평화를 위한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는 선정 정신에 따라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세네갈의 고레섬, 넬슨 만델라 등 흑인 정치범을 가뒀던 남아공의 로벤섬 도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곳들은 그 치부를 감추려 하지 않는 반면 일본은 '강제 징용'에 대한 진실을 명백히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 등에서 반발하자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알리는 정보센터를 건립하기로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군함도를 관광지로만 홍보하고 있다.


독일은 촐페라인 탄광에서 나치의 전쟁 수행을 위해 전쟁 포로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한 사실을 그대로 명시했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설을 써내고 끝없이 영화를 만들고 끝없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독일의 사죄를 이끌어 냈다'고 얘기한다. 그의 말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질타하기 전에 우리부터 문화적으로 이를 형상화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한수산 작가님의 말씀도 잊어서는 안된다.


제작년 MBC 무한도전(2015년 9월 12일 방송)에서 하시마섬을 다룬 적이 있었다.

방송을 보면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일본의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강제 징용과 노역으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을 하시마에서 다카시마로 옮겨 묻으면서 이름, 사망 이유 등이 적힌 위패를 불태워버렸다.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길에 버려져 있다시피 놓여있는 공양탑을 가까스로 찾아 넋을 위로했다.


얼마 전 서경덕 교수님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기 위해 미국 뉴욕의 중심가인 타임스퀘어에 있는 대형 광고판에 하시마섬을 소재로 한 광고를 올리기도 했다. 이 광고는 스토리펀딩을 통해 네티즌 약 5500백 명과 영화 <군함도>팀이 2억 원을 함께 모아 진행된 것이라고 한다.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 '군함도의  진실' 영상을 바라보고 계시는 서경덕 교수님

역사적 진실을 되새기고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군함도에 가려진 역사를 그려내기 위해 한수산 작가를 만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는 류승완 감독님은 '역사학자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지만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영화 <군함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로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찍었다는 감독님의 확고한 의지만큼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찍은 영화 또한 긍정적인 성과를 얻기를 희망한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 (7.26 개봉)


일본은 군함도에서 강제징용 조선인에 대한 '가혹한 강제 노동이 있었음'을 밝혀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하시마탄광의 영광'에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눈물과 분노와 희생이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명기하고 하시마의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임에도 왜 일본은 눈을 돌리는가.

기록과 진실의 주춧돌 위에 상상력으로 세우는 서사의 건축으로, 후세의 기억을 위하여,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를 위하여,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의 적확한 자리매김을 위하여, 과거사를 그리는 이 작업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ㅡ 한수산 《군함도》 작가의 말 중에서



무한도전 '하시마섬 편' 샌드애니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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