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날 찾아와 내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그녀.
'에구, 어제도 책읽다 밤샌 모양이군.
다크써클이 어디까지 내려온거야?'
날 보러 와주는 건 좋지만 그녀의 퀭한 얼굴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
오늘은 무슨 책을 찾으러 왔을까.
도서 검색대를 거쳐 서가를 누비는 그녀의 발길이 바쁘다.
어느새 그녀는 한 아름 가득 책을 껴안고서 그녀가 늘 앉는 연두색 소파로 걸어간다.
뭐부터 읽어볼까.
그녀의 흡족한 목소리가 들린다.
책을 읽으며 간간히 미소 짓는 그녀의 입꼬리가,
책을 읽다가 간혹 찌푸려지는 그녀의 미간이,
책을 읽다말고 불현듯 뭔가 생각날 때면 정신없이 적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그녀의 꿈을 안다.
매일 다른 사람 책을 읽으며 때론 감동받고 때론 눈물짓던 그녀가 언젠가 자신의 책도 내 안에 살아 숨쉬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그런 그녀가 정말 책을 냈다.
얼마 전, 그녀가 유난히 상기된 얼굴로 내 안에 들어왔다.
"희망도서 신청한 거 대출할게요!"
매달 빠짐없이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즐거운 기다림을 하는 그녀지만 사서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오늘은 더 밝다.
책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책장을 넘기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 하다.
자신의 책의 첫 대출자가 되는 기분은 어떤 걸까.
겪어본 사람만이 알겠지.
다음 날, 그녀가 반납한 그녀의 책이 사서의 손을 거쳐 서가에 꽂혔다.
찾아주는 이가 있을까.
그녀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그 날 이후 아직까지 그녀의 책을 꺼내보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단 한 명 뿐이다.
그녀의 책이 꽂힌 후로 그녀는 내 안에 거침없이 들어와 제일 먼저 자신의 책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자신의 책이 꽂힌 칸이 혹시나 비어있진 않을까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서.
하지만 그녀의 책은 늘 그 자리에 다소곳이 꽂혀있다.
그녀는 책을 조심스럽게 뽑아들고 쭈그려앉아 아직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빳빳한 책장을 여러번 넘겨본다.
그녀의 흔적만이 남은 그 책의 책장을 넘길 때 그녀에 대한 얘기를 슬쩍 훔쳐 봤다.
그녀가 무척 힘든 시절, 책이 그리고 내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녀에게 두려움을 덜어내고 다시 살아갈 힘이 돼주었다는..
그래서 나를 그토록 좋아해 주었구나.
일주일에 한 번, 내가 쉬는 날조차 그녀는 날 찾아와 내 주위를 서성인다. 그리고 나무 그늘을 찾아 또는 벤치에 앉아 책을 펼친다. 가끔 아차! 하며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녀에게 다시 힘든 시기가 찾아온 걸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나는 안다.
그녀 스스로 내는 책이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녀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써 나가길,
또 다른 그녀의 얘기를 내 안에 차곡차곡 채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