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끝내 피어난 조용한 [보라]

바쁘게 지나온 나날들에 대한 자연의 보상일지도 모른다.

by 마음이 동하다

아침 출근길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길로 내려오다가 모퉁이에서 발견한 보라색 꽃에 발걸음을 멈췄다. 처음 보는 거 같기도 하고, 살면서 몇 번을 봐왔던 거 같기도 한 모양이다. 사실 보고도 모른 채 지나쳤을 것이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이 꽃을 검색하니 ‘조개나물’이라고 뜬다. 꽃은 몰라도 이름은 분명 처음 듣는 것임은 분명했다. (혹시 이 꽃의 이름을 틀렸다면 누가 정확한 이름 알려주세요^^)

‘조’로 시작하는 단어.
‘물’로 끝나는 단어.

도무지 사전을 찾아봐도 이 꽃과 연결 지을 수 없다.

오전 내내 들여다보길 반복하다가 색상이 예뻐서 ‘보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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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땅, 생명의

잎새 흔들림, 바람은

작은 피어남, 마음의

가만히 바라본, 오늘의

빛에 반짝임, 잊었던

발끝에 닿는 풀잎의

이 순간을 기억하는

끝내 피어난 조용한



비가 내린 다음날, 땅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그 위에 자란 풀꽃들은 마치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켜온 듯 고요히 서 있었다. 자연의 보존이란 어쩌면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자라나는 생명들의 끈질긴 존재감일지도 모른다. 바람은 스치듯 지나가고, 흙냄새와 이슬 냄새가 어우러진 공기는 익숙한 보통의 하루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서 작고 연약해 보이던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고, 그 존재만으로도 하루를 살 이유가 생긴 듯한 보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이 풍경을 보고, 습관처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잠시 꽃들 앞에 서서 쉬고 있는 이 순간은 바쁘게 지나온 나날들에 대한 자연의 보상일지도 모른다. 별다를 것 없는 풀꽃 하나조차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하루에 작은 보탬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그렇게 조용히 서 있는 그 꽃은, 나에게 무언의 보답처럼 다가왔고, 결국 끝내 전해진 것은 단 하나의 색, 고요하고 깊은 보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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