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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쓰기는 177일로 끝이 났지만,

나의 관찰도, 나의 성취도, 나의 실패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마음이 동하다

올해 초, 나는 ‘연말과 새해에 읽은 두 권의 책이 바꾼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일상의 풍경을 사진 한 장과 짧은 글로 기록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목표는 거창했다. 바로 365일 매일 쓰기.


결과는? 실패다.


1월 1일부터 시작해 6월 26일을 끝으로 멈췄다. 정확히는 177일간 매일 쓴 셈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썼고, 명절에도 제사에도 썼다. 1박 2일 여행은 물론 4박 5일 해외여행에서도 빼먹지 않았다. 아파도 썼고, 술 먹고도 썼다. 새벽에도, 밤 12시가 다 되어 가서도 썼다. 지독하게도 썼다. 그런데도 실패라니. 사실 1년을 채우면 그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내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상상도 했는데, 그 꿈은 결국 아이들의 비눗방울처럼 톡— 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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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즈음, 번아웃이 찾아왔다. 갑자기 삶의 무게가 확 느껴졌다. 대학 졸업 후 곧장 취업해 쉼 없이 달려왔던 직장 생활. 중간 중간 이직의 간격에서 잠시 숨 돌릴 틈은 있었지만, 결혼 이후에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평생 이렇게 일만 해야 하나 싶어 ‘일 년만, 아니 한 달만이라도 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물론 무급 휴직은 제도적으로 가능했지만, 가장으로서 그럴 용기가 쉽게 나지 않았다. 괜히 아내에게 “나 한 달만 쉬고 올까?” 농담처럼 흘려봤지만, 대답은 안 들어봐도 뻔했다. 결국 밀어붙이지 못한 내 마음은 다른 곳에서 길을 찾았다. 병원에도 ‘교수의 안식년’ 같은 제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 바로 그 상상이 내 글쓰기를 멈추게 한 셈이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휴대폰 속에는 더 이상 일상의 흔적이 쌓이지 않았다. 계절에 맞는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도 손도 머리도 편해졌지만, 마음 한쪽에는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이 늘 자리했다. ‘그때는 상황이 그랬으니까’라며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안다. 그건 뇌가 자동으로 보내는 위로 메시지일 뿐이라는 걸.


“그런데 자꾸 왜 난 또 가사를 끄적이는 걸까.”


그러다 문득 2021년 <쇼미더머니 10>에서 베이식이 부른 가사 한 줄이 떠올랐다. 가수를 그만두고 취업해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가사를 끄적이던 자기 이야기를 담은 가사였다. 나 역시 글을 무척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잘 쓰는 편도 아닌데 자꾸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177일간 매일 쓰던 후유증일까. 지나가는 일상, 바뀌는 계절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괜히 아쉬워졌다. 심지어 내 문장에 라임이 맞춰지는 순간이 있었다. ‘나도 래퍼인가?’ 싶어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도 난다.


개인의 회복력, 즉, 실패를 다루는 힘을 얻는 것이다.
_김수현《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다산북스)


생각해보면, 글쓰기는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아이들 눈에는 늦은 밤 노트북 켜놓고 사전까지 뒤적이며 글 쓰는 아빠의 모습이 마치 숙제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어른도 공부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글을 마치고 나서야 깊이 잠들 수 있었던 그 후련함, 묘하게 개운한 마음은 지금도 조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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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177일간 매일 글을 썼다는 건 결코 가벼운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실패를 다루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고, 넘어지는 순간보다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진짜 실패다. 도전한 사람만이 실패를 맛볼 수 있고, 그래서 실패는 곧 값진 경험이 된다.


나의 관찰도, 나의 성취도, 나의 실패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_정철《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김영사)


절기는 벌써 입추와 처서를 지나갔는데, 여전히 폭염은 기세를 꺾지 않는다. 글쓰기에 나의 여름은 잠시 멈췄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다. 관찰도, 성취도, 실패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또 다른 계절에, 또 다른 나로,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패란,

실행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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