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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Jun 04. 2022

아빠생일은 각본 있는 드라마

상대방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운 놀이

    “생일축하 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

    “생일축하 합니다~”

    “짝짝짝짝~”

    “후~우~”
    “아버지, 이거 생일 선물이에요.”



    두 사내놈이 포장한 선물꾸러미와 정성스레 쓴 손 편지를 건넨다. 일 년 365일 중 단 하루라는 생일이다. 낮에는 일을 하니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조촐한 생일파티를 한다. 아직도 삐뚤빼뚤한 손 글씨로 정성스레 써내려간 생일축하 카드다. 내용도 매년 비슷하다. 나아주셔서 감사하고, 좋은데 많이 데려가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생일 선물 포장지를 뜯는다. 잘 안 뜯어진다. 테이프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어 본다. 옆에서 열 살 작은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아버지, 선물포장은 확 잡아 뜯어야 해요” 어디서 들어본 모양이다. 긁던 손톱에 날을 세워서 포장지를 거칠게 뜯었다. 포장지에 가려져있던 선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책이다.






자녀에게 ‘답을 얻으려면 스스로 생각해야만 하는’ 질문을 하라
_고재학《부모라면 유대인처럼》(예담)


    2주전 아이들과 근처 쇼핑몰에 갔다가 습관처럼 서점에 들렀다. 아이들은 자기들 책 코너에 엄마랑 갔고, 나는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서성였다. 한참을 기웃거리니 아이들이 다가온다. 아빠가 뭐하는지 궁금해 한다. 아이들이 오는 모습을 보고 책 두 권을 들었다. 「지리의 힘 1,2」 라는 책이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지리의 힘 1권을 여러 차례 빌렸지만 끝내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책이다. 2권이 출판되면서 1,2권이 세트로 진열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두선생의 지도로 읽은 세계사」를 읽고 있어서 지리에 살짝 관심이 있던 터였다. 「지리의 힘 1,2권」을 유심히 보다가 혼잣말을 해본다. ‘아, 이 책 너무 갖고 싶은데 2권 다 합치니 조금 비싸네... 아쉽다.’ 그리곤 책을 덮고 제자리에 놓는다. 아이들은 아빠의 이런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나의 계획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주 정도의 기간이면 아이들이 아빠 생일 선물을 갖추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날 이후 난 생일선물에 관한 언급을 안했지만, 아이들은 아빠의 생일선물 준비로 엄마와 긴급회의를 할 것이다. 자기들이 서점에서 아빠가 고민하는 책을 봐놨다며, 이 책을 선물해주면 좋아할 거라 생각을 할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열두 살 큰아들과 열 살 작은아들은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어 엄마에게 전한다. 아빠 책 주문 좀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아빠가 원하는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찾았다는 것과 두 번째로는 더 이상 생일 선물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에게 기쁨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찢겨진 2개의 선물포장지에서 각각 책 한권씩 나왔다. 이때 또 아빠의 연기가 들어간다. “우와~ 대박, 이거 아빠가 엄청 갖고 싶어 하던 책인데! 우와~ 어떻게 이걸 알고! 대박이야 얘들아. 아빠 완전 감동이다.” 어색하지 않다. 나는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고 있고, 오늘은 그 드라마속 주인공의 생일이니까. 이 정도 연기는 식은 죽먹기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자기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좋아한다.





    해마다 부모님들 생일선물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현금이라는 설문조사가 나온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그걸 보고 자라온 우리 아이들도 어쩜 어른들이 좋아하는 건 당연히 현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현금을 드리는 엄마 아빠를 보고 자라온 세대이다. 그러니 아이들도 저금통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도의 금액을 봉투에 담아서 생일 선물로 주는 게 틀린 것도 아니다. 돈 + 편지면 최고의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다. 초등학생이지만 보고 배운 게 그렇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조금은 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해 보자는 게 나의 생각이다. 어른이 즐거워할 수 있는, 부모가 정말 좋아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어느 정도 연출이 필요하다. 각본과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흔들리지 말자. 아이들은 아직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어쩜 생각보다 쉽게 드라마가 전개될 수 있다. 일단 해보는 것이다.


‘먼저’ 호기심이 있고 ‘그다음’에 지식이 있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놀이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은 ‘먼저’ 지식을 우겨 넣고 ‘그다음’에 호기심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순서가 바뀌어버렸다.
-전성수《부모라면 유대인처럼 하브루타로 교육하라》(위즈덤하우스)


    아이들이 아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상대방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답을 얻으려면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환경, 그리고 배움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쩜 부모의 역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 날 아침,

    열 살 작은아들이 눈뜨자 말자 얘기한다.

    “아버지 이제 생일이 364일 남았네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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