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는 건강한 씨앗을 심는 데 있다.
삶의 지혜는 불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건강한 씨앗을 심는 데 있다.
_류시화《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더숲)
무언가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결심을 하는 시기는 새해만큼이나 봄에도 많이 이뤄진다. 춥던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창문너머로 다가올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희망의 씨앗을 뿌리곤 한다. 그렇게 저마다의 인생에도 봄이 오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24절기 중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날은 소만(小滿)이다. 씨뿌리는 날은 망종(芒種)으로 양력으로 6월 5일 또는 6일이다. 봄은 3,4,5월, 여름을 6.7,8월이라고 한다면 망종은 여름인 셈이다. 정말 여름의 문턱에 도달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올 봄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초반에 올렸던 글 중에 씨앗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온도차가 극심한 사무실, 단지 햇볕이 잘 든다는 이유로 씨앗을 심었지만 결국 시들어버려서 흙으로 돌려 보내줘야 했던 이야기다. 연이어 창문 가득히 찾아온 봄을 느끼며 심었던 봉선화 씨앗이 돋아난 사진과 글을 올렸다. 봄에 ‘글쓰기’라는 씨앗을 뿌리며 어떤 열매가 맺힐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꽃들도 저마다의 개화시기가 다르다. 키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다. 같은 품종의 씨앗이라도 자라는 속도가 다르고, 꽃의 크기도 다르다. 이것을 경험하고서야 알았다. 우리 사람과 똑 같다는 것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화분에 씨앗을 담았다. 가장 먼저 봉선화가 빠르게 새싹을 틔우며 성장했다. 그 속도가 빨라서 일찌감치 분갈이를 했다. 그 분갈이 한 화분 속에 나팔꽃 씨앗이 하나 딸려 들어갔다. 수많은 봉선화 줄기 사이로 잎사귀 모양이 다른 녀석이 덩굴처럼 올라온다. 품종은 다르지만 같이 잘 지내자며 하트모양의 잎사귀를 드러낸다. 그러고는 가장 굵고 싱싱한 봉선화 줄기에 의지해 가장 빠르게 하늘위로 솟구친다. 혼자로 지탱하기 힘든지 창문에 붙어본다. 나는 안쓰러워 지지대를 하나 심어주었다. 균형을 잡은 나팔꽃 줄기는 조금 더 올라간다. 자기가 이곳의 승리자라는 듯 나팔을 분다. 그렇게 나팔꽃이 가장 먼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나팔꽃은 하루살이인가 보다. 하루 반짝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더니, 이내 입을 다물고 만다. 자기만 혼자라서 외로운지 그 날 이후로 침묵한다. 옆 작은 화분에 해바라기 씨앗2개가 싹을 틔우더니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나팔꽃이 멈춰선 걸 본 모양이다.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그 조그만 화분에서 1미터가 넘게 자라고서야 해바라기 꽃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낸다. 활짝 핀 꽃의 노란색은 어느 칼라보다도 깨끗했다. 다만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지 않고 점점 본인 머리의 무게에 못 이겨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활짝 핀지 열흘정도가 지나서는 힘든 내색을 하며 나팔꽃을 따라 반경을 좁히고 있다. 고개 숙인 해바라기.
무리를 이루던 봉선화들도 어느새 나팔꽃 높이까지 자랐다. 꽃을 보여줄 듯 밀당을 한다. 토요일 퇴근하기전 흰색 봉우리 하나만 살짝 있었는데, 월요일 출근하고 나니 3색 봉선화가 각기 다른 방향을 보고 활짝 필 준비를 하고 있다. 딱 나팔꽃 높이정도에서 꽃을 틔운 건 우연인지도 모르겠다. 크기와 높이가 작은 아래 봉선화들에게 가장 먼저 자기들 고유의 색을 자랑하고 있다. 마치 자기 쪽으로 오라고 유인하는 거 같다.
그 옆에 미니 화분은 수레국화와 파레붓꽃이다. 앞선 나팔꽃, 해바라기, 봉선화 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심었다. 늦게 출발했다고 그들은 조바심을 보이진 않았다. 내가 조바심을 보였을 뿐이다. 수레국화가 먼저 씨앗을 틔웠고, 위로 옆으로 분수처럼 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수레국화는 15개 정도의 씨앗 중 살아남은 3개 의 새싹만이 올곧게 직선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있다.
사십대 중반을 살아가면서 식물은 처음 키워본 듯하다. 물론 집에 몇 개의 화분이 있지만 그건 아내의 몫이었다. 혼자 화분에 씨앗을 심고, 새싹과 꽃을 피우게 하는 과정은 처음이다. 단지 햇볕이 잘 든다는 사무실 환경적 요인만 생각해서 뿌렸던 씨앗이었다. 가끔 물만 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쑥쑥 자랄 줄 알았다. 근데 식물을 키워보니 여간 힘들고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날엔 주말동안 더위에 지쳐 모든 줄기가 푹 쳐져 있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화분이 넘치기도 했다. 축 쳐진 잎사귀는 물뿌리개로 손수 하나씩 뿌려주기도 한다. 주말엔 너무 더울까봐 화분을 바닥에 내려놓고 간다. 옆으로 처질까봐 테두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지지대도 세워준다. 정말 사서 고생이다.
이런 정성에 식물은 꽃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보라색 나팔꽃도, 노란색의 해바라기도, 흰색, 분홍색, 빨간색의 봉선화가 아름다운 자연색을 보여줬다. 또한 이들은 내게 단순히 꽃 이상의 즐거움을 가져다 줬다. 첫 번째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다. 많은 글쓰기 책이나, 에세이 저자들이 하는 말이 좋은 글감은 자세히 들여다보기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특히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간결체와 구체적인 묘사의 절정체다. 책 초반에 동백과 매화, 산수유 등을 표현하는데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그의 묘사력인데 내 표현은 부족하기 그지없다. 다시 한 번 위에 꽃에 대한 글을 봐도 엉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나도 글쓰기가 성장하리라 믿기 때문에 굳이 부끄럽지는 않다. 언젠가 자전거여행1,2 필사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한 내 글쓰기 실력이 분명 다음에 느껴지리라 믿는다.
두 번째 느낀 건 각기 새싹을 틔우는 시점도, 자라는 속도도, 꽃을 피우는 시기도, 꽃으로 머무는 기간도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과 닮았다. 우리네 삶도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일찍 성공을 맛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너무 빨리 떨어지기도 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도 있고, 평생의 친구 한명과 함께 자라는 사람도 있다. 옆으로 일탈하는 젊은이도 있고, 앞만 보고 가는 청년도 있다. 누구나 활짝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다를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 말고 우직하게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파종의 시기가 있으면 수확의 시기가 있을 것이니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집착보다. 무엇을 심을 것인가에 대해 집중해야 하는 게 우리 삶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늘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그나마 변함없이 변하는 것은 계절뿐이라지만 그것도 실상은 춘하추동의 ‘반복’이거나 기껏 ‘변화 없는 변화’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면 우리는 다시 닫힌 듯한 마음이 됩니다.
_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어김없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계절의 변화는 변함없이 변한다. 그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반복에 불과하지만,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똑같은 춘하추동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2022년 봄과 여름은 처음이니까. 결국 오늘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서 인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