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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Mar 17. 2022

[짧은 글, 긴 여운] 초등 3학년, 첫 투표하던 날

부끄러운 목소리로 얘기한다. "아빠, 나 반장됐어요!"

큰아들의 반장선거가 있기 하루전날 얘기했다. 그는 반장선거에 관심이 없다했다. 우리들의 심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아빠의 내성적 유전을 쫓고 있었다. 다음날 아내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큰놈이 자진해서 반장후보에 나갔단다, 게다가 반장이 되었는데, 사내 녀석들 중 최다투표를 받았다고 전한다. 전화를 끊을 무렵 그놈이 기어이 넘겨받아 부끄러운 목소리로 얘기한다. ‘아빠, 나 반장됐어요!’ 

끊겨진 스마트폰 검은 액정위로 34년 전 사진이 투영된다. ‘아빠, 나 반장됐어.’ 지구가 태양을 34바퀴 돌기 전, 그해 3학년 4반 반장과, 지금의 3학년 4반 반장이 파스텔 톤 색으로 혼합되어간다. 그날 나는 아버지가 사온 종이봉투의 통닭에 환호했었고, 이날 내가 주문한 배달음식에 아이는 환호성을 친다. 변하지 않는 건, 삼십사년 전 그날의 아버지도 술을 드셨고, 지금의 나도 한잔 술을 기울였다. 컬러는 알코올에 희석되어 이내 흑백필름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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