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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Mar 16. 2022

화분에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경험이라는 가능성의 씨앗만 얻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아마 이 건물 전체에서 가장 햇볕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이 아닌 약간 사다리꼴처럼 윗변과 아랫변의 차이가 있고, 거기서 만나는 대각선의 길이가 전부 창가로 되어 있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아랫변도 창가다. 물론 여긴 책장으로 가렸다. 아무튼 한 겨울에도 11시~14시 정도는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다. 겨울엔 하루에 사계절을 만나고 있다. 새벽엔 겨울, 오전엔 봄, 정오엔 여름, 퇴근 무렵엔 다시 겨울이다. 표현뿐이 아니라 실제 아침 출근할 땐 히터를 켜고, 오전엔 히터를 끈 채 가디건을 벗는다. 정오엔 에어컨을 켜고, 오후엔 에어컨을 끈다. 가디건을 다시 싶고 히터를 켜는 반복적인 행동을 겨울 내내 하고 있다. 기온변화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근무환경이 꽤나 좋지 않다. 그래도 놓칠 수 없는 건 탁 트인 창문과 채광 때문이 아닐까. 한 여름에 수고는 말이 필요 없겠지만.


    반대로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다. 햇볕 한줌이 그리운 곳이다. 한 여름에도 베란다와 거실 일부만 햇볕이 들어온다. 겨울에는 말이 필요없다. 물론 1층을 선택한 이유는 층간소음으로부터 해방이 필요해서다. 앞선 아파트에서 아이 둘 놓고 층간소음으로 아래층과 좋지 않았다. 층간소음의 스트레스는 곧 아이에게로 전달되니, 결국 아이를 위해 햇볕을 내어주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선택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겨울이 깊어가던 12월에 아이들과 함께 다이소에서 작은 씨앗과 화분을 1개 샀다. 2,000원치고는 디자인도 예쁘고 가성비도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흙을 담고 물을 주고 씨앗을 심었다. 방울토마토 씨앗이었다. 햇볕이 안 들어서 걱정이었지만, 1주일 후 집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너무 신기하고 기뻤다. 하지만 식물에게 필요한 건 햇볕이라는 설명서와 함께 이 녀석을 사무실로 갖고 왔다. 햇볕 들기로는 직장 최강의 장소인 곳이니까. 그리고 내친김에 다이소에 가서 색상이 다른 화분과 씨앗을 3개 더 샀다. 봉선화, 바질, 강낭콩을 심었다. 창가에 두고 정성스레 물도 주고 관심도 줬다. 일주일 만에 강낭콩에서도 싹이 났고, 나는 신이 났다. 가끔 일찍 출근하면 음악도 선물해줬다. 그런데 사무실로 가지고 온 것이 곧 비극이 되었다.



<  새싹에서 자연으로 돌아간 방울토마토 >


    한겨울에는 온도차가 극심하다. 아무리 햇볕이 잘 든다 하더라도 해가 지고나면 바깥의 찬 기운이 창가를 타고 들어온다. 햇볕만 믿은 내 판단이 어리석었던 것이다. 결국 창가에 있던 화분 중 방울토마토와 강낭콩은 싹이 난 상태에서 시들어가고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죽어가고 있었다. 봉선화와 바질은 싹조차 틔우질 못했다. 안타까웠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할 싹들의 잎사귀는 자꾸만 땅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내 어깨의 힘도 같이 내려가고 있었다. 잠시라도 싹을 틔운 방울토마토와 강낭콩은 자연으로 돌려보내줘야 할 것 같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건물 9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공원이라 부르는 그곳에 화단이 있었다. 조심스레 그곳에 이 아이들을 뿌려주었다. 마음속으로 빌었다. ‘이대로 있다가 봄이 오면 싹을 다시 틔우렴.’

  사람이 책임을 질 수 없는 대상에게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감은
  애초부터 그걸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_이석원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달 출판사)


    애완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 또한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애초부터 그 대상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에 무척 공감을 한다. 그래서 식물조차도 생명이 있기에 책임을 다 할 수 없다면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냈다. 이 말을 떠올리니 죄책감이 들었다. 무책임도 느꼈다. 싹 조차 틔우지 못한 바질과 봉선화를 심은 화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미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앞서 비워냈던 두 화분에 채울 흙과 다이소에서 파는 1000원짜리 봉선화 씨앗 한 봉지를 샀다. 빈 화분에 흙을 채우고 물을 적셨다. 그리고 봉선화 씨앗을 골고루 심었다. 다른 화분에도 같이 심었다. 그렇게 2월 중순에서 3월초까지 3주가량을 지켜봤다. 무책임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씨앗들은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그렇게 또 잊혀 갈 때쯤 아내가 인터넷으로 아이들과 봄에 심으려고 또 화분 여러 개를 구매했다. 나는 그 중 2개를 병원으로 들고 왔다. 이번엔 나팔꽃과 해바라기다. 저렴해 보이는 투명플라스틱에 흙을 담고 씨앗을 심었다. 이번에는 물을 과할정도로 넘치게 부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봉선화 화분에도 물을 듬뿍 주었다.


봄이 창문 가득히 찾아왔다.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 출근하니 앞서 3주전 심었던 봉선화 씨앗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대단하다. 그 단단한 흙을 뚫고 나왔다. 여기저기 밀려진 흙들이 위로 솟구쳤다. 신기하고 또 아름다웠다. 혼자 흙을 뚫고 나오는 씨앗도 신기하고, 길을 내어주는 흙 또한 경이로웠다.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 녀석들이 잘 자라서 꽃망울을 터트리는 날까지 지켜야할 의무감이 생겼다. 이 작은 화분에 봉선화 씨앗을 마구 뿌렸으니, 언젠간 분갈이로 넓은 화분까지 머릿속에 생각중이다.


  뿌린 것이 있어야 거둘 수 있다.
  미래에 수확을 기대한다면
  매일 기회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실패는 항상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실패에서 나온 기회의 씨앗을 절대로 놓치지 말라.
  _리처드 파크 코독《밀리언 달러 티켓》(마젤란)


    대나무는 씨앗을 심으면 5년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5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변화가 생긴다. 그 성장속도는 한 두 달 만에 30cm가량 쑥쑥 자란다는 것이다. 땅속에서 5년의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줄곧 희망을 씨앗에 비교하고, 행복을 열매에 비교한다. 도전과 결과도 마찬가지다. 꿈도 그렇다.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행동의 씨앗을 뿌리고, 그 결과를 수확하기 마련이다. 성큼 다가온 봄 역시 이 씨앗이다. 저마다 올 봄에는 어떠한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할까? 거창한 열매를 수확하려 하기 보다는 경험이라는 가능성의 씨앗만 얻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창가 화분에 뿌려둔 씨앗과 함께
나는 이 봄에 ‘글쓰기’라는 씨앗을 뿌려본다.
어떤 열매가 맺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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