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주는 깨달음
우리가 실제의 언어를 더욱 정확히 고찰할수록, 그것과 우리의 요구 사이의 충돌은 더욱 강해진다.(논리학의 수정체 같은 순수성은 실로 나에게 탐구의 결과로써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요구였다.) 그 충돌을 견딜 수 없게 된다; 그 요구는 이제 공허한 어떤 것으로 될 우려가 있다. ㅡㅡ 우리는 마찰이 없는, 그러니까 어떤 뜻에서는 그 조건이 이상적인,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또한 걸어갈 수도 없는 빙판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걸어가고자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마찰이 필요하다. 거친 대지로 되돌아가자!_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순수함은 그냥 그대로다. 때 묻지 않아 변질되지 않은 그대로다. 나아진 게 없어 새로이 얻은 것도, 소유한 것도 없다는 뜻인가. 탐구의 결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면 원래 상태 그대로인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인간의 삶에 비유하면, 순수하게 사는 삶은 빙판 위에 미끄러져 다치거나 빙판 아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는 건가.
무언가 더 알기 위해 생각하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내적 갈등이 유발한다. 누구든 갈등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려 할 때 비로소 완성체로 거듭난다. 고통 없이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인생이 순탄하기만을 바라지 마라. 인생은 거친 비바람의 연속이다. 세찬 폭풍우에도 고요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다져라.’고 나의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듯하다.
(202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