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렇게도 현명한가”
한길 인생이었다.
어떤 공부를 하든지 책을 읽으며 공부했었다. 현재는 뭐든 내 안에 담을 겨를이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순수학문에서 응용학문으로 뿌리내리려 했던 내 노력 때문이다.
참, 인생은 알 수 없다. 글을 쓰고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동안 썼던 글은 추억의 앨범이었기에, 그저 기록이었기에 글(내 기준의 글)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예상치도 않게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며 수렁에 빠진 듯 다시 책을 읽는다. 이젠 책이 책이 아니다. 편안하게 읽던 책을, 책 내용을 곱씹어 가며 읽는다.
20살에 읽었던 책을 거실 책꽂이에서 찾았다. 그때도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 내용들인 책을 다시 읽겠다고 슬며시 꺼냈다.《이 사람을 보라》, ‘그래, 이 사람을 다시 보자.' 목차에서 “반시대적 고찰‘과 ”우상의 황혼“이 눈에 띄어 읽고 싶다. 생각대로 모든 걸 실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불현듯, “왜 나는 이렇게도 현명한가.”를 선택하여 읽고 있다.
‘나의 생존의 행복’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다니...
현재 나에게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깊은 화두인 ‘생존’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닿는다. 생존... 죽음으로부터 살아남기, 죽음을 피하기, 그저 살기, 잘 살기, 건강하기 등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생명력의 상승과 하강에 대하여.
니체는 자신의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던 1879년, 그림자 같은 몸을 이끌고 산모리츠로 갔다. 그는 바젤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여름을 보냈다. 그 당시 체력이 극소점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글을 썼다. 다음 해 겨울, 극도로 쇠약하여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도 사물을 감미롭고 밝게 보며 정밀화하여 《서광》을 완성했다.
니체는 쇠약해진 자신일지라도 자신을 스스로 책임졌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 스스로 고독에서 벗어났다. 이는 근본이 건강했기에 가능했다. 그는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스스로 힘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새로이 발견하고, 길고 긴 병자 생활의 끝자락에 자신의 존재도 다시 발견했다.
첫 장에서부터 행운이다. 현재의 나를 알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과거의 나는 니체 책을 여러 권 읽었었다. 아마도 니체가 한 말에 몹시 공감했었나 보다. 내 판단의 기준에 니체가 있었구나. 자세한 까닭을 모른 채, 자동으로 나왔던 말의 이유를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내 안에 담겨 있는 것들이, 내게 스며있는 것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행운은 잠시일 뿐, 데카당스와 데카당이란 단어가 낯설다. 20살 때도 그랬겠지.
니체는 자신이 데카당이면서도 다른 뜻에서는 데카당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건강이 최저였을 때 데카당스를 버렸다. 자기 회복의 본능적 요구에 의해 건강한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이 건강하기 위해, 자신이 살기 위해 데카당을 포기하고 자신의 철학을 다시 만들었다. 그리하여 인간성을 다음과 같이 구별 짓는다.
훌륭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을 ‘그’라고 칭하며 말한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의 감각은 훌륭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을 기분 좋게 느낀다. 그 사람을 단단하고 섬세한 좋은 목재에 새긴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로서 유익한 것만 맛 좋게 느낀다. 하지만 유익도 한도를 넘으면 맛이 없어지고 저하된다. 그는 상처 받더라도 무엇이 그것에 잘 치유될지를 헤아려 알고, 불리한 우연을 이로운 것이 되도록 모두 이용하여 더욱 강해진다. 그는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집성하여 많은 나쁜 것들을 제거하고 책과 사귀거나 풍물과 노닐기 위해 동아리 속에 있다. 그는 모든 자극에 완만하게 반응하고 오랜 기간 익숙해진 완만함을 갖고서, 자극이 다가오면 그것을 음미한다. ‘불운’이나 ‘죄’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자신이 되든 타인이 되든 어떤 것에 관한 한 그것 자체로 정리해 버리고 잊어야 할 것들을 잊는 것도 터득한다. 어떤 것이든 그를 위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는 강하다.”
이렇게 길게 ’ 그’에 대해 나열하여 묘사하던 말미에 니체는 말한다.
“참으로 나는 데카당이 아니다.”
상세하고 길게 묘사한 훌륭한 인간성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니체 자신이었다. 달리 말하면, 니체는 데카당이면서 데카당이 아니기도 하여 어느 쪽으로든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의 성질에서 갖가지 의미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네 번째 장에서 또 행운이다. 자각하지 못하고 지냈을 뿐, 니체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나는 니체를 항상 사랑하고 있었구나! 니체를 이유 없이 사랑한다면 나도 위대하련만 내가 니체를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니체의 ‘자신감’이다. ’당당함’이다. 니체는 자신이 남에게 반감을 준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악의를 품은 적도, 품은 흔적도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자신의 호의의 흔적을 세세히 설명하는 니체의 자신감은 최고다. 자신의 호의의 흔적은 지나치리만큼 많다고까지 말한다. 이를 어쩌나. 니체의 시대로 가고 싶다. 그를 만나고 싶다.
호의의 흔적을 집약한 한 문장이라도 적으며 니체를 만난다.
“어떤 악기일지라도 무릇 인간이라고 하는 악기이기만 하다면, 아무리 그 상태가 잘못되어 있더라도 거기에서 무엇인가 들을 만한 ‘음’을 끌어낼 수 있다.”
기억난다. 내가 친구들에게 이 문장을 활용하여 말했던 기억이 오늘에야 기억난다. 사람을 악기에 비유하여 말했을 때 무안을 주던 친구들이 기억난다.
아무래도 호의의 흔적을 더 적어야겠다.
니체는 말한다.
“남을 무시하는 말을 써서 싫증 나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나와 사귀면 좋은 표정이 된다.”
“나는 어떠한 난폭한 사람도 길들인다.”
“아무리 지독한 게으름뱅이일지라도 내게 오면 부지런해졌다.”
“우연에 대해서도 언제나 선처할 힘이 있다.”
“조심성이 없을 때야말로 나는 더욱더 나의 진가를 발휘한다.”
이러한 호의의 흔적 사례는 허다하지만, 그보다 더한 극치는 니체는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반감을 품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거리의 파토스’에 대해 여러 반론이 나올지라도 솔직한 니체를 지지한다. 현재 ‘니체의 사회’가 되어서가 아니다. 나 역시 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진리를 찾으며 살아왔기에, 내가 따르는 나이기에. 세상을 직시하는 나를 위해 내가 추구하는 모습이기에... 또한 자라투스트라이기까지... Oh, my goodness!
여기에도 있다니. 니체가 하는 말은 온통 내가 하고 있는 말이고 내가 해 오던 생각이다. 나와 가족, 지인에게 현재 하고 있는 나의 행동과 말이다. 니체의 영향으로 내가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산 것 같다. 물론 내 부모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하지만 니체처럼 나도 데카당이었다가 아니었다를 반복한다. 니체가 자신을 위해 한 말이든 타인을 향해 한 말이든 그 말은 모두 자신 자신이 속한 말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나의 무지를 인정했다가도 어느새 많이 안다고 자신한다. 데카르트에서 베이컨으로, 러셀에서 칸트에게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플라톤으로, 등등에서 등등으로 오고 가다가 다시 소크라테스에서 니체에게로 왔다.
이는 보통 사람인 내가 성인처럼 위인처럼 살려하기 때문일까. 그들의 위대함을 나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에게 적용하여 충돌과 혼란이 생긴 걸까. 그렇다 해도 서로 좋아지고 길들여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면 우리도 위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
20살의 흔적(밑줄 쳐져 있는 문장)을 적으며 ‘가치 전환’을 위해 현재의 나로 돌아온다.
--- 내 마음 위쪽에서 나의 여름은 불타고 있다. 짧고 덥고 우울한, 너무나도 행복한 여름은 불타고 있다. 얼마나 나의 여름의 마음은 너의 냉기를 연모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봄인 주저하는 슬픔은 지나갔다! 내 악의의 설편(雪片)은 지나갔다! 나는 완전히 여름이 되었다, 여름의 한낮이 되었다.
--- 차가운 샘과 청정한 행복의 고요함을 갖춘 고산 절정의 여름. 오오, 오라, 나의 벗이여! 이 고요가 행복을 더해 주듯이!
_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이제 봄을 지나 여름이다. 주로 글쓰기에 집중해 있다. 글을 쓰기 시작했던 봄을 보내고 여름에도 쓰고 있다. 현재 쓰고 있는 글은 그동안 살아온 나이거나, 지금 살고 있는 나, 또는 앞으로 살며 닮아갈 나이다. 한마디로 내 글은 내가 추구하는 바를 대신한다. 내 일상의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할 때는 문학가나 철학자, 수학자 등을 빗대어 나를 표현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내 전공인 순수학문을 바탕으로 하지만 많이 확장된 ‘응용학문’에 도전했었다. 흐어, 경영 통계학만 그저 먹기였고, 경영 과학은 그나마 선형 대수식을 짤 때는 행복했지만, 그 외 회계학과 경영학 전반은 머리를 빙빙 돌게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는 다시 좌절했고, R 통계를 하는 내내 장시간의 전자파는 내 건강을 떨어트렸다. 기어이 해야 하는 나는 학위를 받고서 마무리하긴 했지만 체력이 떨어져 있었다. 마냥 쉬어도, 쉬기만 해도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점점 회복되었지만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복합적으로 운동하기 위해 피트니스를 찾았다. 토론모임도 다시 시작했다. 피트니스에서는 정적인 요가로는 기운이 쉬이 상승되지 않아 활기찬 댄스를 하고 있고, 토론 모임도 낭만적인 책을 다루던 모임이 아닌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린다’는 모토 아래 모두의 가치 실현을 논하고 있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하며 완전히 회복된 줄 알고 지냈다. 운동, 토론 등이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 준 건 분명하다. 하지만 뭔가 또 모자랐다.
그 모자람은 글이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예상치 않게도 정적인 글이 현재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글을 쓰고 있으면 삶의 만족감도 크다.
온갖 불안과 인간관계의 불편한 다반사를 글로 떨칠 수 있어서일까. 내 일상을 쓰며 나와 인간에 대한 상념을 정리했다. 불안한 고뇌가 시작될 때는 책 속 철학자들을 찾아 위로받았다. 책 속 그들처럼 느끼고 공감하는 글을 쓰며 점점 편안해졌고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거친 대지 위에서 그들처럼 고요히 글을 쓰며 행복하게 걸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 나로구나! 글을 쓰고 있는, 이 모습이 바로 나로구나.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나의 삶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