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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Aug 13. 2020

내가 나를 챙기다

2014년과 오늘

 오늘 *S작가님 글을 읽고 나서 2014년 낙서장을 펼쳤다.(2020.8.11)




 H선생님과 통화하며 나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다. 항상 내가 우선이면서 가족을 최대한 챙기는 삶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부분이 더 많아지면 울 가족들은 또 불만을 토로하겠지.(2014.11.27)


 내가 중심이었지만 항상 결정은 가족이 우선이었구나.(2014.12.5)

 추억에 관하여: 나는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은 자연스럽게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의식되지 않았거나, 불쾌했던 만남이나 일은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소중하고 고맙고 행복감을 주었던 사람이나 일은 영원히 기억하고 추억할 때마다 삶의 활력이 된다. 최근 자주 떠오르는 사람들은 J교감 선생님, H선생님, J선생님, K선생님, E지도교수님, Y, 울 신랑 지인, 내 여동생과 남동생, 언니, 그리고 울 엄마이다. 물론 울 신랑과 나의 보물들, 셜리, 벨라(크흣)도 소중하고 고맙다.


 진심이 오고 가는 관계는 찬란하다. 비로소 2014년도 감사한 한 해로 저물어가는구나! 남은 12월도 여유롭게 빛내어 마무리해 보자.(2014. 11.27)




  S작가님이 오늘 발행한 글을 자세히 읽었다.

무의식과 나, 자동적 사고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내가 나를 챙기는 데 있어 만약 S작가님 표현처럼 무거운 바위와 큰 나무통이 내 안에 존재한다면 치워 보도록 한다.


  낙서장을 펼쳐,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조금이라도 자동적 사고를 옮겨 본다.

  낙서장은 세상에 공개될 리 없고 나만 보는 글이어서 생각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나를 맘껏 썼던 공간이다. 그래서 무의식과 나, 내 자동적 사고를 기초로 삼아 생각해 본다.


  ‘내가 소중하면서 내가 우선’이라고 말하고선, 가족을 잘 챙기는 삶이었다고 덧붙여 있다.


  결혼 전엔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내가 우선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까지는 아니어도 내 중심으로 세상을 돌렸다.(나의 자동적 사고는 너무 솔직한가.)


 결혼하면서 서로의 기호나 선호도에 맞춰 똑같이 반씩이었다. 두 보물이 우리에 속하면서 넷이 똑같이 사분의 일씩이었다. 두 보물이나 나를 위해 신랑이 양보하면 신랑에게 자기가 사고 싶은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도 돈을 쓰라고 말했다. 다 같이 행복하자면서 한 말이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아프게 되면 과거에 못한 것이, 안 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서러울 수 있다고 말하며 자기 몫을 쓰라고 권했다. 물론 보복 소비와 같은 조금의 병폐가 있긴 했어도 우리는 항상 지금을 살자주의였다.

  이처럼 나도 사분의 일 또는 신랑이 양보할 때는 덥석 받아 챙겨 사분의 이를 소비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우선이었다고 표현했나...

 생각났다. 내가 우선이지만은 않았다. 나도 신랑처럼 두 보물이나 신랑을 위해 양보한 적이 있었구나. 그럴 때면 신랑도 나에게 널 위해서도 쓰며 살라고, 그래도 내가 망설이면 널 위해 그 정도도 못 쓰냐며 그냥 쓰라고 말해 주었구나. 특히, 음식에서 내가 양보한 경우가 많았구나. 신랑에 비해 ‘소식주의자’이고 별명이 ‘과일 킬러’였을 정도로 과일을 좋아했는데 신랑과 보물들 식성에 맞추다 보니 과일은 킬러에서 이젠 애호하는 수준이 되었고, 세 명처럼 많이 먹어서 조금 통통해졌다. 아니 두 명인가. 내 기준에선 딸도 나보다는 많이 먹는 것 같지만 딸은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날씬한 편이니까.

  갑자기 생선 구이 생각이 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인 ‘생선구이’를 우리 집 식탁에 많이 올리지 못했다. 대신 각종 고기류가 현재 우리 집 식단의 주류다. 알고 보면 내가 즐겨 먹는 음식이 건강식인데,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음식보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오늘도 장을 봤다.


 가족을 잘 챙긴다는 말은 지인들, 친언니, 울 신랑이 해 준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중심이라면서 결정은 가족이 우선이었다고 적힌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무의식 중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많이 고르지 못해서 한 말인 것 같다. 나보다 먹는 걸 더 좋아하는 세 명이기에 내가 양보하는 편이었다.

 오마이, 갑자기 나 자신이 자동적으로 내게 알려 준다. 음식은 맞춰 주었지만... 선한 성격의 신랑과 두 보물이 내 의견을 거의 따라 주었다고 알려 준다.

  “내 말이 맞지. 결국 지나고 보면 내 결정이 이로웠잖아.”

  “내 말을 들으면 다 이룰 수 있어.”

  “나를 믿고 열심히 해. 시간이 걸려도 되니 하고 싶은 걸 오래 해.”

  “마음먹고 해. 즐겁게 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렴.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신랑과 두 보물에게 농담처럼 주로 하는 말들이었지만 진심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말들을 하면 대부분 신랑과 두 보물은 내가 하는 말과 주장, 결정을 그냥 다 들어주었다. 온통 내 위주였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생각은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아니, 피하지 말고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내게는 힘이 되고 편한 말일지라도 세 명은 자신들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한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 더 생각해 보고 추억으로 넘어가야겠다.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 즉 기분 나빴던 상황이나 불쾌한 감정이 들게 했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잊어버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잊기 위해 거리 두기나 절교 등을 선택했겠지. 과연 잊어버린 걸까. 나 스스로 있던 사실을 없는 걸로 만들고 싶었나. 행복감이나 기쁨을 주는 사람들 덕분에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된 줄 알고 그런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었나.

  오마이, 그리고 나는 뉴스를 잘 보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특히 뉴스를 더 보지 않는구나. 뉴스는 불편한 사실이 많고 내가 원치 않는 끔찍한 사건들도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시각으로 전달되는 영상에 대한 상상력이 크다. 그래서 괴기 영화나 폭력물을 잘 못 본다. 가령 괴기 영화를 볼 때는 흉측한 괴물이 바로 내 옆에 있는 것 같고 폭력물도 난폭하게 싸우는 장면이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끔찍하다. 그래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하여 몸이 피곤해진다. 또한 지저분하다거나 무자비하다고 느껴지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눈이 감기고 끔찍한 장면에서는 반사적으로 고개 돌려 피하면서 몸도 동시에 움츠려진다. 그런 영화가 끝나자마자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고 선포한다.


 그런데 요즘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부터 뉴스를 보는 게 조금 무던해졌다. 둔해진 걸까. 심장이 좀 강해졌나. 아니면 좀 더 용감해졌나. 어쩌면  글로 해소하나.

 이건 뭘까.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을 모를 때와 알 때의 차이인가. 또한 나를 알 때와 모를 때의 차이인가. 내가 나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다. 나를 모르는 것보다 아는 쪽이 세상을 더 편하게 보고 받아들여지나. 그로써 더 강해지는 걸까. 세상에 공개하는 글을 쓰면서 점점 마음이 편해진다. 그것과도 관련 있는 걸까...


 어쨌든 결론은 ’ 진심’으로 마무리했구나. 진심이 없는 사람과는 절교나 이별을 선택했나.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만을 만나려 했었나.



 이제 여기서 그만 생각하고 오늘의 나에게 말해 준다.

  “그냥 네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 하며 살아. 오늘 보았던 아픔은 이제 그만 생각해. 선을 그을 수 없는 일은 힘들어도 그냥 지켜보는 게 어때.”

  오늘의 나에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며 ‘나의 누군가’가 되어 주었다.


 낙서장에 쓸 때처럼 생각을 솔직하게 쓰며 어떤 나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나를 다시 또 받아들인다.

그저 글로써 나를 더 ‘단단하게 스스로 챙기기로’ 한다.


*S작가님 : 시니어바텐더 휴 (감사합니다!!!)

(20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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