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mileall Aug 28. 2020

자녀 교육은 생선 굽듯이

아들의 요청

아들이 중학생 때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른 날이었다. 1학기 중간고사 성적 이후 나와 아들은 살짝 흔들리고 있었지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과 내가 함께 한 시험 대비


아들은 초등학생 때까지는 나와 함께 시험 대비를 했었다. 시험 대비라 하여 그리 거창하진 않았다.

  그 당시 아들 친구들은 100% 모두 학원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아들은 학원은 물론이고 과외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아들이 좋아하던 개미 관찰과 과학 실험, 풋살 정도만 하고 있었다.

  아들과 내가 준비했던 초등 시험 대비는 정말 간단했다. 나는 처음에는 무조건 기회를 주는 편이다. 아들은 자신 또래들보다 한글을 조금 일찍 익혔었다. 그래서 생애 첫 시험인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아들에게 온전히 맡겼다. 아들 역시 처음 보는 시험이었지만 별것 있겠냐며 자신 있게 말하고서 시험을 보러 갔었다.

  아침의 그 기세와는 달리, 아들은 하교하자마자 (해소하고 싶은 무언가를 품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내게 물었다.

“시험 문제는 어떻게 푸는 건가요?”

이런… 어떤 게 문제이고, 무얼 하라는 건지, 답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단다. 아들이 귀여웠다. 무엇이 문제인지 답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책 읽듯이 시험을 치르고 온 아들이 귀여웠다. 아들은 간식을 먹으며 다음 시험에서는 답을 정확하게 잘 적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제안을 했다.


  “다음 시험부터는 엄마와 함께 시험공부를 해 볼까? 1학년은 시험 하루 전에 하루만, 2학년이 되면 이틀 전부터 시작하여 이틀만. 어때?”


  “그럼, 6학년이 되면 6일간 시험공부를 하는 거네요?”


  “그래, 엄마가 보기에 넌 평소에 책을 많이 읽으니 그 정도면 될 것 같아. 6학년일 때 6일은 좀 긴 거 같기도 하지만... 어때?”


  아들은 좋다고 흔쾌히 대답했고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우리는 함께 시험 대비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문제집은 풀지 않고 우리가 정한 시험 대비 기간에 교과서 내용만 함께 정리했다. 아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 하브루타 식으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함께 내용 정리를 했다. 시험 문제를 제대로 읽을 줄 알게 되고 답을 써야 할 칸에 적는 연습을 위해 우리는 그렇게 준비했다. 문제집을 푸는 대신에 이건 알려 줬다. 물음표로 끝나는 부분까지가 문제이고 그 내용을 책 읽을 때처럼  읽고 나서 그다음 빈자리에 우리가 함께 정리했던 교과서 내용에 기초하여 아들이 생각하는 답을 적으라고.

  결과는, 내가 기대했던 바와 달리 아들은 큰 승전보를 안고 달려왔다. 올백이었다. 문제를 읽고 해석할 수 있고 답을 쓸 줄 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의 결과에 나와 아들은 무척 놀랐고,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문제집도 풀게 했다. 학교 시험의 난이도가 높아졌고 응용, 심화 문제까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함께 초등학교 6년을 보내며 아들은 전교 1등이 아니면 2등을 했다. 올백, 전교 1등이라는 말에 놀라시는 분도 계실 테지만 사실 아들이 초등학생 때는 그 정도가 별 게 아니었다. 올백은 아들 친구에게도 흔한 일이었다. 요즘 학생들은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똑똑하다. 그때 아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학생들은 30%가량이 우수한 성적이었다.



다시 아들이 중학생 때다.


이제, 아들이 중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른 날로 돌아간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이번에도 혼자서 공부할 기회를 줬다. 이번엔 한 번이 아니라 계속 혼자서 공부할 줄 알았다. 내 기준으로 중학생부터는 혼자서 공부해 성적을 낼 수 있는 나이라 여겼다.

  아들에게 모두 맡기니 여유시간이 생겨서 한가하고 즐거웠다. 나는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쉽사리 단정 짓지도 않고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편이다. 아들도 내가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말도 거론치 않는다는 걸 이미 알기에 기말고사를 어떻게 치렀든 간에 평화롭게 저녁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내 곁으로 아들이 슬며시 다가왔다. 유난히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지긋이 말했다.


  “어머니, 정약용 아시죠?”


  어머니란다. 아들이 나를 어머니라고 부를 땐 자신 없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거나 용돈이 더 필요할 때다.


‘시험을 못 봤나. 성적표가 나오면 그때 가서 얘기하면 되지. 용돈을 다 썼나. 시험도 끝났으니 더 줄까. 딸 몰래 좀 더 줄까나.’


아들이 어머니라고 부른 말에 신경 쓰여 정약용은 잊어버리고 맘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들이 내 얼굴을 빤히 보며 계속 이어서 말했다.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한 말이 있어요. 아실 텐데요.”


  “으응? 무슨 말?”


  “으음... 정약용이 말한 자녀 교육이요.”


  “자녀 교육은 생각 안 나네. 백성 사랑과 목민관의 자세, 뭐, 인재 관리는 생각나지만...”


  “엄마가 그동안 잘 실천하시던 사항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너 뭐 필요하니? 말해도 돼.”


  “정약용이 자녀 교육을 생선 굽기처럼 하라고 했잖아요.”


  “으응, 알지.”


  “그동안 저를 생선 굽듯이 잘 챙겨 주셨는데요. 엄마가 요즘 취미 활동하시며 즐거우신 모습이 보기 좋지만요. 요즘은 절 너무 내 버려두시는 듯해요. 생선을 어떻게 구워야 잘 굽는지 아시잖아요.”


  “크흐흣. 아들, 너 지금 타고 있니? 오 마이, 타면 안 되는데... 이번 시험 많이 못 봤어? 혼자서 잘할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중간고사 끝나고서 엄마가 조금만 도와줄까, 했을 때 너 혼자서 잘할 수 있다고 말한 건... 호언장담이었니? 난 널 믿었어.”


  “시험 준비에서는 절 믿지 마시고 예전처럼 적당히 관여해 주세요. 절 다시 생선 굽듯이 관리해 주세요.”



아들의 생선 굽기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어도 생선을 잘 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번 뒤집으면 완전히 부스러지고, 그냥 내버려 두면 새까맣게 탄다. 적당한 타이밍에 맞추어, 생선이 알아차리지 못하게(부스러지지 않게) 순식간에 뒤집어 줘야 한다. 그래야 탄력 있고 맛있는 생선구이가 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언급하며 아들은 자신의 비서 역할을 다시 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아들이 원하는 실적을 거두기 위해 무언가 도와줄 때마다 내가 아들의 비서라고 생각하며 도왔다. 아들인데도 비서처럼 준비하여 말하고 행동해야 했기에 내가 아들 비서 역할을 하는 건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아들 비서 역할을 그만 두었을 때 심적으로도 편했고 피부도 더 하얘졌고 여유 시간이 생겨서 참 좋았다. 그런 기간은 6개월 정도였다. 6개월이면 나의 뇌도 내가 지시했던 행동 코드에 익숙해졌을 무렵이다. 하지만 내 두뇌 명령 코드를 관리 모드로 바꾸어 재정비한 후 아들 비서 역할을 다시 시작했다. 아들의 마음을 더 헤아린 내 비서 업무의 기본 원리는 ‘생선 굽듯이’였다. 내 손길이 없는 듯, 아들이 혼자서 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고 전반적인 일정을 뒤에서 체크하여 순조롭게 뒷받침했다. 시험 대비 기간에는 다시 하브루타 질문식으로 교과서 내용을 정리하고 문제도 풀었기에, 그 기간 동안은 내 입이 쉴 날이 없었다. 그리하여 아들의 생활은 물 흐르듯 흘러갔고 성적도 다시 올랐다. 아들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며 아들에게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겼다. 그래도 정약용을 언급하던 아들 얼굴을 마음속에 넣어 두고 늘 떠올린다. 변함없이 아들 생선을 잘 굽고 싶어서다.


흐흣.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들 생선을 굽고 있다. 아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굽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나를 챙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