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오늘은 쉬기로 했다. 나무늘보처럼.
일요일이니까...
늦은 아침을 먹으며 딸에게 말했다.
“오늘은 나 쉴 거야. 나 쉬라고 해.”
나 자신이 꼭 실천하길 바라여 딸에게 다시 한번 더 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일어나자마자 식탁에 앉은 딸은 말할 힘도 없나 보다. 내 말에 그저 고개만 돌린다. 백설공주보다 뽀얀 얼굴을 들어 입꼬리만 살짝 올려, 대답을 표한다. 잠이 덜 깬 딸은 눈을 힘겹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아들은 한 접시 모두 깨끗하게 클리어하고 벌써 들어갔네.”
셜리 밥을 챙기는 사이에 아들은 참 빨리도 먹고, 이미 자신 방으로 사라지고 없다.
오늘 아침은 한 접시 요리였다.
한 접시 위에 무항생제 돈육과 두부로 만든 함박 스테이크와 감귤 샐러드, 밥 위엔 반숙 달걀 프라이, 배추김치 줄기, 총각김치 무, 찐 감자를 올렸다.(한 접시 요리와 늘 짝꿍이었던 국물은 준비하려다 말았다. 쉬고 싶어서) 아침엔 에너지를 끌어올려 주는 노란색 과일이 좋다. 아들과 딸의 샐러드에는 참치를 올려 주려다 감귤만 올리고, 나와 신랑의 샐러드에는 감귤에 7가지 견과류도 더 올렸다. 아들, 딸은 아직도 견과류를 싫어한다. 아들, 딸이 어렸을 때처럼 견과류를 갈아서 뿌릴까, 견과류를 잘게 썰어 야채 아래에 숨겨 넣을까 하다가 그냥 넣지 않았다.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빨리 쉬고 싶어 국물도 만들지 않았잖아.’
우리 집 남자들은 밥을 참 빨리 먹는다. 어느새 식탁엔 나와 딸 둘 뿐이다. 우리 둘 접시에는 음식이 반 이상 남아 있었다.
“엄만, 오늘은 쉴거야. 소파에 늘어져, 크흐.”
“네, 흐흐. 근데 엄마, 셜리 되게 급하게 먹네요.”
“으응? 배고팠나. 넌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 나도 그럴 거야.”
아침을 다 먹은 후, 게으른 날이 되어 보자고 TV 앞에 앉았다. 당연히 빈 손이 아니다. 마법의 가루를 뿌린 디카페인 커피와 다크 초코볼, 구운 피스타치오, 나쵸칩을 챙겨, 가지런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TV를 켰다. 오늘은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가 되어 보련다.
그때 아들이 노트북을 들고 내게로 다가왔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봐달라고 했다. 이런, 아들 글을 읽으며 ‘낚다, 낚이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울 아들 글을 향해 낚싯줄을 던지고 싶어 졌다.
‘아들 글을 낚아야겠구나!’
아마도 오늘은 정말 게으른 날이 되려나 보다. 아들 글을 다 읽고 나서 바로 제안했다.
“아들, 잘 썼네. 네 글을 엄마 브런치에 발행해도 되겠니?”
“네, 괜찮아요.”
흐흣, 아들 글을 발행하기로 허락받았다.
아들 글이다.
저의 인생은 항상 순탄하였습니다. 큰 불행도 없이 운도 많았고, 좋은 집에서 태어나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인생의 도착지나 앞으로의 삶의 질이 평생 지금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원전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철학자 솔론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분명히 세계 최고의 부자인 자신을 지목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솔론은 평범한 죽음을 맞이했던 평민 몇 사람을 지목하였습니다. 이에 크게 분노한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을 리디아에서 내쫓았습니다. 솔론은 리디아에서 쫓겨나면서 “삶을 마칠 때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부르짖지 마십시오”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실제로 리디아는 그 후 페르시아에 정복당하였고, 크로이소스 왕은 리디아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 큰 감명을 느끼고 앞으로 저의 인생에서 좋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이 글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나의 삶이 좋고 넘치다고 느껴져도 또는 너무 힘들고 불행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인생이 끝나기 전까지는 안주할 수 없고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현재까지도 누군가 저의 인생에 가치관이나 좌우명에 대해서 물으면 항상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현재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글귀 출처: 헤로도토스 『역사』 中 리디아 편
오늘은 아들 글 덕분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글 수정도 정리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 게으르게 쉰 날이다.
(Thank you, my son!!!)
(20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