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일을???

과연 내가...

by novel self


오늘은 장을 아주 빠르게 봤다.
배송할 생각이어서 장바구니도 들지 않고 지갑과 자동차 키만 손에 들고서 유기농 매장으로 들어갔다.


오늘 장보기의 주는 과일과 고기다. 상주 신고배, 의성 황금 사과, 청도 반시, 서귀포 빌레밭 감귤을 카트에 재빨리 담았다. 고기 쪽으로 발을 성큼 내딛으려다 “올가을 꼭 먹어봐야 할 Hot Fruits!”라는 문구에 고개를 돌렸다. 이 문구에 끌려 영천 ‘블랙 사파이어’를 집어 카트에 쏙 담아 버렸다. 오늘 저녁 후식은 고민할 필요도 없겠구나. 단연 블랙 사파이어다. 어떤 맛일지 상상하며 고기 쪽으로 갔다. 함박 스테이크, 데리야끼 치킨 봉, 차돌박이까지 넣고서 장보기 목록이 기억나지 않아 메모지를 찾으려 한다. ‘어머, 핸드백을 차에 두고 내렸잖아.’ 메모지를 볼 수 없다. 뭔가 하나 더 적은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고기류를 대신할 뭔가를 하나 더 사기로 하고 두리번거린다. 단백질을 대신할 것을 찾다가 구운 계란을 사기로 결정했다. 계산하러 가려는데 또 뭔가 허전했다. 매장을 좌우로 천천히 훑어보니 떠올랐다. 우리콩 생나또가 보인다. ‘맞아, 나또구나.’ 나또까지 얼른 카트에 담으니 흐뭇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블랙 사파이어를 씻었다. 모두 맛봐야 하니 4등분이 되게 가위로 가지를 세 군데 잘랐다. 흰 접시 세 개에 블랙 사파이어를 1:1:2 비율로 담았다. 접시 세 개 중 하나는 딸, 다른 하나는 아들, 나머지 하나는 우리(나와 신랑) 거다. 접시 하나를 들고 딸방으로 갔다.


“후식, 이거 먹어.”


과일 이름을 말해 주려는데 딸이 먼저 말한다.


“가지 포도네요. 예전에 사 주셨던 포도네요, 맛있는. 오랜만에 먹네요.”


“그래? 난 기억이 안 나네... 똑똑한 우리 딸, 맛있게 먹어.”


이렇게 말하며 기억해 본다.

‘내가 언제 가지 포도를 샀었지.’

내 기억엔, 이 과일을 산 기억이 없다.


아들에게도 가지 포도(블랙 사파이어)를 가져다주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처음이 아닌 게 맞구나.’


부작용이다. 운동을 많이 한 부작용이다. 예전과 달라진 건 운동뿐이다. 운동을 매일 하니 몸은 건강해지지만 기억력은 감소하나. 운동과 기억력의 상관관계를 찾아봐야 하나.


아니면, 마스크 때문인가. 마스크 끼고 생활한 지 벌써 몇 개월이던가.
운동에, 마스크에 또 달라진 건 뭐지?
???


이런, 기억력 회복을 위해 우선 쉬어야겠다.
그냥... 쉬어야겠다.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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