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현재 비트겐슈타인과 데카르트를 사랑하고 러셀을 존경한다.
물론 과거에는 투르게네프, 카프카, 괴테, 모파상, 니체, 레오, 단테, 밀란 쿤데라,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바스콘셀로스, 쟝, 쌩텍쥐페리, 토마스 만, 모파상, 톨스토이, 막스 밀러 등 아직도 열거하자면 많지만 이들 작품을 끊임없이 읽었다.
근래 통계 관련 책을 보느라 삭막해져 있던 차에 환하게 웃게 해 준다는 말과 달빛처럼 스며들어 당신을 반짝이게 해 준다는 문장에 혹하여 신경숙의 짧은 소설『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했다.
난 어떨 때 환하게 웃지.
날 반짝이게 해 주는 건 뭘까.
난 뭐가 제일 소중하지.
또 남들은 무엇이 가장 소중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욕실 문을 빼곡히 열고 출근 준비하고 있는 신랑에게 묻는다.
“자기야, 내가 2년 전에 무인도에 간다면 뭘 갖고 갈 거냐고 물었을 때, 자기는 뭘 갖고 간다고 했었지?”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말하고 나선 미안하여 스윽 웃는다. 내가 했던 대답만 기억나고 신랑은 뭐라고 대답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 궁금하다. 다행히 신랑도 기억나지 않는 것 같다.
“난 다 갖고 갈 거야. 모두~”
“아니, 모두는 안 돼. 하나만 갖고 갈 수 있어. 내가 질문을 하나만 갖고 가는 걸로 정했어. 그러니 하나만 생각해 봐.”
소파에 앉아 기억해 보려 애쓴다. 도구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특별히 인상적이거나 감동적이지 않으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계속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욕실에서 나와 타워 팬 앞에서 바람을 쐬던 신랑이 말한다.
“무인도에 가면 못 돌아오는 거야?”
“으응.”
내가 웃는다. 답이 기대되어 웃는 거다, 재밌는 답을 하겠지, 하며. 이런... 나를 데리고 갈 거란 말에 기뻐서 룰루 하려는 순간, 뒤이어 자신이 무언가 잡아오면 맛있게 요리해 줘야 하니 함께 가자고 한다. 대답이 별로 맘에 들지 않고 무인도 얘기는 재미없어져 선구자를 불러달라고 했다. 지긋이 눈을 감고 불러준다. 울 신랑은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
“꺄톡, 꺄톡 꺄톡~~~~ 카톡~”
신랑이 출근한 후 카톡에 들어가 본다.
누굴까?
누군지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카톡 소리는 우리 독서모임이었다. 모임 리더가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사망 내용을 올렸다. 인간의 욕망을 생각하게 했던 그의 책 『부의 미래』가 생각났다. 사망 자체도 안타깝고 저자가 살아 있을 때 책을 완독하지 못한 아쉬움에 서둘러 책을 읽어 내려갔다.
앨빈 토플러 책 내용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구나.
이처럼 자신이 예견한 이론을 분명하게 주장하는 저자를 존경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후 감동받으면 할 수 있는 한 실천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문학도 독자만이 아닌 직접 글을 쓰는 추세여서 지금 쓰고 있는 걸까.
지금껏 대체로 객관적, 합리적, 효율적으로 살았기에 저절로 고전적, 통계적 확률을 지향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철학, 심리학, 문학, 이러한 책들은 어찌하여 줄곧 읽었는가. 수리철학, 과학철학, 인문학, 교육학, 경제학이 뒤섞여 혼돈스러울 때 글을 쓰고 싶었다. 낙서장에 편하게 쓰기는 했지만 쓰기만 하면 일차적으로 복잡한 두뇌가 정리되어 좋았고, 좋은 글귀는 오래오래 머릿속에 남았으며 마음이 차분해져 감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렇게 무조건 쓰기만 해도 된다고 했던 K 선생님 지침이 반가웠다.
앞으로 개인적 확률을 사용할 것 같다.
이제 주관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Bayes처럼.
하지만 때로는 객관적이기도 한,
그런 사람으로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