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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Jun 01. 2021

규칙을 왜 안 지키는 걸까

강아지를 안고 피트니스를 나와서  지나가는 댄스 회원을 봤다.


‘아직 자리 명단 쓰는 시간이 아닌데 왜 벌써 돌아가지?’


 회원은 보통 강아지를 산책시킨 후에 피트니스에 데리고 온다. 그런  강아지와 함께 댄스 자리 명단 쓰는 시간을 대기하다가 이름을 적은  강아지를 집에 데려다 놓고, 다시 와서 댄스 수업에 참여한다. 운동 가방에 손을  집어넣고 휴대폰을 꺼내어 시계를 본다.


'7분 후면 자리 명단 쓰는 시간이구나.'


그 회원은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불안한 표정이다. 느낌이 온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므로, 이 느낌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는다. 그 회원은 회원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예를 들어 댄스 수업 때는) 대부분 괜찮다며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누군가를 극히 칭찬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피트니스에서 나온 게 아닐 수 있잖아.’

그냥 지나가던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동문을 통해 피트니스로 들어갔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네. 물병 줄만 서 있을 시간이구나.’

체온 측정기 앞에 섰다. 얼굴을 측정기 화면에 가까이 맞춘다. 35.1도다. 오늘은 다행히도 35도를 넘겼네. 34.7이나 34.5처럼 35도 이하가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면 우리 회원들이나 나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린 인간이 아닌가 봐. 저체온증 온도인데도 이렇게 살아있으니 말이야.”


체온을 측정하고 나서 회원권 인증을 한 후,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했다. 여직원에게 자리 명단 쓰는 종이를 달라고 얘기해 본다. 여직원은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평소에 나는 자리 명단을 쓰는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종이를 달라고 보채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이상하다고 여겨지리라. 여직원 눈빛이 흔들렸고 목소리도 떨렸다.


“아직 쓰는 시간이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며 종이를 주지 않았다. 그 회원을 믿던 내 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직원은 이 상황을 모면해 보려는 걸까, 근무를 제대로 하려는 걸까, 3분 후면 모든 정황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여직원이 주는 열쇠와 수건을 챙겨 자리 명단 줄에 내 물병을 세워 놓으니 1분 정도 남았다. 1분이니 그냥 안내 데스크 앞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자리 명단 적는 시간이 되자 여직원이 내 눈치를 보며 종이를 내밀었다.


“000”


그 회원 이름이 적혀 있다. 이건 안 되는 일이다. ‘7분’이어도 안 되는 일이다.


‘두 사람이서 일을 저질렀구나.’


시간 때문에 자리 때문에 댄스 수업에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 데, 그 때문에 그만둔 사람도 있는데 이런 행동을 하다니.


우리 피트니스는 운동 시작 30분 전부터 자리 명단에 이름을 쓸 기회를 준다. 물론 당연히 30분 전에 딱 맞추어 여직원이 자리 명단 종이를 꺼내 주어야 그때서야 이름을 쓸 수 있다. 나이 많은 회원들이나, 신입 회원들이나, 즉 무리하여 두 번째 줄 자리를 차지했거나, 자기 자리가 불확실하거나, 자리가 확실하거나 누구든 대부분 모두 1시간 전에 와서 30분을 기다렸다가 이름을 적는다. 그러고 나서 또 30분을 더 기다렸다가 수업에 들어간다. 이렇게 운동을 하고 있는 마당에 규칙을 무시해 버리는 이런 행동을 하다니. 1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이런 식으로 대기하다가 운동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금'이다. 매일 1시간이라는 시간은 더욱더 금쪽같다. 하지만 우리 회원들은 규칙을 지키기 위해 1시간가량을 일찍 와서 기다렸다가 운동을 한다. 제대로 사는 사람들의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날 본 그 회원의 반칙을 나는 모른 체했다. 미리 이름을 적도록 허용한 여직원에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누가 먼저 이름을 적었네, 아직 이름 쓰는 시간이 아니라더니?”


여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어디 숨을 구멍을 찾는 얼굴을 한 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너 감당할 수 있겠니? 모두(정부: 24명 입장, 피트니스 측: 수업 시작 30분 전부터 기입 허용, 회원들: 모두 수용함)가 함께 정한 규칙을 함부로 깨고서 어찌 책임지려는 거니?’라고 말할까, 하다가 말았다. 여직원이 피트니스를 그만둘 예정이어서 대충 근무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회원이 행하는 반칙을 처음 겪는 게 아니었기에. 그래도 반칙을 요구한 그 회원도 자신보다 무려 30살 이상 어린 여직원 직장을 그만두게 할 의도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차후엔 반영된다. 1차적 피해는 여직원이 입을 수밖에 없다. 별 것 아닌 일이지 않나,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회원 본인은 물론이고 여직원과 다른 모든 회원들에게 피해를 준 일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회원이 자신만 편하기 위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다시 말해 편법을 쓴 행동이 그것을 허용한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이 부여된다는 사실을. 그로 인해 허용한 사람이 더 큰 곤욕을 치른다.


댄스 회원들 모두에게 반기를 들고 이런 행동을 해 버린  회원 상황을 추측해 본다. 그저 수업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자신은 피트니스에서 1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시간을 편안하게 쓰고 싶었을 뿐이겠지. 단지 우리처럼 피트니스에서 1시간가량을 허비하기( 회원 입장에서) 싫었을 뿐일 거다.  자체로 나쁜 거지만 분명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톨스토이 말했듯이 사회  계급 각층에 오블로모프가 끼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자신의 삶에 그저 소극적이었을 뿐이지만, 여직원은  회원으로(타인으로) 인해 책임을 지고 창피당하게 된다.  회원도 언젠가는 마찬가지다.


여직원은 고사하고 모든 댄스 회원들 존재를 망각한 이런 행동을 나는 묻어 두고 지냈다. 그날만이겠지, 하고 내가   눈감아 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알았다. 이런우리 피트니스 소식통 회원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다른 회원들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졌거나 그날  외에 다른 목격자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 데스크가 기구 운동하는 곳과 연결되어 있고 자리 명단 쓰는 데스크에서 꺾어져 있는 곳에서 (안내데스크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그쪽에) 트레이너들이 앉아서 근무한다. 댄스 회원들 중에는 물통 줄을 세워 놓고 나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남은 시간을 기다리며) 기구운동을 하다가 자리 명단에 이름을 적는 회원들도 있다. 기구운동 쪽에선 데스크가  보인다. 반대로 데스크 쪽에선 기구 운동하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상엔 비밀이 없다더니, 내가 모른   눈은 속아 주었지만 여러 경로로 다른 회원들이 알고 있었다.


‘자리 명단을 쓰는 시작 시점에서부터 10여분 가량 동안(우리 선생님 수업은 인기가 많아서 마감까지 10분 정도) 줄 서서 쓰는 걸 못 봤는데 이름이 쓰여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다 알게 될 텐데, 왜 그런 일을 감행했을까.’


 일은 벌써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피트니스에선 보통 사건 당사자가 없을  왈가왈부하고 격분한다. 피트니스 회원들은 당사자가 있을  직접 말해서 알려 주는  정도 성의보여 주지 않는다. 그냥 뒤에서 말할 뿐이다. 이런 일로 말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당사자들이 수면 위에 오를 것이고, 회원들은  당사자들 앞에서  사건을 언급할 것이다.

여직원 상황은 더 복잡하구나. 여직원은 이 사건 외에도 대필 사건과 락카(locker) 문제에도 관여되어 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불어나서 셋이 되어 더 큰 뭉치가 되면 어차피 결국 당사자와 여직원 모두가 궁지에 몰린다.

(어찌 보면 여직원이 불쌍하다. 나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며 근무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 딸이나 아들처럼’ 생각했다면 이렇게 무리한 행동을 했으랴. 여직원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범위에서 부당한 것을 슬며시 또는 부당하지 않은 것처럼 둘러서 슬쩍 요구했으랴, 자신들이 잘못을 저지르면서 굳이 순진한 여직원까지 가담시켰으랴,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근무하게 했으랴, 싶다. 장소와 직업만 다를 뿐 젊은이들 모두, 즉 우리 모두의 자녀들이 근무하는 모습이고 앞으로 근무할 모습 중 단편이다. 어느 나라든 근무 환경에서 신입이 대부분 약자로써 근무를 시작한다. 우리 세대들은 이미 경험해 본 부당한 사회 현실이다. 먼저 살고 있는, 나이 든 어느 누구 한 사람만이라도 솔선수범하여 세상의 폐해를 점점 줄여야 한다.)


현재 피트니스에서 들리는 반칙은 세 가지 정도다. 내가 직접 목격한 두 사건인 시간 전에 먼저 이름을 쓴 사건과 대필, 그리고 탈의실 락카 소문이다. 시간 전에 자리 명단에 이름을 적은 것보다 더 큰 반칙은 대필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오지도 않았는데 (기다리고 있는 회원들의 1시간가량을 파괴해 버리고 모든 회원들을 무시한 채) 과감히 이름을 적었을뿐더러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같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둘이 아니라 셋이구나.’

‘여직원이 눈감아 줬기 때문에 마무리된 일이므로 여직원까지 포함하여 세 명이구나.’


작년 여름, 우리 피트니스에서는 댄스 자리싸움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 무렵에도 그 회원은 자신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회원에게 이름을 대신 써 달라고 부탁했었다. 부탁받은 회원은 위험을 느끼고 뭔가(싸움에 휘말릴까 봐, 욕을 들을까 봐, 머리가 뜯길까 봐 등) 두려워 나에게 대신 이름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나는 거절했다. 거절해도 다시 써 달라고 부탁하기에 알아차리길 바라며 덧붙여 말했다.


"언니가 대신 써 주고 모든 회원들을 감당하던가, 못 써 준다고 밝히던가 할 일 아닌가요?”


내게 그런 부탁을 하다니 어이없었다.


 ‘즐겁게 웃으며 피트니스를 다녀서일까.  피트니스에서는 인상을 쓰거나 매서운 눈매로 사람들을 대해야 한 댔지. 참, 어이없구나.’


   주장과  생각을 말하는 스타일인데 사리 분별력도 있고, 부탁받은 회원은  이력에 대해 알면서  그랬을까.

그날 일로 알게 되었다. 부탁받은 회원은 자신이   없는 ,  해서는  되는 일이란  감지했을 , 다시 말해 자신이 도저히   없는 일일 때는 남에게  일을 떠넘기는 사람이란 . 자신이   없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면 남에게 대신해 달라며 미룰  아니라 그냥  하면 된다.  의사(거절) 들은 부탁받은 회원은 부탁한  회원에게 전화해서 무언가 말하더니 그날은 자기 이름만 자리 명단에 기입했었다.  당시   회원은 댄스 수업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수준으로 가끔 들어왔었다. L피트니스  기준이라면 총무가 제명한다고 선포했을 수준으로 참여했었다.  회원은 출석률도 낮은 데다가 이름을 적은 집에 갔다가 수업 시간에  맞추어 다시 왔었다. 그래서일까,  많은 자리 사건과 싸움을 몰랐을  있다. 몰랐어도 규칙을 지키는  당연하지 않은가. 그날 이후로 부탁받은 회원과 부탁한 회원이 지난 불편한 사례가 있었지만 조금 괜찮아지려던 찰나에 다시  거리를 두게 되었다. 부탁한 회원은 사건을 일으킨 출발점이었고 부탁받은 회원은 자신이 언니인데도 자신을 이용하는 회원에게 단호하게 말해서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게다가 일의 위태로움을 감지하고서도 내게 대신 적어달라며, (자기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해서는  되는 부탁을 해서 나를 곤경에 빠트리려 했다. 부탁받은 회원 첫인상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는데 원래 그런 성격이었던 걸까. 잘못된 무리에 속해 있거나 잘못된 무리 옆에 있으면 똑바른 사람도  묶음 취급당할  있고 되려  오해받고  흘김 당할  있다더니


자리 명단에 이름을 대신  주는 대필 사건은 최근 줌바 댄스 수업에서도 벌어져 난리가 났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다이어트 댄스에서도 이름을 대신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계속 돌고 있다. 대필해 줘서 이름을 명단에 올린 회원들보다 먼저 피트니스에 도착했지만 자리가 없어서 돌아간 회원들이  피트니스에 도착했지만 정원 마감이어서 돌아갔던 피해 당사자 회원들이  사실을 알면 싸움이 예견된다. 정원 마감으로 수업에  들어왔던 회원들이 언젠간 흥분할 것이다. 그러면 대필 사건을 벌인 당사자들은 공개적으로 말폭탄을 맞게  것이다. (저녁 줌바 댄스는 우리 피트니스 GX 수업 중 가장 인기가 많다. 그래서일까, 자리때문에 벌써 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나는 댄스 회원들이 싸우는  싫다. 내게는 회원들 첫인상이 나이에 비해 예쁘고 젊은 사람들이다. 거기에다 밝고 즐겁게 댄스를 즐기는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다. 회원들 이미지가 이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싸웠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헐크, 괴물 수준이다. 예를 들면 예쁜 표정이던 얼굴이 험악해지고  눈이 찢어졌고 눈꼬리가 올라갔다고 한다. 얼굴빛도 붉어지고 노래 부르던 고운 입에서는 10원짜리 상욕도 나왔다고 한다. 귀여운 동작을 하던 손으로는 물병을 집어던지고 삿대질을 했다고 들었다. 회원들끼리 이렇게 대적하며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는  원치 않는다. 물론 안다. 제대로 올바르게 하기 위해 그런 경우도 있었다는 , 규칙을  지키게 하고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일 때도 있었다는 것을.


'피트니스 회원들은 화를 내며 심하게 말하지 않으면 그동안 규칙을 지키지 않았던 걸까.’


그래도 나는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막내 계열 나이이기에 그저 싸움이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실은 자리 명단 대필도 목격한 적이 있다. 나도 봤지만 다른 사람들도 같이 봤다. 대필하던 회원이 규칙을 모르고 적어줬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와 다른 회원들이 알려 준 적이 있다. 바로 뒤에 줄 서 있는 경우는 대신 이름을 적어줘도 되지만, 그 자리에 없는 경우엔 올 예정이어도 이름을 써 주지 않는 걸로 되어 있다고. 그리고 뒤에 줄 서 있어도 대부분 대신 써 주지 않는다고.

회원들 입에 흉흉하게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라도 모두 아까운 금(시간)을 써 가며 규칙을 지키고 있다. 다른 동네에서 오는 회원들은 댄스 시작 전에 이미 금을 2시간가량 써 가며 애쓰며 온다. 거리가 멀어서, 사정이 있어서,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댄스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에는 모두 그냥 하루 쉰다. 이런 마당에 이 회원들은 미리 이름을 기입하는 사건과 대필 사건을 벌였다.


.(이 글을 적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또 다른 대필 사건이 벌어졌다. 새로운 대필 당사자들을 더 있었다. 오 마이, 한 명도 아니고, 아니 두 명이구나, 서로 연락하여 얘기한 후에 적어주므로 한 팀이라고 해야 하나. 대필해 주고 있던 팀은 세 팀이 더 있었다. 후유, 우리 사회가 이렇다는 거잖아. 24명 중에서 다섯 팀이면 최소 10명이다. 그동안 최소 10명 정도가 사람들 눈을 속이고 몰래 대필하고 있었다니… 수업 듣는 회원 41.7퍼센트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니… 이도 내가 아는 팀만 10명일 뿐이지 더 있을 수도 있겠구나. 설마 댄스 쪽의 관행은 아니겠지. 푸우, 이런 사소한 곳에서마저도, 이권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런 순수한 곳에서도 비리가 만무하다니…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이는 나이 든 언니들이나 오래된 회원들이 눈감아 줬다는 걸 알 수 있다.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이토록 드물다니, 이럴 어찌하면 좋은가. 한국 사회를 어찌하면 좋은가.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부모나 자식들도 이런 변을 당하게 되는 이치인데 그것마저도 모르고 자신들은 저지르고 본인 부모나 아이들은 무사하리라 여긴 걸까… 참으로 애통한 현실이다.)



우리 댄스엔 잘못된 군기란 게 있다. (예외인 현명한 언니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그런 군기보다 좀더 심하다. 힘의 기준점은 나이(age)다. 내 나이는 막내 집단이다. 그래서 나와 동갑인 회원들이나이 많은 회원에게 기본을 지켜 달라고 말해도 그냥 넘겨 버리는 (이 시대를 살지 않는, 과거 속에 사는) 막무가내 회원들이 있다. 겉으로는 어찌 보면 그냥 지나간 듯 보여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누구든 쑥덕거림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드러내진 않아도) 보이지 않는 노여움이 따라다닌다.

여하튼 규칙을 어긴 회원들도 J피트니스 회원이고 다이어트 댄스팀에 속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체 이미지로 파급된다.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소문이 만연하다. 우리 피트니스와 다이어트 댄스 이미지를 위해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공동체를 위해, 선생님 명성을 위해, 그리고 함께 웃으며 즐겁게 운동하는 댄스팀을 위해, 기본을 지켜 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 더 상기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우리 사회에서 책임을 전가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적어 본다.(우리 댄스 경우)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이지.”(편법을 쓴 회원이나 반칙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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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던 사람은 뭐한 거야. 말리지 않고”(함께 운동하는 회원들과 데스크 여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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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관리자는 뭐 했어.”(댄스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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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팀장은 누구야.”(댄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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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책임자 나오라고 해.”(피트니스)


이처럼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모두 책임이 있건만, 한국 사회에선 불명예 몫을 흔히 선생님과 피트니스가 진다.




다음으로 탈의실 공동 락카 소문으로 가 본다. 두 달 전쯤이었나. 피트니스 방송에서 락카 열쇠를 반납하지 않고 들고 다니면서 한 락카를 고정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다며 돌아갈 때 열쇠를 반납해 달라고 안내했다. 락카마다 반납하고 가라는 빨간색 안내 스티커까지 붙이니 열쇠를 반납하지 않고 가는 회원들이 감소하여 락카 문제는 거의 해결된 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고정적으로 락카를 쓰는 회원들이 있다고 다른 회원들이 말했다. 우리 피트니스는 탈의실 락카를 지정으로 사용할 수 없다. 매일 직원에게서 번호를 부여받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다른 번호 락카를 찾아 헤맨다. 이런 와중에 누군가 지정 락카를 사용한다며 어떤 회원이 불만 가득한 소리를 외쳤다.


“아이 참, 누가 고정 락카를 쓰는 거야?”


또 어떤 회원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살짝 웃으며 말하여 일깨웠다.


“누가 락카를 지정으로 사용한다던데, 누구야? 누구? 그러면 안 되지.”


회원들 말이 맞다. 누구를 향해 던진 말인지는 몰라도, L피트니스에서 J피트니스로 바뀌면서 가장 큰 불만은 락카다. 지금 락카는 운동가방 하나마저도 겨우 들어갈 정도로 협소하다. 가방이 끼인 채로 힘주어 밀어 넣어야 하고, 중장 길이 정도 웃옷은 걸 수도 없다. 공간이 좁은 데다가 땀 냄새도 베여 있다. 락카 문을 여는 순간 시큼한 쉰내가 난다. 어떤 락카는 화장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동선도 꼬인다. 그래서 회원들은 매일 락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열쇠라서 불편하다'에서 시작하여 여러 얘기로 돌다가 '냄새가 심하다'로 귀결된다. 열쇠도 열쇠지만 냄새에 관한 얘기는 극히 공감한다. 나 같은 경우는 그날 부여받은 락카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면 다른 번호로 바꾸곤 한다. 바꿔도 냄새가 나는 락카일 때도 있어서 요즘은 그냥 집에서 입는 옷이나 버리려던 옷을 입고 피트니스에 간다. 매번 락카를 옮겨 사용하기 때문에 회원들 모두 저마다 불편한 점이 있다. 이런 실정인데 혼자서 몰래 지정 락카를 사용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나 같은 경우, 만약 운동 후에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일정이 있을 때는 집에 들러서 갈아입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마저 겪고 있다. 그래서 회원들이 지정 락카 얘기를 했을 때 아마 사용료를 지불하고 쓰고 있겠지, 생각했다. 돈을 지불하고 지정으로 쓸 수 있다면 나도 사용하려고 피트니스에 문의했다. 어떤 여직원이 전화받았는지 몰라도 그런 경우는 없고 지정 락카도 없다고 대답했다. 대답은 이러했지만 어불성설이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여기서도 여직원이 가담해 있다. 분명히 여직원이 락카 열쇠를 줬을 테니 말이다.


'이 여직원을 어찌해야 하나.'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분명하게 드러난 두 사건(시간 전에 자리 명단에 이름을 적은 사건과 자리 명단 대필 사건)은 더 불거지기 전에 총무와 내가 나섰다. 타이밍을 놓쳐 댐이(말폭탄 싸움이) 터지기 전에 나와 총무가 여직원에게 언급했다. 회원들이 스스로 규칙을 지키지 못해 시작된 일이지만,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없도록 자리 명단을 미리 내어 주거나 대필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 말라고. 그 여직원이 실천에 옮긴다면 우선 급한 불은 껐다고 볼 수 있다. 그날 총무가 명확하게 인지하고 여직원에게 언급하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만 괜찮으면 모른 척한다. 나마저도 처음엔 모른 척하지 않았던가.”


참 리더의 모습을 보여 준 총무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권력을 쥔 자는 옳게 행해도 권력자 옆에 있는 이가 권력자 몰래 권력자 행세를 하지 않던가. 맘대로 남의 힘을 남용하지 않던가. 그러면 주변인을 관리하지 못한 권력자를 추궁하게 된다. 모두 지키기로 약속한 규칙이다. 그러면서 계속 반칙을 저지른다면 자신들이 인정한 총무와 자기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총무의 수고로움에 먹칠하지 않기를 바란다.


'두 사건에 이어 락카 소문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선례로는 세 사건 모두 싸움이 날 수 있다. 먼저 두 사건은 여직원에게 언급함으로써 여직원에게 (자신의 의지로) 잘 처신해 주길 요구하여 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을 어느 정도 미연에 방지했다. 그러나 락카 소문은? 아직이다. 지금은 락카 소문 당사자가 누군지 모른다. 누군지 아는 회원들이 있지만 물어보고 싶지 않다. 내가 목격한 두 사건도 우연히 봤을 뿐이지 굳이 보려고 애썼던 게 아니다.


이런… 변하기 쉬운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오 마이, 내 맘이 변덕을 부리네. (시간이 흐르면 누군지 저절로 알게 되겠지만) 이 순간 갑자기 누군지 궁금하다.


혼자만 잘한다고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게 아니다. 무관심한 부모가 자식 고민을 몰라 주어 아이들 중2병이 더 심해지고 오래가듯(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듯), 자신은 괜찮다고 주변을 모른 척하면 아무 일 없던 자신마저도 슬퍼진다. 알고 보면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잠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모두 함께 살아간다. 어차피 함께 같이인 것이다. 주변을 챙기지 않고 홀로 자신만 나아간다면 주변은 물론이고 홀로 괜찮던 마음도 결국엔 평화롭지 못하다.


나이가 들면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무관심해진다. 만사를 대충 그냥 넘겨 버리는 경향도 있다. 자신의 불이익에만 노발대발하고 타인은 불편하든 말든, 남 속이 타든 말든, 그냥 무감각하다면 그런 사람은 할머니, 할아버지 계열에 속한 사람이다.  반면 나이가 들어도 (60대는 흔히 볼 수 있고 무려 7, 80대여도) 규칙을 잘 지키고 잘못을 알려 주며 주변도 챙기고 사람들 간에 의리 있게 지내는, 즉 젊게 사시는 분들도 있다. 우리 피트니스에서는 젊게 사시는 나이 든 회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늘의 별따기다. 운동을 하셔서 몸은 젊지만, 생각은 그렇지 않다.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 실제 나이보다 더 늙게 말하시고 행동도 늙었다. 피트니스에 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또는 순간이동을 해서 과거로 간 기분이다. 그래서 처음엔 신기했다.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모든 게 공개되는 세상인데 옛날처럼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아직도 고루한 판단기준을 가진 회원들이 있다. 급변하는 사회여서 실시간으로 따라갈 순 없어도, 나이 든 회원들도 점점 더 공정하게 바뀌고 있는 세상 질서에 조금이라도 동참해야 한다.

예전과 달리, 이젠 젊은 사람들이 늙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세상이라더니. 그래, 다행히도 우리 피트니스에도 막내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 댄스에선 막내에 해당하는 40대가 겨우 셋이구나.’

그래도 아직은 타인과 자신에게 관심 있는 막내들이 있지 않은가. 비록 막내 집단이 발언권은 없어도 정의로운 눈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다음 운동 때부터는 누가 고정적으로 락카를 사용하는지 둘러봐야 하나.'


요즘 추리 드라마가 인기 있다던데, 푸훗 나도 피트니스에서 탐정 놀이를 해 볼까나.

(2021.5.29)


(사진출처 : 심리상담연구소 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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