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인 나는 예전에 써 둔 글만 모아서 결과물로 제출하면 이 (책 쓰기) 프로그램의 허실이 드러나는 거라 여겨 애써 쓴 글 몇 편을 더 넣었다. 다른 주제로 써 뒀던 글도 두어 편 넣었다. 그러다 보니 연결성이 깨졌다. 글의 분위기도 달랐다. 행복했던 글이었고 글쓰기를 예찬하던 글이었는데 새로 쓴 한 편은 글쓰기의 부정적인 면을 다루며 투덜거리는 내용이었고 다른 한 편은 맥락을 알 수 없는 정처 없는 글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먼저 고마움을 표시하면 안 된다는 말도 실감했다. 어쩔 수 없었다. 책 형식을 모두 맞추다 보니 책 속에 책들(참고문헌) 다음에 감사의 글을 적어 냈다. 감사의 글을 적을 땐 당연히 가르치는 분이 섬세하게 검토해 주실 줄 알고 그렇게 언급했다. 이제 달라진 마당에 그 글은 버린다. 같이 공부하고 있는 분들에 대한 마음은 아쉽지만 가르치는 분의 가식을 보았기 때문에 감사의 글은 버린다.
‘그만둔 원고는 더 다듬을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시작한 건 끝을 보는 내가 그만두고 싶었던 사항들을 적으며 그만둔다는 단어를 이제 날려 버린다.
시간 때우는 강의 듣는 걸 그만두고 싶었고, 강의 요약을 그만두고 싶었고, 가르치는 분이 현학적이고 어렵다며 읽지 않는 내 원고를 그만두고 싶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만둘 수 없으니 해 내겠다고 마음먹은지 오래다.
세 번째는 진행하던 내 원고를 (앞부분 일부분만 검토해 줘서) 그만두겠다고 한 게 뭐가 문제가 되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난 초고 발표 때도 두 가지 원고를 제시했었다. 주최 측이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가르치는 분도 알고 있으면서 알려 주지 않은) 변경 사항 때문에 몇 개월간 기획했던 원고를 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검토해 주지 않는 원고를 그만두고 내가 그분께 검토받을 필요 없는 (초고 발표 때 제시했던 다른 원고) 추억 이야기나 이슈 페이퍼 등으로 바꾸겠다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아무래도 그분의 자격지심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와중에 이 프로그램에서 돌연 임원 세 명을 뽑았다. 나는 내가 누군가의 글을 피드백할 글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조용히 강의를 들었다. 폰으로 줌 강의를 듣다 보니 매번 강의 요약을 할 때마다 폰을 가까이 당겨 확대하거나 공유 화면을 보면서 메모하며 들었다. 그럴 때마다 가상 화면이나 천장만 보였다고 한다. 강의 요약 때문에 나는 가르치는 분 얼굴과 공유 화면만 줄곧 보고서 강의를 들어서 누가 어떤 화면으로 강의를 듣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강의를 들었지만 예기지 않게 3주 전 뽑은 임원에 내가 속하게 되어 이 프로그램 실무자들을 만나러 갔었다. 임원끼리 처음 약속했을 때 기억은 일요일 아침 10시에 우리끼리 먼저 만나서 한 시간 가량 얘기를 정리한 후에 도서관 실무자를 만나는 거였다. 2주 전에 임원끼리 만난 첫 모임에서는 내가 제일 일찍 도착했지만 실무자를 만나러 가는 날엔 초행길인데 내비가 중간에 멈춰서 헤매느라 10분 늦게 도착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도서관은 외곽에 있었고 우리 집에서 멀기도 했다. 임원 톡에 사정 얘기를 남기고 도서관에 도착해 톡을 다시 봤다. 도서관 사무실 2층으로 바로 올라오라는 내용이 있었다. 으응? 뭐지? 아마도 2주 전 모임 때 도서관 방문 관련 얘기를 조금이나마 나누어서 일정이 바뀌었나 보다 하고 바로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에는 도서관 주무관과 팀장이 벽 쪽에 앉아 있었고 그 건너편에 우리 임원진 두 사람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임원진 중 회장님이 하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같이 강의를 듣는 분들의 근태(출결) 관리와 그에 따른 처분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결석을 많이 한 사람들과 과제를 내지 않은 사람들도 과정을 완수한 걸로 치고 수료한다는 거에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결석을 많이 해도 수료할 수 있고, 과제를 안 내도 수료할 수 있는 줄 몰랐다. 처음에 안내받은 내용은 출석과 과제도 수료 필수 사항이었기에 당연히 수료 조건에 적용되는 줄 알았다. 주무관은 가르치는 분과 많은 걸 소통하다 보니 그런 부분을 무 자르듯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내 옆에 앉은 부회장님도 이 부분에 대해 강경하게 추가 설명을 더 했다. 듣고 보니 결석 횟수가 아웃 대상자이고 과제도 내지 않은 사람들이 현재 계속 강의를 듣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강의만 듣는 거지 수료는 할 수 없는 거겠지요, 했다. 그런데 도서관 측에서는 가르치는 분의 결정하에 수료해 주는 거라는 식으로 자신들 입장을 회피했다. 오 마이 정해진 수료 조건이 아닌 개인적 사견으로 수료가 결정된다고? 대부분 개인 사정이 있지만 스케줄을 조정해서 결석하지 않고 듣고 있는데, 그럼 그런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애써 힘들여 결석하지 않으려 할 필요가 없었다니… 실은 그동안 납득가지 않는 경우가 여럿 있었지만 젊은 사람이니 또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가르치는 분이 수료 조건을 확인한 후에 오케이 한 거겠지, 하고 넘겼다. 이런 어쩐지 엉망진창이더라. 이 프로그램이 왜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이런 부당한 기류가 흐르고 있어서였구나. 세 영역의 각 담당자들은 이를 어찌 책임지려고 이러시나 모르겠다. 이제부터 저희도 결석하고 불성실해도 수료는 되겠군요, 하고 우리 임원은 다음 사안으로 넘어갔다. (코로나19로 인한) 예산 동결로 모두 똑같은 형식의 결과물을 내라는 건에 관한 거였다. (작년에는 페이지수 제한도 없었고 컬러 제한도 없어서 200쪽 이상을 올 컬러로 만든 선배 기수도 있었다.) 부회장님이 판형이나 개인적 심미성 등을 거론하며 얘기를 참 잘하셨다. 이 부분은 나도 하려던 얘기였는데 먼저 말해 주니 속이 시원했다. 다른 도서관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도서관 팀장은 그래도 실무 주무관처럼 외골수 일처리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틀이 지난 후 도서관에서 메일이 왔다. 예산 확충은 없다고. 도서관 팀장은 그저 우리와 하던 얘기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서 다른 도서관 예산을 알아보겠다고 말만 한 꼴이다. 사람의 실체는 말보다 행동으로 알 수 있다. 주무관이나 팀장이나 두 사람은 별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 임원은 도서관에서 나와 건너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더 나누었다. 아, 이 프로그램은 출결도 과제도 상관없이 아무나 수료 가능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두 임원진과 나는 출석에다, 과제에다, 나는 원고의 성실성까지. 열심히 하는 우리가 가르치는 분과 수료 조건을 어긴 수강생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눈에 가시였겠구나. 대충 해서 대충 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양성한 사람들을 학교나 기관에 책 쓰기 지도자로 파견하다니, 이렇게 허술한 프로그램은 처음이라서 내가 그리 중단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 한 달 반, 다섯 번 남은 일정이니 나는 하던 대로 열심히 하련다. 그래, 어느 교수님이 조직에는 네 부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건 조직도 아니고 조직과는 다르지만 이렇게라도 이해해 줘야 하는 이 프로그램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