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다른 나

내가 아닌 “다른 화자”가 되어 긴 한 문장으로

by novel self

“결이 다른 나”와 익숙해지는 실습을 하기로 한다.


아파트 방재실에 근무하는 50대 중반 가량 남자 직원의 입장이 되어 근무 상황을 생각하며 긴 한 문장으로 묘사해 보았다.

밤샘 근무에 이어 오전 근무까지 하니 많이 피곤하고 졸리어 의자에 기대어 잠시 쉬고 있는데, “띠리리링~ 띠리리링.” 반갑지 않은 소리, 역시나 입주민이 욕실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올라와서 봐 달라고 요청하는 벨소리여서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가’ 한숨이 절로 나오고 짜증까지 나서 전화를 끊어 버리고 싶지만, 주말에는 한 사람만 근무하는 걸 모르고 전화했으리라 여겨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내 속내를 들키지 않도록 천천히 “주말이어서 혼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을 비울 수 없어 내일 올라가서 봐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입주민은 내 말을 내가 말한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들이 외출해야 해서 씻어야 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난감하다며 혹시 잠시만 올라와서 봐줄 수 없냐고 다시 묻기에, 작년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절로 나서 점퍼 주머니를 휘젓다가 전화로라도 근무를 제대로 해야지 싶어 지금은 올라갈 수 없으니 샤워기 수전의 뜨거운 물 쪽을 우선 만져 보라고 말하니 입주민이 얼른 욕실에 들어가서 윙윙거리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고 알려 주어 그럴 경우는 우리가 수리할 수 없고 샤워기 수전을 교체해야 한다고 알려 주니, 직접 보지 않고 어떻게 교체해야 하는 걸 알 수 있냐며 그것이 정확한 원인인지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내가 전화로 추측하여 말하는 건 믿을 수 없다는 눈치여서 기분은 상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으니 다시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여 말해도 입주민은 주말에도 주중처럼 방재실 직원이 올라와서 봐 줬으면 좋겠다고 혹시라도 올라올 수 있게 되면 와 달라고 하며 전화를 끊어 간신히 마무리했지만, 바로 가서 봐 주고 싶은데 혼자 있는 사무실을 비워 두고 갈 수 없어 난처한 걸 몰라주어 참 속상하지만 입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무엇이든 고장 났을 때 우리가 올라가서 고쳐 주면 바로 해결되는 동시에 입주민은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아서 좋고 우리는 역할을 잘 완수하여 근무하는 보람이 있어서 좋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인데, 만약 우리가 고쳐 줄 수 없는 거면 이 아파트는 무얼 교체하든 20만 원 전후의 비용이 드니 입주민들이 우리 도움을 절실히 요하는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하여 나 스스로 내 기분을 다독일 수 있구나.


(2020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