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피타이저
만남이 없어 이별도 없는 세상
현명하다면 현명할 테고, 비겁하다면 비겁할 테지.
만약에,
유치하게 예를 들어 본다.
예외를 배제하여 모든 젊은이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면,
더 유치하게 접근해 봐야겠다.
50명의 남녀가 각각 1번씩만 만나서 사귀다가 헤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딱 한 번씩만이라도 만남과 이별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만 살짝 예외를 더 적용하면, 이들은 딱 한 번만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딱 한 번만에 사랑이란 걸 못 해 볼 수도 있다.
성비가 1:1인 100명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50명이 각각 한 번씩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고 했던 가정을 바꿔 본다.
50명 여자 중에서 47명 여자들은 만남을 가지지 않는다고 바꾼다.
만남에 대한 자세가 ‘남자는 모두 똑같고 여자는 모두 다르다.’고 해 보자.
그래서, 50명 여자 중에서 47명 여자들은 만남을 가지지 않고, 50명 남자들은 모두 만남을 가진다고 가정하자.
만남을 가지지 않는 47명 여자들은 물론 나름 바쁘다. 일이든 공부든 취미든 봉사든 스포츠든 여행이든 모임이든 뭐든 나름 모두모두, 다르게 바쁘다.
바쁜 목록에 남자만 없을 뿐이다.
연애만 안 할 뿐이다. 남자만 만나지 않을 뿐이다.
50명 남자들은 모두 빠짐없이 만남을 가지며 연애를 한다고 이미 설정한 바 있다.
이 50명의 남자를, 3명 여자들이 번갈아 가며 만나던지 동시에 만나던지 정해진 룰은 없다고 하자. 3명 여자들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50명 남자들을 한 번씩은 만나도록 설정한다.
어쨌든 3명의 여자들은 50명 남자들을 꼭 한 번씩은 만나줘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 어떤 사회가 떠오르는가.
이런 가정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극소수가 대다수를, 대다수가 극소수를 만난다면?
현실을 둘러보면, 주변을 파악해 보면 누군가는 ‘아차’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이나 현실에 관심이 없으신 분은 ‘설마’라고 할 수도 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여기서도 예외를 배제하여 3명의 여자들이 50명의 남자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명의 여자가 첫 만남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버리기라도 하면, 2명의 여자가 49명 남자들을 모두 만나야 한다.
만약 2명의 여자가 첫 만남에서 두 남자의 사랑을 쟁취해 버리면, 1명의 여자가 48명 남자들 모두를 만나야 한다.
3명의 여자 모두가 첫 만남에서 한 번만에 사랑에 빠져 버리면, 47명 남자들은 모조리 만남의 기회가 없어진다.
47명 남자들은 만남도 이별도 없게 된다.
만약에 남자들을 만나기로 했던 3명의 여자들이 에저녁에 변심하여, 남자들을 전혀 만나지 않으면 50명 남자들은 아무도 만남을 전혀 가질 수 없다.
결국은 50명 여자들도 모두 만남이 없는 거다.
모두 만남도 이별도 없게 된다.
무(無)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무’라는 의미는 복잡하다.
단순하지 않다.
그래도, ‘무’라하면 나는 0(제로, 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사진 : 브라마굽타가 근무했던 인도 우자인 지역의 천문대, 피터 벤틀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