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말한다. “000이 누구예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나 글은 바로 자신에게(=자신을 위해) 하는 말이거나 글이기도 하다.
잘하고 있는 건 계속 잘하기 위해 자신 어깨를 스스로 다독이는 거고, 잘하지 못하고 있는 건 고쳐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다 행동까지 잘하도록 스스로 혼내는(=깨우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없기를 바라며 살았다.
그렇게 살았구나.
오늘의 진리가 내일의 가설이 될지라도 나는 그렇게 살았구나.
내게는 가장 예쁘고 가장 말이 잘 통하던 딸이 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잠시일 뿐이라고, 잠시일 거라고 세뇌한다.
어려운 사이가 되는 건 싫으니까. 그건 원치 않기에.
이 어려운 사이란, 서로 말하는 걸 줄이고 공감도도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내 말에 마냥 맞장구치던 딸이 내 말을 오해하기 시작한 후로. 사춘기?
어떻게 말해도 내 진심을 몰라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각종 표현으로 여러 모로 시도해 봐도 시큰둥하다. 명언이나 속담으로 전달해 보면 조금 반응하고 나선 어느새 또 소용없다.
지인 언니들 말을 실천해 보려 한다. 이미 부분적으로 실천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제 딸은 밥 외에는 모두 참견이라 여기는 사춘기? 이기에.
한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밥도 챙겨주지 말까 했지만, ‘사랑은 변하지 않는 거기에,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기에 밥만이라도 챙기며 널 사랑하겠어.’라고 다짐한다, 사랑은 주는 거니까.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고, 그 어떤 시도, 노래도, 글도 나를 대변할 상황이 없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5월부터 만난 브런치 작가님들 글에서 위로받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살며 글을 쓰시는 엄지님, 아빠 같은 글을 쓰시는 봄날님, 저력 있는 글을 쓰시는 앤셔어리님, 힘나는 글과 말로 응원해 주시는 알라딘님, 솔직 담백한 글을 쓰시는 꼬마마녀님, 스마트하면서 유쾌한 글도 쓰시는 이따가님, 따뜻한 그림과 그림이 공감 가는 고래별님, 글과 편집까지도 예술이신 더슬로우님, 재밌는 글로 웃게 하시는 김피플님,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시는 추세경님, 자신감 있지만 매너있게 글을 쓰시는 김마이너님, 안아주고 싶은 글을 쓰시는 이엔에프제이님, 명화를 한 편의 책처럼 잘 엮어 내시는 아트소믈리에 지니님, 함축의 미를 잘 발휘하시는 참새수다님, 다재다능하고 도전적인 글이 끌리는 교관님, 간단명료하게 잘 전달되는 글을 쓰시는 최진우님, 슬며시 교훈 주는 글을 쓰시는 이드id님, 두 줄의 극치로 감동을 주시는 sangillness님, 내적 표현을 잘 하시는 진해 여자님, 특정 소재로 시각을 넓혀주시는 나도그래님, 어떤 이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시는 항상샬롬님, 메시지를 잘 알 수 있는 글을 쓰시는 봉봉주세용님, 감성과 이성을 아우르는 토파즈님, 평온한 글과 사진을 선사하시는 Chong Sook Lee님, 폭넓게 패기있는 글을 쓰시는 가비님, 아내와 함께 하는 글을 쓰시는 Pitts님, 야생화를 글에 잘 녹여내시는 춤추는나뭇가지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쓰시는 글봄님, 쉽고 이해 잘되는 영문법을 쓰시는 이도영님, 용서와 이해의 글이 기억나는 싼타페님, 에세이를 쓰고 싶게 하시는 권미림님, 생각을 솔직하게 묘사하시는 엄혜령의 캘리그라피님, 세상을 알게 해 주는 글을 쓰시는 지안님, 편견을 없애주는 글을 쓰시는 최용윤님, 흔히 경험하지 못할 여행기를 쓰시는 주기환님, 명확하고 유익한 건강 상식을 알려 주시는 서범구님, 편안하고 담백한 글을 쓰시는 정용규님, 생활 속 이야기를 공감가게 쓰시는 김종섭님, 공룡 인터뷰 글이 인상적이었던 유신 케이님, 내게 친숙한 글을 쓰시는 노박사님 등
모두 글을 잘 쓰신다.
내가 받은 주관적인 느낌은 그들의(=오늘의) 단편이다. 그들은 주옥같은 글로 매번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님들 글은 나를 대변하고, 내 마음을 위로한다.
마음, 표현도 번역도 어려운 우리말이다. 마음은 몸의 부위인데(뇌, 심장, 흉부.....), 보이지 않는 의미(영혼, 마음, 씀, 정신......)에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이분 논리가 문제의 근원. 마음 심(心)자는 사람의 염통 모양을 본뜬 것이지만 실제 마음을 관장하는 기관은 뇌이고, 의미는 가슴(heart, 심장)으로 통용된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_정희진
마음? 감정과 머리?
'내가 나를 안다'와 '타인이 나를 안다'는 것...
딸이 나를 아는 것과 내가 딸을 아는 것...
...
딸에게 내가 브런치에 발행한 글로 내 마음을 보여 주니, 다른 작가들이 남긴 댓글에 관심을 뒀다.
딸이 말한다.
“오, 이 댓글 누구에요?, 000이 누구에요? 이 댓글처럼 부모는 지켜 봐 줄 뿐이에요.”
‘그래, 그러자... 지켜 봐 주자.’
‘기다림에,,, 아주 긴 해로 느껴지겠만...’
기다리기 위해 뭔가 찾는다, 딸과 내가 통할 무언가를 찾는다.
’딸과 나는 노래에선 통했구나.’
딸에게 가서 요즘 듣는 노래를 들려달라고 한다.
딸이 웃는다, 살포시.
딸이 선곡한 곡은
조용필의 “걷고 싶다.”
케이윌의 “민물 장어의 꿈”
나도 두 곡을 들려 준다.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우리가 함께 듣던,
자전거를 탄 풍경 노래도 함께 듣자고 한다.
엄마도 “그렇게 너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