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해방 프로젝트
*나눔명조체는 책의 내용, 그 이외는 작가의 생각입니다.
1부의 핵심 키워드는 #쾌락과고통 #도파민보상경로 #자본주의새시대 인 것 같다.
작가는 풍요롭고 도파민을 유발하는 자극들이 판치는 세상(도파민을 뽑아내기 위해 모두가 발악하는 세상)속에서 왜 우리는 점점 불행해지는지 '쾌락과 고통의 저울'로 설명한다.
쾌락, 고통 그리고 중독과 연관된 도파민 보상경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쾌락과 고통의 저울'에 대해 소개한다.
'쾌락과 고통의 저울' 이론이 과학적 접근이지만 비약이 있을수도 있다는 작가의 말이 있었다. 하지만 쾌락과 고통의 저울질 속에서 올해 무척이나 고생했던 나에게는 그 저울 이론이 크게 와닿았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점점 더 핸드폰과 SNS를 내려놓기 어렵고 끝 모를 자아실현을 위해 쾌락과 미래의 큰 쾌락만 바라보게 되는 우리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아래는 내용과 내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1부 쾌락과 고통의 이중주
1장 자위 기계를 만드는 남자
누구나 이중생활을 한다
탐닉, 도파민 그리고 자본주의
인터넷: 디지털 약물 주사기
→ 모든 인간이 가진 특성 그리고 자본주의 특성
- 인간 특성 : 쾌락의 역치를 계속해서 부수려함
- 자본주의 특성 : 인간 특성에 기름 붓기
자본주의는 평화롭고 편리하다. 하지만 모든 자본주의 산업들의 목표는 인간의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돈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은 그거 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쾌락의 역치 상승을 조절 해낼 수 없다. 진화 과정에서 그럴 능력이 발달할 필요가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특성에 기름을 붓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쾌락의 불을 끌 수 있는 작은 소화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의식’이다.
*인간의 특성을 정확히 활용하는 자본주의 이기에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기 쉽다. 요즘처럼 도파민 노예를 생산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2장 행복에 중독된 사람들
고통은 나쁜 것일까
고통이 사라지면 행복이 찾아올까
행복과 고통의 역설
→ ‘개인의 행복’이 ‘좋은 인생’의 다양한 정의들을 밀어내는 사회
→ 어린이가 심리적으로 연약하다고 여기는 것은 철저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새로운 쾌락주의 시대를 조장하게 됨)
→ 요즘 사람들은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처방 증가 통계가 이를 뒷받침함)
→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Revisited] 중 “메스 커뮤니케이션 산업은 대부분 옳고 그름과 무관한데 비현실과 관련이 있을 만큼 완전히 무관하고… 이 거대한 산업의 발전은 기분 전환에 관한 인간의 무한에 가까운 욕구를 고려하지 못했다.”
→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이기도 하다.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든다.
→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뭐든지 하려 든다.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한다.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약물을 복용,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보고,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고)
→ 우리는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할까?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그런 비참함을 피하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3장 뇌는 쾌락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도파민이 말씀하시되
쾌락과 고통은 행동이다
뇌과학이 밝혀낸 쾌락-고통 저울
중독은 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저울은 비유일 뿐
→ 도파민 보상 경로 : 복측피개영역 - 측좌핵, 전두엽피질
→ 보상 경로 상 도파민이 더 많이, 빠르게 분비될수록 약물의 중독성이 더 크다고 평가됨.
→ 쾌락과 고통은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된다. 쾌락과 고통의 저울 위에서 자기조정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자기조정메커니즘은 반사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John Corbit의 opponent-process theory)
→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진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이를 neuroadaptation이라고 부른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tolerance라고 한다.
→ Nora Volkow, 뇌가 도파민에 오랫동안 과하게 기댈 경우 뇌가 도파민 부족 상태에 이른다. 도파민 수용체의 감소
→ 쾌락 자체를 좇는 쾌락주의가 그 어떤 쾌락도 느끼지 못하는 쾌락불감증 (anhedonia)를 일으킴.
→ 고통 쪽으로 기울어진 쾌락-고통 저울은 앞서 상당한 절제 기간을 거친 사람들도 다시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평범한 기분을 느끼려고 해도 중독 대상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George Koob “불쾌감에 따른 재발 dysphoria driven relapse”
→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린다. 우리는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친구들과 식사 즐기기 등 일상의 단순한 보상에서 다시 쾌락을 맛볼 수 있다.
→ 도파민이 증가해서 동기가 유발되는가? 동기 유발되어 도파민이 증가하는 것인가? 둘다인가?
→ 기대한 보상을 얻으면 도파민은 늘어나고, 얻지 못하면 훨씬 줄어든다.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우리 뇌는 중독 대상을 찾으려는 행동을 유도한다.
→ 도박 : 보상 발생의 예측 불가능성은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에 크게 영향을 준다. 이는 SNS에서 다른 이들의 반응이 너무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래서 ‘좋아요’나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기 불확실하다는 점이 ‘좋아요’ 자체만큼 우리를 흥분시킨다. (카카오톡을 한 번씩 열어보고, 네이버를 열어보고, 가게 리뷰를 찾아보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다. 불확실성!)
→ 경험 의존 가소성 experience-dependent plasticity. 코카린 같은 중독성 물질이 뇌를 영원히 변화시킬 수 있음. (해당 논문 찾아보기)
→ 메스암페타민 같은 흥분제를 투여 받으면, 자극적인 환경에 노출되어도 시냅스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학습능력을 제한했음을 암시한다. (해당 논문 찾아보기)
→ 중독에 따른 뇌의 일부 변화는 돌이킬 수 없지만 손상된 영역을 새로운 신경망을 만듦으로써 우회할 수 있음 (Edie Sullivan)
→ 광유전학을 활용해 코카인에 의한 시냅스 변화를 다시 변화시킴 (Vincent Pascoli)
→ 저울은 단지 비유일 뿐, 뇌에서 벌어지는 쾌락 고통의 줄다리기는 저울의 원리보다 훨씬 복잡하다.
→ 고통에 대한 감각과 지각은 그 고통에 부여하는 의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쾌락이 없다면 우리는 먹거나, 마시거나, 번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이 없으면 상처나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반복적인 쾌락으로 우리의 신경 설정값이 높아지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끝없이 갈등할 것이다.
→ 지나치게 풍족한 새로운 생태계에서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한 질문,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21세기 인간으로서 어떠한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가져야 하는지? 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