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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미 May 11. 2022

ADHD 콘서타 복용 7일차

콘서타 18mg (17mg x)

복용 일시 : 오후 12시 


책을 읽거나 집안일을 할 때는 콘서타 18mg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집단상담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에는 조금 도움이 된 것 같다. 대체로 대화중에 떠오르는 나의 생각에 집착하느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가 항상 어려웠는데 오늘은 생각 자체가 많이 나지는 않아서 괜찮았던 것 같다. (But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 되새기거나 다음에 할 말을 미리 준비하느라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는건 변함이 없다.)


오늘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날이었고 오늘 주치의 선생님과 30분 정도 오래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약을 얼마나 복용했는지, 체감하는 효과는 있었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 등 약물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한 결과 약을 콘서타 27mg로 증량해보기로 했다. 36mg까지 먹어보고 별 효과가 없다면 난 약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기질들을 조금씩 조금씩 용기내어 인정하고 그러한 기질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 사회속에서 불편함을 만들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개선하자라고 생각했다.


약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도 내가 요즘 빠져있는 생각들 중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회의감, 원망들을 이야기했고 또 나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1.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회의와 원망


최근 자존감이 정말 바닥을 치면서 나는 이 사회를 살아나갈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러면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계속해서 찾았던 것 같다. 내 기질은 이 사회에서 열악하니깐 나는 그냥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이것을 받아들이고 평안하게 살래 혹은 아 이 사회가 능력주의를 추구하고 능력주의는 야만적이니깐 난 노력하기 보다 능력주의가 아닌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살아갈래 와 같이 말이다.


하지만 상담선생님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자기객관화가 조금 되었던 것 같다. 능력주의가 야만적인 것은 맞지만 능력주의로 부터 너가 피해받은 것은 뭐고 그래서 너가 벗어나려고 행동한 것은 뭐야라는 질문에 나는 사실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내가 받은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아 내가 나에게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사실이야 혹은 사실이라고 얘기해주는 정보들만 편향적으로 받아들여 계속해서 현실감각을 왜곡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능력주의에 대해 비판할 수 있으려면 어떤 것이 불편했고 이것을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좀 찾아보고 바꾸기 보다 탈피하고 싶다면 능력주의가 아닌 사회는 어디이며 내가 그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생각해보고 다른 사회로 나아가고 싶다면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을 좀 알게 된 것 같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는 나에게 너무 애쓸 필요없다는 말이 나에게 필요한 듯 하지만, 나는 몸과 머리에 힘을 뺀채 현실적으로 무던하게 생각을 정리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애쓰는 것처럼 아직은 느껴진다. 



2. 진로에 대한 이야기


오랫 동안 가져왔던 노화를 연구하는 생명과학자가 되기로 한 나의 꿈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으로 변화했다. 성인이 된 이후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낸 뒤 받았던 심리적 도움들을 생각했을 때 나도 이렇게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면 너무 뿌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업과 같이 느껴졌고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눈길이 갔다. 


신경과학자가 되어 정신질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지식이나 기술들을 발견하거나 개발하는 꿈을 잠깐 가졌지만 그 길이 너무 먼길 같고 그것만 바라보고 내가 연구자로서의 외롭고 고된 삶을 겪어낼 수 없을거란 생각에 나는 전공을 살리기 보다는 당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상담심리사 혹은 임상심리사가 되고 싶었다.


지금 당장 전공은 생명과학이고 임상심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심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할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진로를 변경하기에는 그동안 생명과학에 투자했던 나름의 시간들이 있고 임상심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 갈림길에서 추상적인 고민만 머릿속으로 늘여놓고 있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주치의 선생님께 드렸고, 그냥 심리상담사가 하고 싶은거면 하지말라는 단호한 대답을 받았다. 주치의 선생님과 라포가 형성된 상태이고 나 스스로도 선생님은 내 편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이 단호한 대답이 공격적으로 느껴지거나 반감이 들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트렌드는 신경과학을 바탕으로한 연구이며, 한국에서의 심리상담은 거품이 많다고 하셨다. 선생님 말을 들으면서 현실을 조금 자각하게 되면서 내가 진심으로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었기 보다는 그저 내 감정에 따라 행동하려 했던거구나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상담을 받아오던 입장에서 아무리 상담사가 갖은 노력을 하더라도 내담자가 노력하지 않으면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들 도움이 치료나 치유로 실현되는 것은 쉽지 않겠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심리에 관련된 도움을 주는 것은 취미로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사회를 바꾸고 싶다. 힘든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등 내가 주로 하고 싶어하는 일들은 추상적이며, 나 스스로가 이것에 몰입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에 와서 이것을 업으로 삼기에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밥벌이 할 정도면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보다 많은 시간을 두고 노력해야할텐데 이것이 나에게 옳은 선택일까 고민하게 됐다.



사실은 심리학을 하든 연구를 하든 내가 자존감을 키우고 그저 주어진 현실에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그리고 그것들의 감사함 혹은 아름다움을 느끼려고 노력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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